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의 시작도 너였지만, 내가 살게 한 것도 너였다.
매일 밤 잠드는 게 힘들었다. 꿈에서라도 보길 원하지만 나타나는 건 사고 당일의 기억뿐이다. 한 마디로 모든 게 사라져 버린 것처럼 눈물만 났다. 혜인이가 내 마음도 가져가버린 건지 공허함만 남았다. 엄마와 매일 가는 정신과 치료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방 안에는 온통 추억만 가득한데 좋은 기억들은 나도 함께 안갯속에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방 문 앞을 바라볼 때마다 보이는 건 사고 난 흔적과 자주 들르던 문방구, 오락실 즐거웠던 기억들과 사고의 흔적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쳐다보고 있는 것 만으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엄마는 딸의 모습을 보며 문 앞을 가리며 자꾸 보면 마음만 아프니 보지 말라 하셨다. 당장 방문 열어도 정면으로 보이는 문방구를 없앨 수는 없으니 할 수만 있으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고 바랐다.
병원에서는 발목 상처가 깊으니 계속 걷는 연습 하며 익숙해지라고 말씀하셨으나 문 앞에만 나가면 생각나는 혜인이 얼굴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움직이지 않는 발목은 그대로 근육이 굳었는지 잘 움직여지지 앉았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발목 상처는 여전히 낫지 않았다. 밤에는 꿈에서 나오고 낮에는 가게 문 밖만 쳐다봐도 아른거리는 얼굴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멍청이를 만들었다. 엄마는 조용히 들어와 발목 상처를 살피시고 약을 발라 주셨다. 매일 엄마가 살펴주다 보니 자연스레 붕대 감은건 의사 뺨치게 잘 동여매신다.
밤이 되면 잠을 유도해 주는 약을 먹었다. 항우울제와 수면 유도제를 먹고 누운 방안 천장에는 혜인이와 장난친다고 붙여두었던 야광별이 반짝이고 있다. 우린 둘 다 하늘이 맑은 날이면 별 보는 걸 좋아했는데 제일 밝게 빛나는 북극성을 좋아했다. 추억 소환과 함께 낑낑대며 의자를 놓고 야광별을 붙이던 혜인이 생각이 훨씬 많이 났다. 추억 속에 남은 야광별이 유난히 빛나는 어느 날 밤이다. 제일 크게 붙여놓은 야광별이 날 바라봐 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저런 추억을 더듬다가 잠이 들려는 내게 엄마가 오셨다. 그런 딸을 보는 엄마 마음이 편하셨을까. 빨리 툭툭 털어내고 이겨내길 바라셨을 테지.
조그맣게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 그만 잊자..” 그 말씀이 마음에 박혔다. 엄마 몰래 울었다. 엄마께 티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신 차려 보기로 했다. 방 안에만 있으면 혜인이와의 추억이 한가득이라 목발을 짚고서 걷는 연습을 해보려 밖을 나섰다.
가파른 언덕 사이 밑으로 보이는 커다란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 것 같았다.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다 눈물이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놀이터로 향했다. 낯이 익은듯한 뒷모습이 보였다. 혜인이 어머니셨다. 지금도 병원에서 뵈었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원망 가득 차고 차가운 얼음만큼 냉기가 도는 공간. 아줌마는 한참을 쳐다보던 놀이터를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가셨다. 아줌마를 부를려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을 온전히 받고 있다는 것을 아무리 둔한 나라도 금방 알 것 같았다. 놀이터에서의 산책은 그렇게 끝이 났다.
오후 늦은 시간 담임 선생님께서 집에 방문하셨다. 이유인즉 언제부터 학교에 다시 나올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빈말이라도 엄마께 아이는 괜찮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한 번도 안 물어보셨다. 병원에 오셨을 때도 집에 찾아오셔도 한결같으시다. 출석이 자꾸 미뤄지면 안 되니 학교에 나오라는 이야기를 굳이 집까지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 난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아무 말 없이 무표정으로 다시 가게 청소와 저녁밥을 준비하셨다. 둘이서 먹는 저녁시간, 숨 막혀서 터질 것 같은 답답한 공기가 흘르고 수저가 부딪치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엄마 눈치를 보다 보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약을 챙겨주시며 아무 말 없이 저녁상을 치우는 엄마에게 나도 모르게 눈길이 향했다.
아직은 어리다면 어릴 수 있는 나이 수면 유도제를 먹는 딸을 보며 엄마가 물어보셨다. “학교 생활은 괜찮았었니?” 여전히 말을 하지 않는 내게 언제 말할 거냐며 눈물을 보이셨다.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의사표시를 했다. 자의로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충격으로 잊힌 말이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뒤로 엄마는 계속 내 얼굴과 끈질기게 낫지 않는 발목 상처만 보셨다. 덩달아 나도 모르게 어느새부턴가 엄마 눈치를 보고 있었다. 모녀간에 어색한 공기를 뒤로한 채 엄마는 방에서 나가버리셨다.
사고 후유증이었을까? 말을 잊어버린 건 아닌 것 같은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저녁 약을 먹고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는 이 방을 벗어나고 싶었다. 추억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지만 고작 10살짜리가 나간 들 갈 데도 없다. 기껏해야 놀이터나 운동장뿐이지. 수면 유도제가 들어있는 약을 먹어도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온통 사고 기억만 머릿속에서 맴돌고, 꿈에서도 나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밤늦은 새벽, 벽시계가 3시를 넘기고서야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렇게 뒤척거리다 잠든 날 엄마는 걱정하셨다. ‘저러고 계속 안 돌아오면 어쩌지?’라는 불안감. 계속 늦은 잠에 말도 안 하고 있은지도 여러 날이 지났다.
흘러가는 시간의 감각도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여전히 혜인이가 없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나고 즐거웠던 시간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내 짧은 일생에 인연처럼 처음 생긴 친구는 곁에서 사라진 것도 모자라 밤도 잡아먹었는지 꿈에서는 잊지 않고 찾아와 주었다. 내 꿈은 매일 약을 먹고 잠들지만 같은 꿈을 재생시키고 끝은 장밋빛으로 물든 혜인이의 잠든 모습만이 남았다. 꿈으로 보는데 현실에서는 볼 수 없으니 눈물이 나고, 기억 속에 겹겹이 쌓인 추억들이 갈 곳을 잃은 듯 헤매는 것 같았다. 내 꿈의 시작도 그때부터였으나 살아갈 수 있게 한 것도 혜인이와의 추억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