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내 입맛의 향수와 바다

by 최순자

내 입맛의 향수와 바다


늦게 귀가하는 날이다. 저녁 식사로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는다. 반찬은 ‘칼슘의 왕’ 멸치, ‘바다의 불로초’다시마, 된장으로 무친 ‘비타민의 보고’ 풋고추이다. 후식은 ‘영양 듬뿍’ 방울토마토이다. 김치를 좋아하는데 냄새 때문에 싸 오지 못했다. 반찬의 3분의 2는 바다가 키워준 먹거리이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카아~~~)/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생략) 양명문 시, 변훈 곡, 명태 중)”


시에서처럼 명태가 어느 시인의 안주가 되었듯이, 멸치와 다시마가 내 입에 오르기까지를 생각해 본다. 멸치는 남녘 완도나 통영 앞바다 어디선가 착한 어부의 어망에 걸렸을까? 아니면 남해나 기장 바다 어디쯤에서 그물로 놀러 왔을까? 뜨거운 물에서 생을 다하고, 바닷바람으로 쓸데없는 것들을 다 떨쳐버리고 우리 집 냉동실로 왔다.


집을 나서면서 멸치를 먹을 만큼 가져왔다. 특별한 조리를 하지 않더라도 짭조름한 바닷물 간이 배어 반찬으로 그만이다. 맛은 고소하고 영양은 만점이다. 멸치를 먹을 때는 머리와 내장을 빼고 먹을 때도 있으나 주로 통째로 먹는다. 통째로 먹게 된 연유는 생선과 회를 즐겨 먹는 일본에서 본 광경 때문이다.

나는 20여 년 전 동경에서 7년 생활했다. 그때 점심때 각자 싸 온 도시락을 함께 먹었던 적이 있다. 한 친구가 매일 가져온 반찬은 멸치보다 큰 생선구이였다. 그는 내장은 물론 머리와 꼬리까지‘오드득 오드득’씹어 먹었다. 부모님께 어려서부터 그렇게 먹으라는 교육을 받았단다.


일본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에게 간식 시간에 자기 나이만큼 멸치를 세어서 ‘꼭꼭’ 씹어서 먹게 한다. 멸치를 먹게 하는 것은 칼슘 보충, 치아와 구강구조 발달, 침이 많이 나오게 하여 질병 예방과 소화를 돕게 하기 위함일 터이고, 나이만큼 세어서 먹게 함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산수를 익히게 하기 위함이리라.


다시마는 3년 전, 부산에 업무차 갔다가 사 왔다. 업무는 하루였으나 2박 3일 일정으로 갔다. 항구 도시의 감천 문화마을, 오륙도, 용두산, 영도다리 등을 둘러보고 자갈치시장에서 쫀득쫀득한 돔회를 먹었다. 귀경은 기장을 거쳐, 동해안 바다를 실컷 바라보며 여유롭게 해안 길을 따라서 왔다.


기장을 지나다가 집에서 다시마를 파는 어르신을 만났다. 마을 앞 바닷가에는 빨래처럼 햇빛을 받으며 다시마가 널려 있었다. 내가 산 다시마도 그 어르신이 손수 바다에서 건져 올려, 해풍으로 말린 뒤 창고에 보관 중이었다. 다시마 값은 얼마 치르지 않았는데 양은 바다처럼 풍성했다. 이집 저집 나눠 먹고도 아직도 남아 있다. 다시마는 물로 두세 번 씻은 뒤 그냥 먹는다.


내 입맛의 시작과 향수는 바다에서 나고 자란 먹거리다.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면 갈치구이, 고등어조림, 게장, 조개류인 맛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바닷가는 아니었다. 바다는 걸어서 이삼십 리에 있었다.

