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뿌려진 살구나무 아래_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몸과 상처들을 돌봐주시며 엄마는 가게 정리를 계속하셨다. 난 책상을 정리하려 뒤적거리다가 엄마가 치우신 스케치북과 혜인이와 같이 놀던 종이 인형과 공기를 발견했다. 말씀은 버릴 거라 하셨지만 엄마도 버리진 못하셨다. 혜인이가 아니었다면 난 여전히 심한 말더듬증도 고쳐가지 못하고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한 채 집에서 몰래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었겠지. 그 마음을 엄마도 모른 척 무뚝뚝하게 내 이름을 부르시지만 알고 계셨다. 등교 거부를 하고부터 엄마는 등본상의 내 이름은 부르지 않으셨다. 할머니 댁으로 이사하고 나면 등본상 이름도 완전히 ‘지은’이로 바꿀 거라고 말씀하셨다. ‘은우’라는 이름은 등본에만 쓰여 있는 이름일 뿐 혜인이도 가족들도 다 ‘지은’이라는 이름이 익숙했다. 나도 ‘은우’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사하게 되면 이 마을에 다신 오는 일이 없겠지?’라는 생각이 드니 혜인이가 더 그리웠다. 마지막까지 옆에 있던 국화꽃만은 지켜주고 싶었는데 꽃을 지킬 힘도 내게는 없었다. 책상 위에 있던 몇 송이 국화꽃이 마음에 남았다.
그날 오후 외투를 챙겨 입고 혜인이네 집에 찾아갔다. 아줌마가 계셨는데 눈빛을 보자마자 신발에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것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같이 사고를 당했고 나도 피해자였다. 어쨌든 난 살아있고 혜인이가 방패막이가 되어준 것도 사실이란 것은 틀림없으니까. 현재는 아줌마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나 3학년때는 그 마음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여전히 죄인 쳐다보듯 날 보고 있는 아줌마가 무섭기만 했다. 인사도 드리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풀리셨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두 눈에 원망 가득한 얼굴로 왜 왔냐고 물으시는 목소리는 가시가 돋쳐있었다. 말더듬증을 많이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무서워서 얼어붙으니 말더듬이 저절로 반복되더라. 겨울방학이 되면 이사한다고 말씀드리러 왔다는 말이 이렇게 긴 말이었나 싶었다. “아…. 아줌마, 저 혜인이 보러 가…. 가보고 싶어요. 어디로 보냈는지 아….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아줌마는 됐다며 알려주지 않으셨다. 아줌마에게는 여전히 혼자만 살아 돌아온 아이일 뿐이다. 이사하기 전에 혜인이에게 꼭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집에 오니 엄마도 마음만 안 좋게 왜 자꾸 가려 하냐며 말리셨다.
내가 보낸 초등학교 3년이라는 시간은 하루하루가 대부분 침묵의 시간이었다. 말을 더듬는 게 심했기에 친구도 없었고 놀림받는 게 생활이었다. 3년이 아니라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계속 친구 한 명 없이 무미건조한 생활을 보낼 거라 생각했다. 도시락도 혼자 먹고 뭘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 하나 없었다. 내가 6학년이 되어도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차라리 말을 하지 말자고 마음을 닫았다. 말 더듬는 자신이 짜증 났다. 세상 다 산듯한 표정을 하고 맨 뒷자리 책상에서 창밖만 보다 끝나겠네….라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혜인이는 무표정에 재미없는 표정을 한 내게 처음 먼저 다가와 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다가가지 않았던 내가 마음을 열게 한 유일한 친구였다. 함께했던 두 계절 동안 그렇게 많이 웃으며 지내본 적도 없고 말을 많이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국화꽃을 잊을 수 있을까. 차갑게 얼어붙은 여리고 어린 마음에 밝은 빛으로 다가와 준 명랑하고 착했던 친구였다.
혜인이가 있었을 때 아줌마는 내게 한없이 다정하셨다. 집에 갈 때마다 상냥하게 웃어주시고 과일도 예쁘게 깎으면 내게 먼저 권하시며 좋아해 주셨다. 우리 엄마도 내게 엄마시지만, 아줌마도 내게 상냥한 엄마 같은 분이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든 아줌마에게만큼은 미움받은 채 이사하고 싶지 않았다. 아줌마는 볼 필요 없다며 집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절뚝거리는 다리 때문인지, 아니면 볼 수 없는 혜인이 생각만 해서인지 무겁기만 했다. 정리하다 말고 나가서 어지럽혀져 있는 내 책상. 엄마는 상자를 하나 주시며 책이랑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넣으라고 하셨다. 서랍을 열어서 옷부터 차곡차곡 담았다. 지금 우리 애들이라면 놀러 나가기 바빴을 테지만 그때는 나만 그랬는지 어쩐 지는 몰라도 당연한 것처럼 커왔다.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밭에 고추 따러 가는 것이 일상이고 10살이어도 내 실내화, 운동화는 스스로 빨아서 신어야 했다. 혜인이네 집에 놀러 가도 그 점은 다르지 않았다. 그때는 아이들 대부분이 자기가 갖고 논 것, 시간표대로 가방에 교과서를 챙기는 건 당연히 알아서 해야 했다.
다음날, 다시 아줌마 집으로 찾아갔다. 이사하기 전에 꼭 혜인이를 보고 싶었다. 엄마한테 졸라서 국화꽃을 사 들고 아줌마를 다시 뵈었다. 아줌마는 내가 등 뒤로 숨긴 하얀 국화꽃을 보셨는지 얼굴을 돌리셨다. 얼어붙은 입을 다시 한번 열었다. “ 아…. 아줌마, 저, 곧 이…. 이사 가요. 학교는 안 가지만 겨…. 겨울방학이 되면 이사할 거라고 엄마가 그…. 그랬어요. 가…. 가기 전에 혜인이 한 번만 보게 해…. 해주세요.” 아줌마는 집 뒷마당에 심어진 살구나무를 가리켰다. “저…. 드…. 들어가도 돼요?” 겨울이라 앙상하게 뻗은 살구나무 가지가 담장 위에 가지런하게 뻗어있었다. 아줌마는 보고 싶지 않은 듯 “인사하고 가라!” 차가운 말 한마디를 건네시고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나무 아래 서있으니 손에 들려 있는 국화꽃이 학교에서 봤던 국화꽃처럼 예뻐 보였다.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설움과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다시 오지 않을 테지만 유일한 친구가 돼주었던 사람에게만은 마음을 남겨두고 싶었다. 하지만 보고 싶다는 말 이외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없더라…. 난 국화꽃을 살구나무 아래에 가지런히 기대어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난 그제야 말할 수 있었다.
“고마워…. 안녕! 나의 국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