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인류생존을 위한 공존의 가치
공존이란 서로의 물리적, 정서적인 거리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것에 그 가치가 있는 공존은 최근 들어 많이 언급되는 '느슨한 연대'와도 그 결이 같다. 이제,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맞이한 위기를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또한 그렇기에 완벽을 추구하는 현 사회에 부딪혀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분리해 자신의 신체와 공존하는 하나의 '인간', 즉 또 다른 '존재'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개인의 신체와 개인의 내면을 일치시키기보다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렇게 가장 작지만 가장 큰 의미의 공존을 깨닫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가치관을 찾아 나가는 것과 동시에 그 시선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이런 경험은 자연스럽게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관계'라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생존기술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관계'라는 것에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다. 물론 코로나 사태로 인해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느슨한 연대'라는 키워드가 괜히, 갑자기 조명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가족같이'라는 표현을 사람들이 기피하게 되는 이유도 그 표현에 담긴 것이 공존의 진정한 의미와는 정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나, 나는 너'라는 의식에서 비롯되는 공동체는 집단주의에 휘둘려 조율은커녕 속에서부터 곪아가게 되고, 결국 붕괴하여 버리기에 십상이다.
한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직면한 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경험한 바로, 그 속에 포함된 가족, 학교, 직장 등의 모든 공동체는 민족성과 관습이라는 획일화된 사상에 얽매여 있었고 나는 그런 사상과 통제에 휘둘리지도, 굳건히 발 디디지도 못한 채 속만 뭉그러지고 있었다. 이런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가 바로 한국이라는 국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공존의 진정한 가치에 기반한 건강한 관계 맺기가 이토록 복잡하고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원활하게 움직이는 윤활제가 되어주리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또한 '관계'에 대한 논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종(種)끼리만 공존하는 존재 또한 아니다. 우리는 자연에 속한 존재이기에 자연이라는, 지구라는 모태에서 탄생한 모든 존재와 공존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는 코로나가 바이러스이지만 지구에게는 인간이 바이러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며 심지어 그 사실을 인간이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다.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 아니다. 무관심이다. 그들의 존재에, 그들의 영역에 무관심하여 지금까지와 같이 짓밟기만 한다면 전쟁의 비극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혼자 꿈을 꾸면 한낱 꿈일 뿐이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꾼다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라는 훈데르트바서의 말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우리 모두의 인식 개선에서 비롯되어 확장되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 개선은 '나'라는 존재를 또 다른 존재로 인식하여 개인에게 주어진 삶에 함께 공존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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