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웠던 시간, 너를 만나다(2)

너를 만난 순간_.

by 글지은

초등 2학년이 되면서 처음 들어갔을 때 느껴지던 설렘은 느껴지지 않았다. 반 아이들에게 놀림받으면서 지내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새로 들어가는 2학년 교실과 만나는 같은 반 아이 중에 한 명이라도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며 말을 더듬더라도 먼저 다가가는 것도 노력해 보려 마음먹었다. 쉽지 않겠지만 먼저 말을 걸고 다가가면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을 거로 생각했고 서툴지만 먼저 인사하면 좋아질 줄 알았다. 2학년 새 학기 동안 인사도 먼저 해보고 다가가려 노력했지만 친해질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심한 ‘말더듬이’라는 놀림보다 더 외로운 사실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이 오지 않는 무관심과 무응답이었다.

분명 옆에 존재하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존재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같은 사람. 학년이 올라가도 내 자리는 변함없이 맨 뒤쪽 끝에 창가 자리였다. 엎친 데 덮쳤다는 게 이럴 때 하는 말이겠지. 2학년 올라오니 담임 선생님조차 눈길을 주지 않으셨다. 1학년 때는 선생님께라도 말을 할 수 있었는데 그조차도 어려웠다.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 나갈 때면 안짱다리가 완전히 교정되지 않아서 운동 신경도 형편없었다. 달리기도, 뜀틀 뛰기를 할 때도 친구들과의 놀이에서도 배제되었다. ‘하루에 반나절 학교에 있을 뿐인데 하루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나?’ 싶었다. 차라리 놀림을 받던 1학년 때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관심과 무응답은 힘들었다. 학기 초반에 다짐했던 ‘먼저 다가가 보자.’라는 생각은 애당초 의미가 없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으니 인사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루는 외로움이 싫어서 선생님께 아프다고 거짓말을 했다. 배가 아프지도 않고 열이 나지도 않았지만, 교실에 있기 싫어서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교실에서 나가고 싶었다. “서, 선생님 저, 배, 배가 많이 아, 아파요.”라고 하니 선생님께서는 눈도 쳐다보지 않으시고 양호실 가라는 말씀도 없이 “그래. 그럼 조퇴하고 집에 가거라.” 열이 나는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묻지 않으시고 조퇴를 시켜 주셨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조퇴하고 집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서 차가워진 도시락을 먹었다. 김치에 달걀부침만 얹어져 있는 도시락도 교실에서 혼자 먹는 밥보다 훨씬 맛있었다. 그네를 타면서 시간을 보내고 하교 시간이 돼서 집에 오면 엄마께 “학, 학교 다,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외롭게 있어야 하는 교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집 전화가 있지만, 낮에는 엄마도 집에 안 계셨기 때문에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거짓말이 계속 통할 리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프다며 조퇴를 하니 선생님께서 이상함을 느끼시고 늦은 오후 우리 집에 방문하셨다. 그제야 엄마도 내가 꾀병을 부리고 계속 조퇴했다는 사실을 아셨다. 거짓말을 한 건 사실이어서 핑곗거리도 없었다, 그날 처음으로 엄마한테 많이 혼나고 회초리를 맞았다. 엄마는 학교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모르셨고 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는 이유로 딸이 학교생활을 외톨이로 지내게 할 거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2학년 생활도 친구 한 명 없이 구석 자리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외롭게 지나갔다. 학교 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3학년 새 학기, 배정받아서 조심스레 들어간 교실은 초등학교 3학년 2반. 당연한 결과지만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입학하고 지어진 별명 때문에 1, 2학년 내내 놀림받았는데 3학년 때라고 다를까? 말더듬증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커졌다. 어차피 혼자 있을 거라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사치라 여겼다. '이번도 혼자 그림자놀이나 하다가 지나가겠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제일 구석진 창문 앞 책상에서 가만히 넋 놓고 있는 쉬는 시간, 혜인이가 내게 처음 인사를 한 건 그때였다. 창밖만 보며 앉아있는 내게 다가와서 밝은 표정으로 "안녕!" 인사해 주었다. 밝은 인사가 낯설고 어리둥절했지만 더듬거리며 말하면 놀림거리가 될까 봐 인사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표정하고, 감정 따윈 느껴지지 않고, 싸늘하고, 비위 상한 음식이라도 먹은 듯한 표정을 하고 앉아있으니 반 아이들은 물론이고 담임 선생님조차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는 교실에서 혜인이가 해주는 아침 인사는 낯설고 신기했다. 개학한 뒤 매일 아침 등교하면 혜인이는 어김없이 내게 "안녕 지은아!" 친근하게 인사해 주었다. 이번에도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 지나갈 거로 생각했기에 반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하루는 혜인이가 사탕 하나를 주면서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고 말하는데 잘 못 들은 줄 알고 멀뚱멀뚱 쳐다봤다. ‘다른 애들은 불편해하는데 얜 왜 자꾸 말을 걸지?’ 신기한 녀석…. 점심시간이 되고 도시락을 꺼내 먹으려는데 혜인이가 내 책상 앞에 철퍼덕 앉아서 도시락을 펼치더니 말했다. "우리 밥 같이 먹자."라며 도시락을 먹는다. 혼자 먹던 점심시간이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혜인이는 밥을 먹는 와중에도 대답할 틈도 없이 쫑알쫑알 떠들었다. 매일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알게 된 것 중의 하나는 혜인이 생일도 나와 같은 음력 1월 14일이었다. 순간 서로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우리 생일이 똑같네. 신기하다!" 이야기하며 처음으로 웃었다. 태어난 연도만 다를 뿐 약력, 음력 생일이 다 같은 아이는 처음 봐서 신기했다.


​ 도시락을 같이 먹으며 더듬거리는 말을 혜인이는 끝까지 들어주고 대답해 주었다. 반에서 하는 자리 바꾸기에서 서로 짝꿍이 되고 더 깊이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주말이면 서로의 집에 놀러도 가고, 놀이터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던 시간이 사라졌다. 입학식 이후 처음으로 이름 모를 꽃들도 예쁘게 보였다. 말더듬증은 말할 때뿐만 아니라 소리 내 책 읽기를 할 때도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는데 혜인이랑 짝꿍이 되고부터 책 읽기에 내 번호가 불리면 옆에서 읽어야 할 구절을 작은 목소리로 같이 발음해 주었다. 특히 국어, 사회는 말하기도 입 아플 만큼 글씨만 잔뜩 있고, 사회는 가끔 지도가 나타날 때만 그림이 있어서 읽어야 하는 분량이 많아져서 싫었다. 책 읽기만 하면 번호가 걸리고 시키니까 싫어했던 과목들도 혜인이는 발음을 같이 해주며 괜찮다고 말했다. 매번 책 읽기를 할 때마다 작은 목소리로 발음하는 걸 도와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고쳐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친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기뻤던 그해 봄은 입학식 때 느꼈던 설렘처럼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