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효능감은 높지만 자존감은 낮은 사람

by 스윗제니

자기가 뭔가를 잘한다는 것을 아는 것 = 자기효능감

자기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 자존감


뭔가를 잘해야 가치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기효능감을 자존감과 동일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게 정말 문.제.다.


솔직히 타고난 게 많다.

이룬 것도 가진 것도 많다.

남들이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부족한 게 별로 없다.


거의 아기때부터 쭉 그랬다.

늘 무리 중의 한두꼭지 안에는 들었다.


그래서 당연히 자기효능감은 상당히 높다.

39년 정도 살다보니 메타인지도 많이 발달해서

이젠 생소한 분야라 하더라도

어느정도 시간을 투자하면 괜찮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지 미리 예측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존감이 바닥이다.

난 언제나 하녀다.


남의 일을 대신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

직장에서든 집안에서든.


난 희생해야 마땅하고, 남들은 나로 인해 편해져야 한다.

그게 내가 남보다 많은 능력을 가진 이유인 것 같다.


굳이 원인을 찾자면 원가족의 양육환경 때문이다.


내 편이 없었고

나를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늘 내가 뭔가를 이루거나 해내야만 나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거나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내 세대가 다 그렇게 자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여러 여자들의 글을 읽어보면 그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나와 동년배인 여자들도

상당히 집에서 귀하게 자랐고,

금이야옥이야 길러졌다.


세상에 시집가기 전에 집안일 한번 해본 적 없이 자랐다고 한다.

엄마가 일부러 아무것도 안시키고 키웠다고 한다.

처녀 때는 친정엄마에게 팬티빨래까지 다 맡겼다고 한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쉬다 온다고 한다.

친정엄마가 반찬을 바리바리 싸준다고 한다.

친정엄마가 자기 걱정을 할까봐 마음 아파서 고민이 있어도 일부러 숨긴다고 한다.


친정엄마와 감정공동체인 여자들

친정엄마가 자기의 하녀인 여자들

친정엄마의 공주인 여자들


그런 여자들의 과거회상고백 글들을 보며

내 안엔 더할 수 없는 이질감과 괴리감, 그리고 엄마에 대한 원망이 차오른다.


그렇게 자랐으니

결혼해서 남편이 미울 수밖에

투쟁해서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노력할 수밖에

싸우고 싶을 수밖에


내가 그 모든 것을 포기하는 동안.


나의 결혼생활 첫날은

처녀생활 마지막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십대의 생활도 계속 비슷했다.


물론 결혼 12년차인 오늘이 결혼 첫날과 같진 않다.


결혼전에 나는 충분히 일하고 있었고, 일할 줄 알았다. (물론 집안일)


내 빨래 돌리는 김에 가족들 빨래를 같이 돌리는 것은 십수년째 이어져왔던 일상

내 생필품 사는 김에 가족들 쓸 것을 같이 사오고

해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주말에 해먹고

내 방 청소, 거실청소에 욕실청소.

하지만 친정엄마는 '니가 언제 뭘 얼마나 했냐'고 기억왜곡중


그런 엄마에게 반문하고 싶다.

그럼 나를 귀하게 키웠냐.


나를 인정하긴 하냐.

언제나 1등하는 나보다 뒤에서 5등 안에 드는 내 남동생이 실은 더 똑똑하다며?

누나는 언제나 양보해야 하고 동생 밥을 차려줘야 한다며?

너는 먹고 싶지 않아도 동생 배고픈 건 안된다며?

너는 외모도 중간 정도라며?

못됐고 까칠한 년이라며?

엄마에게 도대체 나는 뭐하나 예쁜 구석,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나 싶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믿는다.

애의 자존감은 엄마가 채워주는 거라고.

자기효능감은 별개라고.


내 자존감은 스스로 채울 수가 없다.

심리상담도 반년 받아봤는데 안된다.

엄마가 채워줘야 된다.

엄마의 인정, 관심. 그거 하나면 바로 신분상승할 것 같은데.

아직도 안해준다. 그것을.


남편이 집안일에 손하나 까딱 안해서 엄마에게 징징거려봐도

어쩌겠냐. 니가 선택한 사람이니 니가 알아서 해.


뉘집딸은 귀하디귀해서 시집가기 전에 손에 물한방울 묻혀본 적이 없다던데.

나는 당연히 일하는 엄마대신 갈리고 갈렸음에도

엄마는 넌 그런 적 없다며 현실부정하고

시집보낸 후에도 나 혼자 갈리는 결혼생활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는 커녕

어쩌겠냐. 니 선택 ㅇㅇ


원가족이나 지금가족이나

나는 가족 밖에 나가야 자존감이 회복된다.

가족 밖에서는 자기효능감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가족 안에서는 엄마의 하녀, 남편의 식모일 뿐.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족 내 나의 자존감을

아이를 통해 대리충족한다.

아이의 자존감을 채워주면서

나를 간접적으로 보듬는다.


널 낳아서 정말 행복해

너는 정말 잘 컸어

넌 내 귀한 아들

이렇게 봐도 이쁘고 저렇게 봐도 이쁘구나

세상 소중한 내 새끼


그래.

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만 쏙쏙 골라서 아이에게 매일 같이 해준다.


못해도 돼

안잘해도 돼

안도와줘도 돼

엄만 괜찮아


영원히 듣지 못할 것 같은 말들


내가 아이를 두고 일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 때문이 아니다

나 때문이다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아이를 붙잡고 엄마놀이를 하는 것이다.


어서 커야 하는데.

어른이 되야 하는데.

몸은 컸고 경험은 느는데 내 마음 속 어린애는 아직도 나를 세상밖으로 안놔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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