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상처(2)

잃어버린 소중한 친구_.

by 글지은

다음 날 아침, 혜인이의 가장 먼저 해주는 인사가 나를 반겼다. 무표정하고 모나고 위축되었던 성격을 웃음 짓게 했고 조금씩 밝게 바뀌어갔다. “안녕!”하고 들려오는 말이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들려서 나도 모르게 혜인이에게 목소리 좀 낮추라며 면박을 줬다. 해맑게 웃으면서 뭐 어떠냐며 웃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더 예쁘게 즐거워 보였다. 오늘따라 들떠 보이는 혜인이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도시락 꺼내서 함께 먹는 즐거움이 하루 중에 가장 큰 기쁨이 되는 순간이 되었다. 학교 일정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혜인이와 가게 안쪽에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 여느 때처럼 즐겁게 놀았다. 공기놀이를 시작으로 그림도 그리고 학교 숙제도 같이했다. 매번 수학 숙제는 왜 그렇게 많은지 우리는 맨날 수학 숙제 할 때마다 툴툴거렸다. 그래도 숙제만은 철저히 해가니까 엄마도 노는 것을 혼내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그림물감이었다. 혜인이도 그랬지만 나도 그림물감이 거의 바닥을 보이는 상태였다. 사고의 시작은 내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혜인아, 우…. 우리 물감 사러 무…. 문방구 같…. 같이 가자.”

준비물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문방구를 가려면 집 앞 큰길을 건너야 하는데 꽤 큰길이라 항상 어른과 함께 건너거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건넜다. 그날따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건너기 쉽지 않았다. 차도 많이 다녀서 길가에 서 있으니 소음도 심했다. 바로 앞에 횡단보도에서 건너려고 눈치를 보지만 쉽지 않았다. 엄마도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은 길이라 항상 길 건널 때 조심하라며 당부하셨었다. 큰 길만 건너면 바로 보이는 게 문방구라서 자동차가 덜 오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길을 건너가려는 찰나, 트럭이 눈에 스치듯 보였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느샌가 난 튕겨 나갔고 잠시 눈을 떴을 때 흐릿한 눈으로 마지막으로 장밋빛이 가득 물들어 있는 혜인이 모습을 보고 다시 캄캄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엄마랑 의사 선생님께서 옆에 계셨고, 다리와 손등 발목 곳곳에 상처를 치료한 흔적이 보였다. 눈을 뜬 걸 확인하고 나서야 엄마는 안도의 숨을 내뱉는 듯했다. 병원인 건 알겠는데 혜인이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왜 두리번거리는지 아는 듯했지만 말씀하지 않으셨다. 뒤늦게 엄마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뭐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귀에 들리지 않았다. 혜인이는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는 것 말고 아무 말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사고 당일, 혜인이가 있는 방향에서 차가 달려와 직접 부딪친 혜인이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고, 혜인이에게서 튕겨 나갔던 난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내 팔과 손등, 다리를 보고, 머리를 만져보고는 다짜고짜 펑펑 울었다고 엄마께서 말씀하셨다. 사고 당시의 내 기억은 도로에 누워있는 혜인이의 모습이 끝이었다. 내가 아는 건 혜인이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충격이었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의사 선생님도 말은 하셨는데 산속 메아리처럼 울릴 뿐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더듬거리던 말조차 내뱉지 않고 나사 하나는 어디 빠뜨려놓고 온 사람처럼 창밖만 쳐다보며 지냈다. 온전히 가을임을 알리는 비가 창밖에서 구슬프게 내리는 날이다.

다음날, 혜인이 어머니께서 병원에 오셨다.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오신 듯했으나 선뜻 말을 걸지 못했다. 다른 날이었으면 아줌마~~ 그러면서 먼저 다가가서 인사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아줌마도 날 보셨지만, 순간 느껴지는 차가운 눈빛으로 본 척 만 척 다른 길로 사라지셨다. 목발을 짚고 서 있는 것조차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끝까지 혜인이가 있는 장례식장에 가보지 못했다. ‘사고 당일 내가 물감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중에 혼자 사러 가거나 내가 엄마랑 사러 갔더라면 괜찮았을까? 그러면 우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앵무새처럼 쫑알쫑알 떠들던 단짝 친구는 어디 간 걸까? 하얀 병원 침대가 나만큼 외로워 보였다. 입원하는 동안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밤에 병실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았고, 어쩌다 잠이 들어도 가위눌리듯 무서운 꿈을 꾸니 잠들기가 어려웠다. 사고의 기억은 마음에 커다란 멍을 남겼다.


어느 정도 상처들이 아물고 발목에 상처만은 내내 낫지 않아서 쩔뚝거리며 걸었다. 걸을 때마다 이따금 몰려오는 통증이 그날의 사고를 떠올리게 했다. 엄마가 계시지 않는 늦은 오후시간, 담임 선생님께서 병문안을 오셨다. 노을이 저물어가는 초저녁 담임 선생님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병실 문을 들어오시며 물어보셨다. “어머니는 아직 안 오셨니?” 꼭 다문 입과 아무 표정을 짓지 않은 얼굴, 사고 이후 나사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선생님의 물음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발목에 상처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이불을 반쯤 덮고 앉아서 물끄러미 쳐다본 선생님의 얼굴도 그렇게 밝아 보이진 않으셨다. 빈손으로 오기는 그래서 사 들고 오신 주스를 바닥에다 내려놓으시고 의자에 앉아 한참을 날 바라보셨다. “몸은 괜찮니?” “어머니는 언제 오시니?”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는 날 보시며 한숨을 쉬신다. 엄마는 낮에는 가게 일을 보셔야 해서 해 질 녘이 돼야 마치고 잠시 병원에 들르신다고 말을 하면 되지만 말하는 것 자체가 싫었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물끄러미 마주 보고 계시던 선생님께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지은아, 몸 빨리 낫고 학교에서 보자꾸나.” 말씀하시며 멋쩍은 웃음을 하시며 문을 열고 나가셨다. 멍하게 바라보며 그냥 눈물만 나더라. 문을 열고 혜인이가 당장이라도 뛰쳐 들어와 웃으며 이야기할 것만 같았다. 매일 밝게 인사하던 친구는 어디로 간 걸까? 그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해가 저물고 엄마가 반찬거리를 싸 들고 병원에 오셨다. 사고 이후 엄마는 병원에 오셔서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신 채 가게를 보고 하셔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침대에서 엄마 무릎을 베고 앉아있으니 조금은 편안해지고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다가 일어나고 멍하게 창문만 바라봤을 뿐인데 피곤이 몰리고 눈이 감겼다. 말 더듬는 것으로 인해 평탄한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걸 엄마도 아신다. 도시락 싸가면 학교에서 안 먹고 집에 가져와서 몰래 도시락을 먹는 걸 몇 번 들켰었다. 눈만 감고 있었을 뿐 잠들진 않았는데 엄마는 내가 잠든 줄 아셨나 보다. 작은 목소리로 하시는 말씀이 귀에 들렸다. “빨리 낫자! 응” 어렴풋이 들린 엄마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평소에는 강하게만 보이던 엄마였는데 처음으로 연약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잠이 들었다. 잠들면 혜인이 얼굴이 보이니까 꿈에서라도 재밌게 놀고 싶었다. 이젠 볼 수 없는 혜인이가 꿈에서라도 나타나 주길 간절히 바랐다. 병원에 있는 동안 잠들어 있는 밤이 꿈으로 인해 제일 행복하거나, 제일 슬프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