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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낮, 하얀 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고_.

by 글지은 Mar 08. 2025

병원 침대에 앉아서 멍한 얼굴로 창밖만 쳐다보며 어떤 날은 비가 오고, 어떤 날은 해가 비치고, 밤에는 별이 뜨고 구름이 흐르는 것만 바라보며 하루가 지나갔다. 혜인이가 가는 것도 못 보고 앉아서 울었다. 엄마가 옆에 있을 때는 울 수 없으니 가게 보러 나가신 낮에는 간호사님이 오시든 말든 침대에 누워서 훌쩍거렸다. 10살짜리 꼬맹이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 마음 찢겨나가는 건 모르고 깨어난 뒤로 입도 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냈다. 매일 외톨이로 지내다가 어느 날 번쩍 나타나 친구가 되어 준 사람과의 이별은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긁히고 찢어진 몸의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니 옅어져 가지만 마음은 사고 났던 날 혜인이의 마지막 모습에서 시간이 멈춘듯했다. 다른 상처들은 흉터도 별로 남지 않았지만, 손등과 발목만은 잘 낫지 않았다.      


양손에 붕대를 감고 있으니 엄마는 가게 일을 보시다가도 점심시간이 되면 병원에 오셔서 내 점심을 받아주시고 먹여주셨다. 언덕 동네에 작은 마을이라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다는 건 금방 퍼졌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친분이 있는 동네 분들이 다녀가셨지만, 인사도 하지 않고 눈 맞춤도 하지 않고 나사 하나 빠진듯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엄마는 답답하셨나 보다. “제발 말 좀 해라! 응?” 말씀하셨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짧았는지 길었는지 알지 못한 채 무의미하던 병원 생활이 엄마의 한숨으로 끝났다.     

 

퇴원 후, 오랜만에 돌아온 가게 안에 작은 방은 사고가 있던 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엄마는 작은 방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셨다. 들어가셔도 청소할 때 잠시만 들어가시고 주무시는 건 병원에 오셔서 주무셨다 하시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작은 방 문턱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니 풍경도 그대로였다. 가게 앞에 있는 횡단보도. 거기서 바로 옆에 보이는 문방구와 오락실이 비스듬하게 보였다.      


그날 사고도 바로 눈앞에 보이듯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때의 풍경이 그려지니 저절로 눈물이 났다. 금방 앞에 와서 “지은아! 공기놀이하자!” 라 말하며 해맑은 미소로 내게 뛰어올 것 같았다. 다시는 문방구 앞을 지나가지 못할 것 같다. 가게 바깥을 바라보며 그렁그렁한 눈으로 있는 내게 엄마는 마음이 편치 않으셨는지 방에 들어가라고 재촉하셨다. 아직 아물지 않은 발목에 자꾸 움직이고 하면 안 되니 되도록 움직이지 말고 안에 있으라고 당부하셨다.      


집안 어느 곳을 봐도 혜인이와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방안에 꽂혀 있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도 그대로 있고, 둘이서 맨날 학교 마치면 들어와서 하고 놀던 공기도 그대로 있고, 문방구에 가면 흔하디 흔한 종이 인형도 옷을 입혀준 그대로 서랍장 위에 놓여있었다. 집 안 구석구석 다 같이 놀던 흔적들뿐이라서 눈물만 났다. 짧은 두 계절 함께 했던 내 친구는 흔적만 잔뜩 남겨놓고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기억들을 어떻게 잊어야 하지?라는 생각만으로도 혼자 훌쩍거리며 누워서 울었다. 온통 좋은 기억만 있는 이와 영원한 이별에 남겨진 자의 어둠은 그런 거였다. 퇴원하고 며칠 동안 훌쩍거리며 울었다. 엄마라고 모르셨을까? 분명 울고 있는 것을 아시지만 침묵하고 계시는 거겠지. 병원에서 깨어난 이후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딸을 보며 엄마 마음은 더 찢어졌을 거라고 더 많이 큰 뒤에야 그 마음을 알았다. 그 당시에는 내 마음 다루기도 힘들어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 했다. 가게도, 방도, 문방구도, 오락실도, 학교도 온통 혜인이와의 기억만 가지고 있으니 다른 누군가를 신경 쓰기엔 너무 어렸다.     


퇴원하고 오랜만에 가는 병원, 그날은 발목을 치료하는 목적 이외에 정신과도 들렀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사고가 사고였던 만큼 정신적 충격도 있을 거라며 정신과 쪽도 진료받기를 권하셨기 때문이다. 깨어난 이후 말을 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가보시라고 엄마께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찢어진 발목이야 언제 나아도 낫겠지만 마음이 닫혀서 나오지 않는 말 문은 엄마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하겠다 하시며 정신과에도 진료를 받으러 가겠다 하셨다.      


처음 앉아보는 정신과 선생님과의 진료는 어색했다. 선생님이 이름이 뭐냐고 물으셨지만 대답하지 않았고, 오늘 여기 왜 왔는지 아느냐고 물으셨지만 멍청하게 앉아서 선생님 얼굴만 쳐다봤다. 스스로 말하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고 엄마께 말씀하시는 것만 듣고 그 이후의 말은 웅얼웅얼 귀에서 울려대기만 할 뿐 잘 들리지 않았다. 사고 이후 오른쪽 귀가 좀 먹먹해진 걸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멍청한 짓일 수도 있겠지만 그땐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거 같다. 밤에 잠을 잘 못 자니 수면 유도를 도와주는 약과 함께 항우울제를 처방받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종일 사고 당일만 머릿속에서 울려서 정신이 없었다. 병원을 갔다가 오니 저녁 시간이 다 되고 엄마는 밥을 차려주며 “오늘은 밥 먹고 나면 약 먹고 조금이라도 자.”라고 하셨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내가 잠을 못 자는 걸 아셨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혜인이만 매일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라 잠드는 게 쉽지 않았다. 내 꿈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남겨진 자의 어둠은 잠들 때마다 찾아오는 사고 당일의 마지막 혜인이의 모습이 어둠으로 남았다. 낮도 밤도 그저 눈앞에는 하얗기만 한 낮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았다. 잠도 오지 않고, 아무 말도 하기 싫은 건 병원에서나 집에서나 별다를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하얀 낮도 싫었지만 꿈만 꾸면 자꾸만 나타나는 친구의 하얀 밤은 더 힘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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