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인가 한국소비자인가

by 스윗제니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아직도(?) 부추, 알타리, 얼갈이, 쑥갓, 미나리, 취나물 같은 의문의 식물들을 판매한다. 그것도 아주 큰 덩어리로, 아주 값싸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식재료를 사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1도 없는데 아직도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는 걸 보면 세대간의 격차가 매우 크며, 우리 윗세대 분들이 아직 활발하게 경제활동, 소비활동, 생산활동 중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주부생활 12년차인 내가 지금까지 사서 써본 야채들이라고 치면 양파, 고추, 애호박, 당근, 대파, 버섯, 시금치 정도가 전부다. 적어놓고 보니 나물류, 김치류와 안친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꿔말하면 내가 모르는 어떤 사람들은 부추, 알타리, 얼갈이, 쑥갓, 미나리, 취나물 같은 것을 빈번하게 소비하며 뭔가를 늘 만들어 먹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나리 같은 것이 해물탕에 쓰인다는 정도는 알지만, 그 이후의 쓰임새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해물탕 한번 끓이려고 미나리 몇단, 몇묶음을 사게 되진 않는다. 해물탕을 한 끼 사먹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식재료 낭비를 막는 일이 되는 셈이기에.


한국적인 것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생산할 수 있는 사람. 문화를 계승하고 이어가는 사람을 한국인이라고 한다면, 나는 한국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한국적인 것을 빈번하게 소비하는 한국소비자일 뿐.


나는 김치도 담글 줄 모르고, 각종 나물류에 둔하며, 한국 놀이문화에도 익숙치 못하다. 내 몸속엔 한국적인 것이 거의 없다. 나는 새끼를 꼬아 바구니를 만들줄도 모르고, 연을 만들줄도 모른다. 한 사람이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본다면 나에게 한국적인 정신문명은 어느정도 이어져 내려왔고, 후세에게 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지만 물질문명 측면에서 본다면 나는 그저 소비자에 불과하다. 후손에게 내려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비단 나뿐만의 일이 아니다. 어느 날 우리나라의 모든 김치공장이 문을 닫는다면 당장 우리는 어디서 김치를 공급받아 먹어야 할까? 우리의 어머니들이 돌아가신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노인들을 공경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전통적인 것을 계승하는 일에 매우 인색하다. 전통적인 것을 계승하는 일에는 상상 이상의 노동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해물탕 한번 끓이려고 최소한의 단위로 산 미나리를 서너번에 걸쳐 다시 재가공해서 먹어야 하는 일이 벌어지듯이, 합리적이고 싶고, 간편하고 싶고, 간소하게 살고 싶으면 전통문화로부터 멀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김치를 한번 담그려고 배추를 몇포기 사게 되면 상상 이상의 부추와 생강이 남는다. 부추와 생강을 재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므로, 또는 알아도 하지 않을 것이므로 김치를 담그지 않게 되고,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지 않게 된다. 모든 과정은 이렇게나 합리적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기성세대들은 그 귀찮고 비합리적인 일을 계속 하고 있느냔 말이다. 거기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치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태어났던 80년대에는 집집마다 혼수로 자개장을 사왔다. 이름도 '농'이라고 불렀다. 친구집에 놀러가도 자개장을 보는 일이 흔한일이었다. 그런데 20년만에 자개장은 거의 우리 나라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전칠기 만드는 방법을 계승하여 유투버가 된다면 대번에 글로벌 스타가 될 수도 있을 정도로 희귀해졌다.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다. 먹는 방법만 알고, 돈 주고 살줄만 아는 것이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만드는 데 어떤 재료가 사용되는 것인지에 대해 깜깜한 신세다. 어린애들이 가지고 노는 연, 팽이, 딱지 이런 것들은 원래 다 집에서 각자 만들어 가지고 놀던 것들이다. 연만들기가 말이 쉽지 나무에 올라가서 대나무를 꺾어 오는 것부터 과정이 시작된다. 어찌보면 못하는 게 당연한데, 그렇다고 전부 사야 되는 것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은 찜찜함이 남는다.


나는 어려서 다행히(?)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할머니는 하루종일 일을 했다. 일 중의 대부분은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다듬는 일이었다. 할머니는 지금의 나로서는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 다양한, 각종 식물들을 하루종일 구부리고 앉아서 다듬어 내고 몇 젓가락이면 끝나는 밑반찬으로 둔갑시켜 놓는 저부가가치적 집안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바치셨다. 당연히 만두는 직접 빚어 먹는 것이었고, 칼국수도 직접 밀어 먹었고, 수제비는 당연히 빚어 먹었고, 김치 또한 직접 담갔으며, 물도 항상 보리차로 끓여 마셨다. 그 어떤 반찬도 돈 주고 사먹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반찬가게가 없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는 이어가야 한다. 그 복잡하고 귀찮은 저부가가치의 일을. 그 저부가가치의 일을 아무도 할줄 모르는 상태가 되면 그 자체로 기술독점 상태가 되기 때문에 기술장인들에게 부가가치가 쏠리게 될 지도 모른다. 왜냐면 한국소비자들은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현대적인 생활감각을 가지지만, 전통적인 노동생산성의 가치를 이어가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사람들이 매체력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하게도 부가가치가 그 사람들에게 쏠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 원래는 자기 엄마에게 공짜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돈주고 남에게 배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노인들에게 귀기울이고 싶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지혜와 경험을 배우고 싶다. 그분들이 아직 살아계실 때 공짜로 배우고 싶다. 그분들은 다름아닌 우리 각자의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나는 공짜로 배우지만 남들에게는 돈받고 팔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보란 무릇 가공하기 나름이니까.


한국의 근현대사가 궁금하다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자. 아직 안돌아가셨다. 교과서보다 정확하고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신다.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살아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자. 생존자들만이 내지를 수 있는 깊은 울림을 전달받을 것이다.


나는 남은 인생을 한국인으로 살 것인가, 한국소비자에 머무를 것인가.

부의 이동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예의주시해볼 바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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