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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간 학교, 남은 자의 그리움

어딜 가나 너와의 기억만 남았다.

by 글지은 Mar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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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밖을 쳐다보는 내 눈은 안개가 낀 것 같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계속 미룰수록 더 가기 싫어진다는 걸 알고 있지만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을 내 책상과 혜인이 책상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혜인이와 친해지기 전까지 친구들의 무관심은 익숙해져 있었기에 반에서 친구가 없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무관심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이렇게 안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같이 뭘 하고 놀든 마냥 즐겁기만 했던 시간이 하루아침에 산산조각 떨어진 퍼즐 같았다. 하룻밤 꿈처럼 왔다 간 것 같더라. 얼굴을 볼 수 있는 건 여름방학 때 계곡 가서 찍은 사진 한 장밖에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 짙어지는 사고의 기억은 밤마다 꿈에 나오고 잠자는 것이 두려웠다.

사고 이후부터 문방구 가자고 내가 먼저 말한 것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난 상태가 좋지 않았던 몇 가지 검사를 더 하기 위해 다시 며칠간의 입원을 해야 했다. 첫날 입원하자마자 검사 몇 가지를 진행했고, 의사 선생님도 이젠 괜찮은 것 같다고 하시며 주의 사항을 알려주셨다. 발목 상처에 염증이 있으니 약 바르는 거 꼭 잊지 마시고 항생제 꼭 먹게 해 달라는 것과 정신과 치료 가는 것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병원을 나서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여전히 고요한 풍경, 가게 안쪽 작은 방에서 묻어나는 그리움은 여전히 마음속에 맴돌았다. 며칠 집을 비웠을 뿐인데 집에 돌아오니 뭔가 휑했다. 엄마는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혜인이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치우신 것 같았다. 그림 그리고 놀던 스케치북이랑 크레파스도 없었고, 공기랑 종이 인형, 툭하면 만들고 놀던 점토도 방에서 사라졌다. 그리운 향기는 똑같았지만, 사람도 기억나는 물건도 사라져 텅 빈 집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학교는 며칠 쉬었다가 등교하겠다고 엄마가 전화하셨다. 날씨가 쌀쌀한 편인데도 잘 낫지 않는 발목으로 인해 여전히 절뚝절뚝 걸어 다녔다. 목발을 짚으며 조용히 산책하던 길 혜인이 어머니와 마주쳤다. 서로의 집이 멀지 않았기에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진 못했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아줌마는 여전히 날 쏘아보는 눈빛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10살짜리가 어른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침묵의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줌마랑 헤어지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절뚝거리며 돌아다니는 길에도 여전히 그날의 사고는 지워지지 않았다. 병원을 갈 때마다 수액을 맞고 끈질기게 붙들고 있는 발목 상처를 치료받는 것과 정신과 상담이 다였다.


방에 있어도 목발을 짚고 밖에 나가도 계속 옆에서 혜인이가 "놀자!"라며 불러주며 우린 신나게 웃고 있어야 하는데 혼자 덩그러니 있는 시간이 숨 막히게 답답했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이미 한번 친구라는 정을 느낀 내게 트라우마는 가슴속에 문신처럼 남았다. 그래도 난 살고는 싶었는지 꾸역꾸역 밥은 먹었다. 당장 학교 가야 하는 날은 다가오는데 나사 빠진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붕대를 감고 있는 발목의 상처는 따갑고 아프고 욱신거렸다. 책꽂이에는 하나하나 추억이 떠오르니 교과서를 다시 펼쳐 볼 자신이 없었다. 10살밖에 안 된 주제에 친구라는 의미는 아는지 모르는지 혼자만 살아있는 게 자꾸만 눈물이 났다. 먹고, 자고, 일어나면 울고, 그렇게 매일 보내니 엄마도 결국 터져버렸다. 엄마와 나 모두 상처로 남았다.

​학교에 가야 하는 날 아침, 밥을 먹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을 나서는데 엄마가 조심해서 갔다 오라며 대문 밖까지 따라 나오셨다. 고개만 끄덕이고 학교를 향하는 다리는 무겁기만 했다. 학교 가기가 무서웠다. 3분이면 가는 학교가 3일은 걸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중간 자리에 있어야 할 혜인이 책상도 내 책상도 처음 낯선 교실에 들어와서 앉았던 창문 앞 구석에 자리한 채 책상 위에는 국화꽃만 자리를 지켰다. 학교 오기 겁났지만 보고 싶기도 했던 우리 자리는 외딴섬에 책상 두 개만 나란히 있는 것 같았다. 옆자리 국화꽃이 꼭 혜인이처럼 웃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움에 눈물이 났다. 낯선 교실 안에서 처음으로 내게 "안녕!" 인사했던 3학년 봄으로 되돌아간 듯한 우리 자리가 보였다. 멍청하게 교실 앞에서 넋 놓고 바라만 보다가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교실 중간쯤에 있던 우리의 자리는 어떻게 된 걸까?'
처음으로 되돌아간 책상이 왠지 더 서럽고 그립기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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