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_
한참을 교실 문 앞에 서서 책상만 바라보았다. 절뚝거리며 걸어가는데 여기저기서 구겨진 종이들이 날아와 내 몸에 부딪혔다. 주워서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눈에 보인 건 칠판 가득 쓰인 비난과 낙서들이었다. 절뚝거리면서 칠판에 글씨들을 열심히 지웠다. 뒤꿈치를 들 때마다 발목에 상처가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머릿속엔 담임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지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힘들게 다 지우고 돌아와 펼쳐본 종이에 쓰인 주홍글씨는 긁히고 따갑고 아팠다. "“넌 안 죽었네?" "왜 살아왔냐?" "메롱" "말도 못 하는 주제에" "허리 굽은 거북이~" 교실 칠판에도 한가득 담겨있는 비난과 비웃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마 뒤에 선생님께서 교실로 들어오셨고, 난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귀를 닫고, 입을 닫고, 눈도 닫은 채 잠만 잤다. 그렇게라도 주변의 말소리와 눈초리를 잊어보려 애썼다. 그 어떤 말을 들어도 살아서 온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엎드린 채 옆자리로 얼굴을 돌리니 국화꽃과 혜인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책상이 보였다. 말더듬이인 내가 반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말도 없지만, 말을 잘하지도 못한다. 교실에 있는 내내 국화꽃만 바라보았다. 자는 척하면서 돌멩이 날아오듯 던져진 구겨진 종이를 움켜쥐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은 더 외로웠다. 친구와의 갑작스러운 헤어짐이 고스란히 스크래치처럼 남았다. 엄마는 손에 든 게 뭐냐고 물어봤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작은방으로 들어오니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쳤다. 기를 쓰고 칠판을 지우느라 발목 상처에 피가 흐른 것도 모르고 울고만 있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엄마가 방에 들어오시기 전에 발목 벌어진 상처에 약을 발랐다. 아프고 따갑고 쓰라렸지만 참을만했다. 몸에 난 상처에 둔한 편이라 이럴 땐 다행이구나 싶었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약을 바르고 혼자 붕대를 감으려 바둥대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오셨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엄마도 말없이 감으려고 바둥대던 발목에 붕대를 새로 잘 감아주셨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만 보다가 가게 일을 보기 위해 방문을 나서셨다.
사고 이후 말이 더 없어지고 어두워진 얼굴에 엄마의 표정도 변하셨다. 병원에서 퇴원 이후에 처음 학교에 갔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내일은 교실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무섭기만 했다. 오늘처럼 내일도 칠판이 그렇게 되어 있으면 어떡해야 할지 무섭고 학교에 가기 싫다는 생각만 했다. 아픈데 아프지 않은 척하는 게 10살짜리 나에겐 너무 어려운 숙제를 끝없이 풀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침이 오는 게 너무 싫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에도 매일 똑같은 칠판과, 친구들과 똑같은 행동이 계속 이어졌다.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곳이 옆자리에 놓인 국화꽃뿐이었다. 교실에 있고 싶어서 남아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남아있는 국화꽃을 보려고 학교에 갔다. 칠판을 지울 때마다 발목에 상처가 벌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칠판을 담임 선생님께서 보게 되는 건 더 싫었다. 악착같이 다 지우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장난으로 하는 따돌림과 비웃음이 반복되니 나도 점점 익숙해지고 무뎌져 갔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행동이 익숙해지니 마음도 굳게 닫혔다. 칠판 글씨를 억지로 뒤꿈치를 들어 지우다 보니 발목 상처만 더 벌어졌다. 2년 넘도록 혼자여서 익숙했던 시간이 혜인이와 만나고 달라지는 듯싶었다. 이대로 다음 학년에 올라가도 그때는 말도 어느 정도 좋아지고 활발해지는 나를 꿈꿨었다. 물론 그 안에 혜인이도 함께라는 전제하에. 10살짜리 꼬맹이가 감당하기엔 아주 아팠다. 왜 이러고 버티고 있나 싶을 만큼 바보 같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꿋꿋이 나간 자리가 아니었다. 친구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화꽃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매일 칠판에 낙서를 지우고 주홍글씨를 보고 자리에 돌아와 바라보면서 마음도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집에 가면 왜 학교만 갔다 오면 발목 흉터가 자꾸 벌어져서 오냐고 묻는 엄마의 목소리에 결국 울어버렸다. 꼭 초상집에 갔는데 모두가 울고 있는 걸 보고 따라 우는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
다음 날 교실에 도착하니 창문 맨 끝에 있던 혜인이 책상과 옆을 지켜주던 국화꽃이 사라지고 없었다. 혼자 덩그러니 있는 내 책상이 보이고 멍하게 바라보며 서 있는 사이 담임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칠판에 쓰여 있는 온갖 낙서와 주홍글씨를 보시고는 멍하게 서 계시는 모습, 정말 전혀 모르셨나 보다. 매일 상처가 벌어져도 칠판을 들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지웠다. 이젠 지켜야 할 국화꽃도 없고 숨길 것도 없어지고 나서야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그때 느끼지 않으셨을까? 왜 이제야 아셨냐고 원망하는 내 눈빛. 아무 미련 없이 교실에서 뒤돌아 나왔다. 담임 선생님은 끝내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다. 난 출석부에 있는 내 이름 ‘신은우’를 그때 이후로 쓰지 않았다. 엄마도 그 이름을 다시는 부르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