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못다 한 이야기의 시작_.

by 글지은

유아기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많이 들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자주 이야기 해주시곤 하셨다. 강원도 태백에 있는 자그마한 주택에서 살 때 태어났다. 그때는 아빠가 광산에 광부로 일을 하셨고,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내는 아니지만, 지금의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랑 가까웠다. 우리 식구는 좀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고 파란 지붕의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학교가 정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어서 처음 입학했을 땐 너무 가깝다 보니 집에서 나오면 3분도 안 걸렸다. 더 어렸을 때는 집 근처에 유아원(현재의 어린이집 같은 곳)이 있었는데 오빠는 유아원에 다녔고, 난 안짱다리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오빠 뒤에 졸졸 따라다녔다. 오빠가 세발자전거를 타면 나도 태워달라고 칭얼거리고, 오빠가 나가서 놀면 굳이 따라 나가서 훼방을 놓았다. 말도 제대로 안 되는 녀석이 맨날 오빠 따라 나가서는 “이거! 이거! 저거! 저거!” 하면서 해달라고 요구를 하니 오빠가 맨날 날 데리고 집 밖에 나와서 세발자전거도 태워주고, 겨울에 눈이 쌓이면 썰매도 밀어주곤 했다. 그곳은 강원도답게 눈이 많이 오는 곳이었는데 우리 집이 오르막길 언덕 쪽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오르막길이 아이들 전용 눈썰매장이 되었다. 그래서 추운 겨울 밖에 나가서 놀다 집에 들어오면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서 맨날 오빠 따라 나가서 놀고 집에 들어오면 우리 남매는 코흘리개가 돼 있다고 엄마가 혼냈다. 언덕 같은 곳에 있는 동네라 많은 집이 거주하지 않은 조그마한 동네다. 자동차도 사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었고, 그 언덕길은 눈이 내리면 차가 올라올 수 없는 오르막길이어서 동네 아이들한테 완벽한 눈썰매장이 되었다.

내가 5살이 되고 오빠는 7살이 되면서 한글을 배우러 학원 비슷한 곳에 다녔는데 꿋꿋하게 학원도 오빠 따라 쫓아가서 강제 수강을 했다. 처음엔 학원 선생님도 오면 안 된다고 말리시더니 오빠 따라서 자꾸 쫓아오니까 선생님도 포기하셨는지 그냥 끄트머리에 앉아서 보라 하시며 공짜 한글 배우기를 했다. 엄마는 내가 자꾸 학원에 따라가서 공짜로 글자를 배우니까 연신 선생님께 사과하셨다. 오빠 따라 쫓아가서 한글이랑 숫자를 배우는데 도둑 공부 배운 내가 글자를 먼저 다 익히고 오빠는 못 익히니까 엄마는 어이없어하셨다. “글자는 빨리 배웠는데 말은 왜 그렇게 안 늘고 맨날 더듬거리고 힘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 한걱정하셨단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5살짜리가 그럴 수도 있지!"라며 엄마 말에 반박하며 투덜댔다. 어쨌든 혜택(유아원, 학원 혼자만 다님)은 오빠가 더 많이 누렸는데 뒤에 꽁무니 쫓아다니던 내가 더 빨리 배워와서 말하는 꼬락서니랑 걷는 거는 왜 저 모양인지 엄마는 의아해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걸음도 안짱걸음이 심해서 힘든 데다 발음도 잘 안 됐던 게 소아마비 비슷한 게 아니었나 하고 엄마도 어림짐작만 하셨다. 그때는 시절이 그랬던 건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려니 하고 잘 놀고 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하시며 지냈다고 하셨다. 코흘리개 꼬맹이 시절은 그렇게 오빠 뒤만 따라다니면서 논다고 동네 어르신이나 동네 아이들이 보면 오빠 껌딱지라고 별명을 달고 다녔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오빠 따라서 밖에 나가 놀기 바빴던 시절이라 웃어넘겼던 안짱다리와 말더듬증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무거운 족쇄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아이와의 인연이 그토록 짧은 기쁨과 아픈 추억을 남기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리다면 어릴 수도 있고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 만약 그때의 자신으로 돌아갔다면 그저 죽고 싶은 순간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지금 시대와 그때 그 시절은 다르다. 지금은 선생님들의 폭언이나 체벌 등의 행위가 금지되어 있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친절하고 좋은 선생님들도 많았지만, 체벌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의무적이거나 냉대하는 선생님도 많았다. 상냥하고 친절한 선생님이 계셨다면 내 초등학교 시절은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한 적도 있다. 좋은 선생님이셨대도 언어 자체가 힘들었으니 똑같았을지도 모르겠다. 말도 너무 못 했고 걸음걸이도 이상했다. 그 당시는 언어발달, 신체발달에 관하여 잘 전달이 되고 퍼지던 시절은 아니었다. 장난으로 던진 말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고, 상냥하게 해주는 인사 한마디는 누군가에게 세상 어떤 말보다 행복한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말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잘 쓰면 커다란 힘을 얻지만 잘못 쓰면 칼날처럼 날카롭게 베이고 상처를 입힌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람이기에 누구나 말실수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기도 한다. 단지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평생을 잊지 못한 아픔이기도 하지만 기쁨이었기에 지금의 내게 하나뿐인 이야기가 되고 꽃이 되었듯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꽃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