자하문 밖 북한산이 보이던 자취방
연희동, 창신동, 독립문, 전농동, 부암동, 신사동, 개화동, 옥인동, 기자촌, 교하와 일본의 하츠다이, 고쿠분지, 사이타마, 영국 버밍엄. 내가 고향을 떠나 살았던 장소의 이름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지구별 여행자로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나그네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중, 학업이나 일과 무관하게 내 의지로 선택했던 곳은 자하문 밖 부암동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산을 보고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취방을 얻으러 다녔다. 나는 암산인 북한산이 좋다. 멀리서 보면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매일 아침 북한산을 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자하문 밖 복덕방을 돌아다녔다. 하림각이라는 큰 중국집과 작은 슈퍼마켓 사잇길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면 내가 살던 자취방이 있었다. 가는 길에 출판사도 보인 곳이었다. 여고시절 친구가 ‘너는 학창시절 종로서적에서 책을 끼고 살았지’라고 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나는, 책을 만드는 곳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집주인은 마음씨 좋은 할머니였다. 할머니 방과 내 방 사이에 마루가 있었다. 마당 건넛방에는 아저씨, 아주머니, 딸 둘에 막내아들 다섯 가족이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내 자취방에서 창문을 열면 평창동 너머로 북한산이 손에 잡힐 듯했다. 형제봉과 사슴뿔 모양의 향로봉 언저리 일 듯싶다. 북한산을 매일 바라보며, 자취집 뒷산인 인왕산을 거의 매일 아침 다람쥐처럼 올라다녔다. 내 자취방 옆으로 텃밭이 있고, 그 텃밭을 가로질러 감나무 아래를 지나 인왕산 언저리 집 몇 채를 지나면 곧바로 산에 닿는다. 인왕산 동쪽인 셈이다. 산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그 언저리까지 갔다. 종종 동네 어르신을 만나기도 했으나, 거의 혼자서 이곳저곳 발걸음 했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서 산길을 걷는다는 게 무섭기도 할 것 같은데, 그때는 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냥 아침 산책이 기분 좋고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다. 무엇보다 코끝을 스치는 솔향기를 좋아했다. 대학모임 중에 ‘십장생’이라는 모임이 있다. 오래 산다는 열 가지 중, 내가 소나무이다. 내가 소나무를 좋아해서 정했다. 소나무 하면, 늘 푸르고 겨울에도 의젓하게 서 있지 않은가. 그 소나무처럼 의연한 기상을 품고 살고 싶다는 소망이다.
내가 살던 곳 가까이서 지낸, 윤동주 시인도 아침마다 인왕산을 산책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나서는 내가 그곳에서 살았던 것이 으쓱해졌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소설가 김송 집에서 하숙하며,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을 지었다.
부암동 자취방은 공기가 맑고 전망이 좋았던 만큼 불편함도 있었다. 그때는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인왕산 중턱의 집이다 보니 겨울에 썰매를 타듯 오르락내리락 했다. 또 생과 사를 넘나든 일도 겪었다. 연탄을 때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어떻게 내가 마당으로 나갔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나는 마당에서 헤맸다. 주인 할머니와 세 들어 살던 분들이 나에게 김칫국물을 먹였다 한다. 그때 나는 단지 뭔가 답답하고 아스라이 희미하게 힘들다는 느낌이 있었던 기억만이 있다. 나중에 깨어보니 병원이었다. 연탄 가스를 마신 것이다.
‘인자 요산이요 지자 요수’라 했거늘, 산을 선택한 나는 지혜롭지 못했던 것일까? 산을 좋아해서 내 의지로 선택한 자취집에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으니 말이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도 나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도 산이 좋다. 산에는 내가 좋아하는 소나무를 비롯하여, 바위, 계곡과 물이 있어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이양하, ‘나무’ 중에서).”
이양하는 나무를 덕을 지닌 견인주의자요, 고독한 철학자요, 분수를 아는 현인으로 칭하며, 죽어서도 나무가 되고 싶다고 예찬한다. 그런 나무와 말없이 강한 바위, 생명을 키워내는 흙으로 된 산은 나를 평온함으로 감싸준다. 어쩌면 내 영혼의 고향은 산인지 모르겠다. 나는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또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영혼의 고향을 찾는 내 무의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