갈치와 고등어는 십리 길을 걸어 엄마나 아버지가 읍내 오일장에 가서 사 왔다. 밥솥에서 밥이 뜸들 시간에 아궁이 잔불 위 석쇠에서는 갈치가 익어갔다. 먹음직스럽게 노르슴하게 익은 갈치는 어쩌다 한 번씩 먹었던 귀한 반찬이었다. 어떨 때는 아버지 밥상에만 오르던 것을 가시를 바른 후, 내 밥 위에 살짝 얹어 주던 가슴 따뜻한 추억도 있다.


고등어는 무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 진한 간장으로 간을 한 조림으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살이 통통한 고등어는 그 맛은 담백하면서도 입안을 가득 채워주는 풍만감이 있다.


게장은 먹을 게 넉넉하지 않던 초등학교 시절 도시락 반찬이었다. 엄마는 이삼십 리 길을 걸어가 게와 맛을 잡아 머리에 똬리를 틀어 얹고, 그 위에 밤색 광주리를 이고 왔다. 요즈음 음식점에서 파는 게장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만든 간장으로 만든 게장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 장난치지 않고 가더라도, 게장 국물이 새어 나와 책보자기에 묻어나 간장 냄새가 난다. 그 냄새로 민망해서 얼굴이 발개지고, 다른 친구처럼 계란말이나 멸치가 아닌 것이 부끄러웠던 유년의 기억이 있다.

요즈음은 보기 힘든 조개류인 맛은 손에 딱 쥐기 편한 크레파스 정도의 크기로 은색 껍데기기로 둘러싸여 있었다. 뜨거운 물에 삶으면 촉수가 달린 속살을 떼어먹기 딱 좋았다. 그 맛은 지금의 게맛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국물까지‘후루룩’마셨던 기억이 있다.


바다는 내 입맛의 원형을 만들었다. 가난한 시절 먹었던 바다 먹거리는 동경 생활에서는 꽁치구이로 이어졌다. 호주머니가 넉넉지 않던 외국 생활에서 시장보기는 마트가 문 닫기 한 시간 정도 전이었다. 그때 가면 저렴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늘 샀던 생선은 싸면서도 굽기 쉬운 꽁치였다. 그 입맛은 오늘의 만찬 멸치, 다시마로 이어지고 있다.


게장이나 조개류 맛은 절대적 빈곤의 시절 먹었던 바다 먹거리였다. 지금 생각하니 몸에 좋은 이만한 음식은 없을성 싶다. 주변 사람들은 평상시 내 활동량을 보고 나에게 건강 체질이라고들 한다.


나는 내 건강의 비결은 바다가 키워 준 먹거리 덕분이라 생각한다. 이보다 더한 은혜가 어디 있을까?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 우리나라 삼면을 차지하고 있다. 새삼 건강한 먹거리를 풍성하게 내주는 바다가 있음이 축복이고 고맙다는 생각이다.


이런 바다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는 뉴스를 봤다. 생활 쓰레기가 바다를 뒤덮고 있는 사진이 비췄다. 먼바다에서 한글이 써진 라면 봉지가 눈에 띄고, 바다를 떠다니는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고래가 먹고 죽는다는 것이다. 또 이물질이 엔진을 고장 나게 해 선박 사고도 종종 발생한단다.


흔히 바다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엄마의 품으로 비유한다. 아무리 품이 넉넉한 바다라 할지라도 인간이 버린 온갖 쓰레기를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을 터이다. 바다가 쓰레기로 더럽히지 않도록 개인, 사회적 노력과 더불어 국제적 연대도 필요할 것 같다.


나는 거북이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죽게 되었다는 보도를 본 뒤로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국가적으로도‘해안 쓰레기 관리 기본계획’을 세워 노력을 하는 것으로 안다. 나름하고 있겠지만, 국제적으로는 환경단체 간 연대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바다는 먹거리의 보고이자 생명의 원천이다. 그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역할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곧 우리를 위함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버려진 쓰레기를 바다 생물이 먹고, 그걸 다시 우리가 먹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고맙고 미안함이 교차하는 엄마의 품 바다를 한 더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다짐도 새롭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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