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 소풍_.
매일 가져가는 도시락이 쇳덩이처럼 무거웠던 교실로 가는 내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웠던 적이 있었을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인사해 준다는 건 즐거운 것이란 걸 알았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점심이 행복하고, 따분하고 지루했던 교실이 좋아졌다. 개학 첫날부터 장난치느라 바쁘다. 쉬는 시간이라 졸고 있는 내 얼굴에 사인펜으로 치는 장난에 잠이 깨니 옆에서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새빨개졌다. “너 내 얼굴에 장난쳤구나!” 그제야 혜인이는 참았던 웃음을 쏟아냈다. 얼른 화장실로 쫓아가서 거울을 보니 코에다 새카맣게 칠하고 볼에는 고양이수염을 그려놓은 것이다. 물로 잘 지워져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교실로 돌아와서 복수하기 위해 사인펜을 들었더니 혜인이는 항복을 외치며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자는 얘기에 홀라당 넘어갔다. 외롭게 지냈던 시간의 보상이라도 받는 듯 다가온 친구는 기쁨도 주고, 웃음도 찾아준 고마운 사람이다.
끔찍하게 싫어했던 과목도 내 번호가 걸릴까 겁낼 필요도 없어지고 책 읽기도 발음이 조금씩 안정되면서 말 더듬는 것도 좋아졌다. 도살장 끌려가듯 마지못해 걸어가던 등굣길이 즐겁게 지나가는 꽃길이 되었다. 가게 안쪽에 작은 방에 눌러앉아 공기놀이하며 딱밤 때리기를 하며 깔깔거리니 둘이서 뭐가 그렇게 신나냐고 엄마가 물어보셨다. 해질 때쯤이면 어느 집을 놀러 가든 저녁도 먹고 헤어지거나 부모님이 허락하실 때는 같이 잠들곤 했다. 계집애가 자꾸 남의 집에서 잠자는 건 안 좋다고 자주 허락하진 않으셨지만, 가끔 허락해 주신 날이면 덩달아 신이 났다. 개학하고 나니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가 지나가고 있다.
바람은 약간 시원했지만, 햇볕은 따뜻한 학교 소풍날이 되었다. 혼자였던 1~2학년 때는 소풍날에 더 우울해져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대고 집에 있는 게 더 편했다. 올해는 친구와 함께 가는 소풍은 날아갈 듯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엄마가 싸주신 김밥이랑 가게에서 혜인이랑 내 음료수 2개와 과자를 챙겨서 학교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반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혜인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손을 마구 흔들어댔다. 그 모습이 왠지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았다. 소풍은 인근 계곡으로 갔는데 추워지기 전이라 그런지 물이 시원했다. 얕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기 좋은 날씨였다.
보물찾기, 장기자랑, 수건 돌리기를 하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가져간 김밥은 꿀맛 같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편안했다. 자유 시간에는 혜인이와 같이 적당히 높은 바위를 찾아 올라가서 그림을 그렸는데 둘 다 그림 실력은 꽝이라서 서로의 그림을 보며 깔깔 웃었다.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 안,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잠이 들었는데 깨보니 학교에 도착한 상태였다. 담임 선생님 지도에 따라 각자 흩어져 집에 돌아가는 길,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고추잠자리가 한두 마리씩 드물게 보였다.
학교 소풍을 즐겁게 보낸 적이 처음이라서 그날은 잠들기 전까지 내내 심장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가을 소풍은 내 생에 제일 기분 좋은 울림으로 기억에 남았다. 즐겁게 학교에 가는 내 모습이 엄마에겐 기분 좋은 일이었나 보다. 얼굴을 보며 슬쩍 웃음을 지으셨다. 학교 가기 싫어서 늦장만 부리던 딸이 빨리 가려고 안달을 하니 신기해하셨다. 웃으며 집을 나서서 학교에 들어가니 혜인이는 벌써 와있었다. 서로 손을 번쩍 들고 흔들며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사회가 들은 날은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굳어지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책 읽기를 시켜도 주눅 들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말 더듬는 것도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선생님들께 칭찬을 받았다.
혜인이가 많이 도와주고 격려해 준 덕분이다. 가을 단풍이 어느 정도 알록달록 빛을 발하는 시기 9월 초중반이 되니 고추잠자리도 많이 보이고 운동장에 나무들도 서서히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었다. 창가에 앉아있을 때는 나무가 물든 풍경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짝꿍이 생기고 자리가 옮겨지면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없게 된 것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학교가 끝나고 혜인이와 함께 운동장 은행나무 밑에 가니 노란 은행잎이 제법 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붉게 물든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 중에 예쁘고 잘 물든 두 장을 골라 서로 국어책에다 꽂아두었다.
예쁘게 잘 마르길 바라며 같이 집으로 향하는 길 혜인이는 여전히 쫑알쫑알 열심히 떠든다.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듣고 있게 된다. 어느샌가 도착한 우리 집 가게 앞, “벌써 2학기다 그렇지?” 그 말이 조금 아쉽게 들려서 그런지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서로의 집으로 향했다. 다가오는 앞으로의 시간도 분명 즐거운 생활이 될 거라고 웃으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