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사진 한 장_
엄마는 막바지 가게 정리에 바쁘셨다. 난 얼마 남지 않은 이곳에서의 추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외로웠던 시간 속에 벚꽃 피던 계절 처음 만난 친구와의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조그마한 책상에 있는 책은 상자에 가지런히 담고, 혜인이와 같이 놀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따로 보관함에 넣었다. 작은 보관함에 추억이 가득 담긴 인형들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여전히 욱신거리는 상처가 그리움을 더했다.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엄마가 들어오셨다. 혜인이와 관련된 물건들은 놔두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말씀을 꺼내셨지만, 그것만큼은 내키지 않았다. 엄마는 다리에 상처만 봐도 고개를 돌리셨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으실 거라 어린 마음에 짐작만 할 뿐이었다. 살구나무 아래에 다녀온 이후 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아 산책하러 나가지 않았다. 아직 방학 전이라 하교 시간이 다가오면 반 친구들이 종종 눈에 보였다.
여전히 아프게 남아 있는 조롱과 비난은 지워지지 않았다. 작은 방문 앞에 걸터앉아 길 건너 문방구를 한참 쳐다보았다. 밤에 꿈을 꾸면 사고 당일 혜인이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횡단보도와 이어져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보면서 떠오른 건 여름방학 때 둘이 찍은 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을 두 장 뽑았었는데 혜인이는 잃어버렸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 사진을 어딘가 꽂아둔 건 알겠는데 정확히 어디에다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책꽂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 지레짐작만 할 뿐이다. 사진이 생각나자마자 책상 곳곳을 샅샅이 찾아도 그 사진 한 장이 안 보였다. 엄마가 치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엄마 아빠가 보는 책까지 다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꽂아놓은 건 확실한데 어떤 책이었는지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어 갈 무렵, 엄마는 가게 정리를 대부분 끝내놓으신 상태였다. 과자와 식품들이 가득했던 진열대가 바닥을 드러내고 앙상한 뼈만 남은 듯 보였다. 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결심하시고부터 계속해오시던 가게 정리가 끝났다. 전학 절차를 마무리 지으러 엄마와 같이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학교 안에 발을 들이는 건 여전히 무섭고 힘들었다. 선생님과 전학 관련 서류 정리를 끝내시고 엄마는 더는 선생님과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담임 선생님은 등교 거부로 인해 학교에 가지 않았던 몇 주 동안 출석 인정을 해주셨고 딱히 드릴 말씀이 없었다. 욱신거리는 발목을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책꽂이와 상자에 넣었던 책들을 다시 엎었다. 혜인이와 찍은 사진을 어디다 꽂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교과서를 모조리 팔랑팔랑 다 흔들어댔는데 국어 교과서에서 사진 한 장이 떨어졌다.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국어와 사회였지만 혜인이와의 추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 또한 국어랑 사회였다. 사진 속에 우리는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초등학교 3년 동안 제일 해맑았던 모습이 사진 속에 있었다.
늦은 오후 시간, 유일하게 혜인이가 찍힌 사진 한 장을 들고 아줌마를 뵈러 찾아갔다. 내 모습을 보는 게 아줌마께는 아프실 테지만 꼭 이것만이라도 전해드리고 싶었다. 딱딱한 어투로 왜 또 왔냐고 물으시기에 잠시 겁먹었지만 손에 쥐고 있던 사진을 내밀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혜인이 사진을 드리며 하고 싶었던 말을 아줌마께 마지막으로 드렸다. “이 사진 드…. 드리려고 왔어요. 제…. 제가 아줌마께 드릴 수 있는 게 이 사…. 사진 한 장뿐이라서 죄…. 죄송합니다. 그…. 그리고 저 이사 갈 거니까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사진 속에 들어있는 마지막 혜인이의 웃는 모습을 받아 보시고 처음으로 아줌마는 내게 웃어주셨다. 우시는 것인지 웃으시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미소를 지으시면서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혜인이와 찍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아줌마의 눈물에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내게 남아 있는 유일한 친구의 사진과 함께 추억을 담은 보관함도 작은 방에 놓아두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엄마 말을 듣고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내려놓음을 처음으로 배웠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후, 우리 가족은 미련 없이 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했다. 국화꽃이 꽂힌 병과 보관함은 그 자리 그대로 남겨두고 안녕 인사했다.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것 같지만 난 많은 것을 가져왔다. 지워지지 않는 몸의 상처들이 증거로 남아 있지 않은가. 그 아이와 함께했던 짧은 두 계절은 사막 위에 펼쳐진 잠깐 동안의 오아시스 같았다. 오래오래 내 가슴속에 남겨두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