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의 여름_.
즐거운 봄을 지나가고 더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함께 맞는 방학이 처음이라 우리는 신났다. 오며 가며 지내다 보니 서로 집도 알고 지내서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혜인이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울창한 나무 그늘이 있는 계곡으로 여행을 갔다. 두 집 모두 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유 있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강원도에 살아서 좋은 점도 많았다. 여름은 엄마, 아빠도 하루 이틀 정도는 일상을 벗어나서 친한 지인분과 함께 계곡이나 바닷가로 가서 실컷 즐기고 오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자동차는 아빠가 친구분께 빌렸다. 강원도에 살아서 장점은 바닷가나 산 계곡을 다니기가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봉고차를 빌려서 계곡으로 갔는데 난 그때만 해도 차멀미가 심했던 시절이라 차만 탔다 하면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 집 필수품이 검은색 봉지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짧은 거리를 가도 차만 타면 멀미로 인해 속이 안 좋아서 무조건 잠을 자는 게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길이다.
나무 그늘이 멋들어지게 있는 계곡물에 발만 담그고 있어도 시원했다. 오빠랑 혜인이랑 아는 동생이랑 나까지 넷이서 물에 들어가 튜브를 굴려가면서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놀았다. 정신없이 물놀이를 하고 먹는 점심시간 고기도 굽고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될 정도로 넷이서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먹었다. 엄마가 해주는 김치찌개는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그때의 좋은 점 하나는 물이 맑아서 다슬기나 가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혜인이랑 나는 밥 한 그릇을 일찌감치 뚝딱 먹어치우고 둘이서 얕은 물이 있는 곳에 다슬기를 잡으며 놀았다. 얕은 물속에 돌을 이리저리 뒤집다 보면 가재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분명 종아리 정도까지 오는 깊이였는데 계속 앞으로 나가면서 발을 헛디딘 것인지, 아니면 갑자기 깊은 곳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한 발짝 잘못 내디뎠을 뿐인데 깊은 물속으로 쑥 빠졌다. 아무리 발장구를 쳐도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참을 발장구를 치다가 지쳐서 어느샌가 힘이 빠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어느샌가 강가 바깥쪽에 나와서 커다란 수건을 감싸고 있었다. 정신이 들고 나중에 엄마께 들으니 내가 물에 빠지고 허우적거리는 걸 혜인이가 보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어른들이 달려오셨는데 아빠가 급하게 물로 뛰어들어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다고 하셨다.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큰일 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다고 말씀하셨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빌려서 가져갔던 텐트와 용품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왔다.
수영도 할 줄 몰랐던 때였고, 종아리도 채 오지 않는 깊이라 갑자기 깊은 곳에 빠질 거라고 생각을 못 해서 내가 제일 당황했다. 어른들이 안 계셨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엄마가 한소리 하셨다. 그해 여름 계곡에 놀러 간 일은 큰일이 날 뻔하긴 했지만 즐거웠던 추억으로 마음속에 남았다. 가족들과의 여행에서 혜인이와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방학 숙제도 1, 2학년 때는 미루고 핑핑 놀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혜인이랑 즐겁게 방학 숙제도 끝냈다. 다른 건 다 했는데 유일하게 일기 쓰는 것만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안 했다고 하는 게 말이 더 맞으려나. 애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린 둘 다 일기 쓰는 걸 싫어한다. 매일 똑같고 비슷한 일상인데 일기 쓸 일이 뭐가 있냐고 둘이서 투덜투덜한 적도 있다.
매일 만나서 책 읽고 독후감 쓰는 숙제, 그림 그리기, 관찰 숙제까지 우린 즐겁게 했다. 학교에 들어가고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한 여름방학은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내가 제일 많이 웃었던 해였다. 말 더듬는 것도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에는 많이 개선되고 좋아져서 조금은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혜인이는 자기 일인 것처럼 좋아하며 웃어주었다. 매일 서로의 집에 드나들며 하는 놀이도 비슷했고, 반복하는데 둘이서 히죽거리며 웃으면 혜인이 어머니께서는 뭐가 그렇게 신나게 웃냐며 신기해하셨다. 아줌마는 내게 더없이 상냥하셨다. 딸인 혜인이만큼 내게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한 달간의 즐거웠던 여름방학이 즐겁게 마무리되었다.
여름방학이 끝난 개학 날, 정겹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교실이었는데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다가오는데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빨리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달 만에 들어간 교실이 반가웠다. 반 아이들이 쫑알쫑알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교실 가운데에 자리한 책상을 보고 빙긋 미소가 지어졌다. 옆자리는 언제나처럼 혜인이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내게 “안녕!” 인사해 주었다. 너무 익숙해져서 자연스레 지어지는 미소가 행복한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약간은 찬바람이 불고 가을이 다가올 즈음, 유일하게 단짝 친구는 반겨주고 늘 먼저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물어왔다. 한 번은 유아원(지금의 어린이집) 앞에 커다란 그네가 있었는데 그걸 타보고 싶어서 둘이 달려가다가 처음 타고 있던 아이의 그네에 이마를 맞았다. 아픈 건 둘째치고 부딪친 게 창피해서 급하게 손으로 가리고 집에 왔는데 엄마께 들켜서 여섯 바늘을 꿰매고 둘 다 좀 조심하라고 엄마한테 많이 혼났다. ‘혜인이가 아니었다면 내 생에서 친구와 그렇게 즐겁게 놀면서 지내는 일이 가능했을까?’ 당일로 함께 간 여행으로 인해 더 편해진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하고 한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봄과 여름은 내게 둘도 없는 기쁨이었다. 행복했던 시간이 혜인이와의 두 계절이 마지막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