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시작_.
뚝뚝 끊기는 데다 어눌하고 더듬거리는 말투가 가장 무겁고 짙은 어둠이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는 말은 미숙했지만 다정한 오빠가 있어서 즐겁고 장난기 많은 소녀. 어릴 적 내 기억 속에는 아날로그 카메라의 필름처럼 장면 장면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엄마께서 해주셨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즐거움이었고 기쁨이었다는 걸 알았다. 어릴 때 기억 속에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던 시간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시절은 가장 크지만 아프게 남아 있는 추억이다. 한글도, 숫자도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다 뗀 상태로 학교에 입학했다. 분명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이 될 거라 기대하면서 오빠가 다니는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기쁨과 기대감이 공존했다.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엄마한테 더듬더듬하며 떠들어 댔다. 한마디를 할 때마다 더듬거리면서 말하는 나를 보며 답답해하시면서도 말해 주시고 웃어주셨다.
유치원 다닐 때도 더듬거리는 말로 인해 친구 사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나마 선생님의 도움이 있었기에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지낼 수 있었다. 유치원 생활 내내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었던 건 친구들의 배려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도움이 가장 컸다는 걸 나중에 좀 더 커서야 알았다. 안짱다리도 심해서 똑바로 걷지 못했는데 7살 때부터는 안짱다리도 많이 좋아져서 걷는 것에 불편함이 별로 없었다. 뛰는 건 불안했지만 걷는 것에라도 익숙해지고 교정이 되었다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하셨다. 유치원 생활도 즐겁게 잘 보냈으니 3월에 들어가게 될 학교생활도 분명 즐거울 거라고 기대에 가득 찼다. 내 생일은 2월이었는데 생일이 한 달 빠르다는 이유로 학교도 또래 아이들과 달리 한 살 빠른 7살에 학교를 들어갔다.
벚꽃이 피는 시작의 계절 3월, 드디어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을 했다. 학교 운동장에는 벚꽃 나무가 많았는데 약간의 분홍빛과 하얀색을 띤 벚꽃이 바람에 날리면서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꽃눈이 오는 것처럼 예뻤던 운동장에서의 입학식은 설레었다. 제일 조그마한 키에 꼭 다물고 있는 입, 약간의 노란빛이 도는듯한 단발보다는 약간 길었던 갈색 머리카락에 무릎을 살짝 넘는 하늘색 원피스에 따뜻한 외투를 입고 서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대부분 아이가 8살 입학이었고 빠른 생일로 인해 7살에 입학한 아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1학년 입학식을 마치고 배정된 교실로 들어가는 마음이 두근거렸다. 역시나 키는 내가 제일 작았다. 다른 아이들 모두 8살 입학했는데 혼자 7살에 들어간 셈이니 원래도 작은 키가 더 작게 느껴졌다. 그러나 설레었던 마음은 입학식이 마지막이었다.
말 더듬는 게 심해서 반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도 제대로 들어주거나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유일하게 말을 더듬어도 끝까지 받아주는 이는 선생님뿐이었다. 책상과 의자는 2줄이 붙어서 한 분단으로 나뉘고 4 분단까지 나누어졌다. 다 짝꿍이 정해졌지만 날 뽑은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앉은자리는 창문 쪽 맨 뒷자리에 책상 하나만 있는 자리였다. 그 자리가 학교에 다니는 3년 내내 똑같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중,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그 자리만은 질색했을 정도로 싫어했다. 1학년을 들어가기 전 한글은 이미 떼고 들어갔던 터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글과 숫자도 모른 채 들어갔으면 물어볼 수 있는 친구도 없고 말도 더듬는데 글씨 배우는 것도 늦어지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말 걸어주는 이도 말을 들어주는 이도 없었다.
점심시간이면 다른 친구들 모두 친해진 이들끼리 모여 옹기종기 책상에 도시락을 펼쳐놓고 먹었지만 맨 구석 자리가 지정석이던 내게 그런 호사는 없었다. 혼자 앉아서 도시락을 먹거나 어떤 날은 혼자 먹는 도시락도 싫어서 학교에서 먹지 않고 집에 들고 와서 엄마 몰래 먹었다. 말할 수 있는 친구 한 명 없는 것보다 더 서러운 건 좋지 않은 별명까지 달고 다니며 ‘말더듬이’ ‘말도 못 하는 거북이’라는 놀림과 따돌림이었다. 수많은 별명이 학교에 입학하고 다니는 동안 꼬리표로 달고 다니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2학년 올라가면 다른 반 아이들이랑 섞여서 같은 반이 될 거니까 나아지길 바랐다. 말 못 하는 거북이로 학교생활을 보내는 1년 동안 하교해서 집에 들어가면 엄마에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혼자 먹는 도시락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말을 걸어도 들어주지 않는 고독감도, 학교에 오면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없어서 늘 창밖만 보고 있었던 시간을 엄마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교실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 맨날 오빠가 있는 반에 가서 창문으로 몰래 쳐다보곤 했다. 설렘 가득 안고 입학한 1학년 생활은 친구 없이 외롭게 마무리가 되었다. 겨울 방학이 돼도 만날 친구가 없으니 집에서 동화책 읽거나 혼자 공기놀이를 하는 게 더 익숙했다. 엄마가 동전 몇 개라도 쥐여주는 날이면 오빠랑 오락실 가서 보글보글을 하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강원도는 지금도 그렇지만 눈이 자주 많이 왔기 때문에 심심찮게 눈을 볼 수 있고 눈사람도 만들며 놀 수 있었다. 오빠가 있을 때는 오빠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놀 수 있었는데 겨울 방학 땐 항상 눈싸움에 눈 굴리며 노는 게 즐거웠다. “오빠~” “언니~” 부르면서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나를 오빠 동생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예쁘게 봐주고 귀여워해 주었다. 겨울 방학은 유일하게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