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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Jun 05. 2022

시니컬하자

'넌 좀 부정적이야'

'넌 시니컬해'


중딩?무렵부터 주변 친구들에게 늘 듣던 이야기다.

처음부터 시니컬하고자 열망한 적은 없으나

친구들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좀 우쭐(?)해지곤 했다.


하긴 그 당시 나이는 중2병 상태였으니

시니컬한 것이 좀 멋진 언니처럼 보이는 패션 선글라스 쯤 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요즘 말로는 '걸크러쉬'를 지향했던 것 같다.


나의 시니컬한 발언, 시니컬한 시각, 시니컬한 유머는

제법 또래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나는 시니컬하게 사람들을 '웃기곤' 했던 것이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 '시니컬한' 어떤 것을 활용하고자 했고,

그렇게 친구들이 내 곁에 모였고,

도구에 불과했던 '시너컬함'은 어느새 나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헌데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가서

갑자기 난데 없는 '남자들'과 섞이게 되자

나의 시니컬함은 방향성을 잃게 되었다.

여자애들끼리는 분명히 먹혔던 '인기' 요인이었는데

남녀 무리 사이에서는 뭔가 오묘한 불편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남녀 무리 사이에서의 시니컬한 유머는 

가끔 사람들을 웃겨주긴 해도 인기 있어지는 수단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전생에 걸처 가장 치열하게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한 20대 초반의 처절한 생존경쟁의 터전에서는

시니컬한 여자는 무엇보다 매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애들 입장에서 여자사람 친구로서 재미있어 죽겠는 친구의 포지션도 아니었다.

(더 재미있는 만담가 남자사람 친구들이 훨씬 많았으므로...)


밝고, 맑고, 솜사탕 같은 순수한 포장지를 뒤집어 쓴 여자아이들 무리 속에서

시니컬한 대나무 같은 여자는 튀긴 했어도 별로였다.

성격을 시니컬함으로 잡고 가다보니 여성스럽고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다니는 것도 여간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그 성격 그대로 나는 중성적으로, 베이직한 스타일을 고수하며 지냈다.

변화가 필요했지만 변화의 방향성을 모색하지 못한 채,

그 애매한 상태 그대로 그냥저냥 살다가 어찌저찌 결혼해서 애낳고 아줌마가 되었고

이제 40대가 되었다.


이제와서는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 시니컬해졌다.


진심으로 세상이 걱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휩쓸리고, 옯겨붙고, 선동당하기 쉬운 세상이 되었다.

중심을 잘 잡고, 밑단에서보다 윗단에서 내려다 볼 수 있고,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으려면

진실로, 정말로, 진정한 시니컬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나마 소리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기록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 페북에 비문남발 형태로 짧은 글들을 퍼부어놓곤 했는데,

그 주제들을 잘다듬어서 정돈된 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다 한편으로 치우쳐가도,

누군가는 다른 시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존재가 있다고

그렇게 작게나마 존재감을 울리고 싶다.


그것이 이 시리즈 시작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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