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척

등교거부_ 엄마의 결심

by 글지은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하실 뿐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못하셨다. 한 번만 이름이라도 불러주셨다면 고민하는 척이라도 했을 텐데 끝까지 내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으셨다. 선생님 잘못이 아님에도 마지막 걸음조차 그냥 내버려 두신 선생님이 미웠다. 학교를 나와 바로 집에 가야 했지만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서 서성거렸다. 그네에 앉아 흔들흔들 거리며 얼굴도 들지 않은 채 멍하게 앉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엄마가 날 찾으러 놀이터에 찾아오셨다. ‘담임 선생님이 전화하셨나 보다.’라고 혼자 생각했다. 내가 도망가봐야 거기서 거기지... 조용히 엄마를 따라 집에 들어갔다. 내 표정에서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았음을 아시고 엄마는 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결심하셨다. 책상에 남아 있던 국화꽃 한 송이만 손에 쥐고 방 안에 앉았다. 난 더 이상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엄마는 이사 결정을 하자마자 가게 정리를 하셨다. 하나씩 치워지는 과자봉지, 음료수 외 여러 가지 군것질거리들이 사라지고 철판 진열대는 조금씩 비워져 갔다.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내가 가진 추억들도 없어지는 것 같아서 왠지 안타깝고 그리웠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정리하며 말씀은 안 하시지만 엄마에게도 힘들었던 계절 겨울이었다. 등교 거부한 지도 여러 날, 발목에 상처도 무리하지 않으니 아물어갔다. 엄마는 매일 붕대를 풀고 꼼꼼히 약을 발라주셨다. 꼭 칼날에 베인 것처럼 그어진 상처를 하루에 한 번씩 꾸준히 살펴주셨다. 가게 정리로 바쁜 엄마 옆에 갓 돌 지난 아이처럼 쳐다보고 있는 게 눈치가 보였다. 분명 잘못한 건 없는데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지워지지 않았다. 12월이 되고 꽤 추워진 날씨지만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오랜만에 가게 밖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길 건너편 문방구는 여전히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다.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된 사고의 기억이 밀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문방구는 가지 말라고 누가 옷이라도 붙잡는 느낌이었다. 집 밖을 나오기만 해도 보이는 학교는 몇 백 킬로미터라도 가야 될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가끔 산책을 나갈 때마다 뵙게 되는 아줌마는 여전히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혜인이를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조금씩 무뎌져 가는 마음도, 아픔이 잦아들고 있는 상처도, 말을 하지 않는 만큼 커지고 똑같이 욱신거렸다. 엄마는 매일 산책하러 나갔다 오는 내 손을 붙잡고 뭐 볼 게 있다고 자꾸 나가서 안 좋은 기억만 상기시키는 거냐며 나가지 못하게 하셨다.


불과 몇 달 전에도 서로 웃으며 마주했던 아줌마도 이젠 만나지 않는 눈치였다. 여전히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못난 딸을 돌보느라 그러신 것도 있지만 엄마도 아줌마를 보러 가는 것을 망설이시는 눈치였다. 며칠이 지나고 가게 정리가 반 정도 마무리되었을 즈음 엄마가 날 부르셨다. 같이 갈 곳이 있다며 겉옷을 챙겨 입고 나오라 하기에 스웨터를 챙겨 입고 나와서 밖을 향했다. 내 손을 잡고 향한 곳은 다름이 아닌 학교였다. 등교 거부 이후 담임 선생님은 한 번도 찾지 않으셨다. 집에도 방문한 적이 없으셨고 집으로 전화를 하신 적도 없었다. 엄마는 전학 문제를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하실 생각이셨다. 다시는 주변도 얼씬거리고 싶지 않았던 학교에 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몸을 향해 날아오던 주홍 글씨들과 칠판 가득 쓰여 있던 온갖 비웃음과 놀림은 기억에서 평생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엄마는 무서워서 잠시 주춤거리는 내 손을 붙들고 담임 선생님을 뵈러 교실을 찾으셨다. 그때가 12월 초, 몇 주만 있으면 방학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교하는 반 아이들을 피해 조심스레 들어간 교실에는 여전히 내 책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선생님과 엄마가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제일 뒤쪽 창문 옆 의자에 슬쩍 앉아보았다. 새삼스레 그리웠다. 투덕거리며 장난치던 모습도, 맛있게 함께 먹던 도시락도 한꺼번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창문 밖에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더욱 그리움이 사무쳤다. 할 수만 있으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고, 운동장을 감싸듯 하얗게 쌓인 눈만큼 두 계절의 추억은 짙은 향기를 품었다. 엄마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시며 얼굴이 일그러지셨다. 아이가 학교를 나오지 않는데 왜 한 번도 안 찾아오셨는지, 전화 한 번을 안 하셨는지 선생님을 원망하시는 눈빛이 고스란히 보였다. 내가 학교에서 미련 없이 나갔던 날처럼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선생님조차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것이 내내 원망으로 남았다.


엄마는 아이의 출석 인정과 전학 관련 서류절차를 밟고 싶다며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무 대답 없이 준비해 주시는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 나한테만 그렇게 보였던 걸까? 자신의 학생이 받은 상처보다 조용히 현실을 덮기에도 바쁜 것처럼 보였다. 반 친구들이 새긴 주홍글씨와 놀림보다 선생님의 흐지부지한 행동이 더 아픈 상처를 입게 했다는 건 아마 평생 모르시겠지. 서류 정리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제야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선생님은 모르실 거다. 친구들의 놀림과 괴롭힘보다 끝까지 모른 채 지나가신 선생님의 무관심이 더 아팠다는 것을. 엄마와 함께 돌아서는 내 모습을 아무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셨다. 다시는 학교 운동장을 밟지 않았다. 사고 이후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척해야 했던 시간 모두 가슴속에 묻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