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전이나 금요일 오전
바쁜 한 주 동안 잠깐의 망중한이 찾아오는 때가 있다.
망중한이 제발로 찾아오지 않으면 내가 뛰어나가 억지로라도 맞는다.
인간에게 잠깐의 쉴틈은 반드시 있어야 하니까.
이 망중한 동안 주로 나는 걷는 편이다.
무조건 밖에 나가 걷고, 자연을 보고, 사람들을 본다.
이런 행동들을 통해 브레인 워싱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빈자리가 정리된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지난 20여년 간의 광고마케팅 외길인생의 스토리와 지식, 경험을 공유하면 어떨까 하고.
그냥 썩히긴 아깝고, 그렇다고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분명히 도움이 되고, 나 자신에게도 유용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경험과 지식을 정리하고 가공하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쓰레기도 재료가 되고, 재료들이 모여 또 다른 상품과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43년간의 경험을 통해 닳도록 배워왔으니까.
대기업 오너들의 인터뷰를 보다보면 스스로를 '장사꾼'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기업 CEO가 장사꾼이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저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말이겠지.
하지만 대기업 오너들의 그 표현 속에 비지니스의 본질과 핵심이 숨어있다는 것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비지니스의 본질은 '사람'이라는 속성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그런 스스로에 대한 통찰이 나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을 설득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장사가 된다는 것이고
그 장사를 위해 제품으로 마음을 얻든, 서비스로 마음을 얻든, 덤과 사은품으로 마음을 얻든 해야된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넘어온 비지니스란 학문, 그 중에서도 마케팅과에서는 마케팅을 학문적으로 정리해보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수립하고 또 수립해오고 있다.
마케팅판에서의 무수한 이론들은 그 어떤 것 하나 틀린 것이 없지만 그렇다고 그 어떤 이론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말이 다 맞고, 모든 말이 다 부족하다.
그 와중에 3C이론이라고 해서 고객(customer)/자사(company)/경쟁사(competitor)를 마케팅의 핵심속성을 구분한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서양 경영학에서 '사람'에 대한 시각을 겸비하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는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사람'에 대한 부분. 그것이 장사의 본질이고 마케팅과 경영의 최종 종착지라는 사실을 나는 최근 강하게 느끼고 있다.
서양식 접근 방법인 '판매'와 '구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지어서는 결코 본질에 닿지 못한다.
거래는 본디 쌍방적이고, 양자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체결이 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일즈를 판매와 구매로 양분지어 생각하면 이기적인 소비자와 음흉한 판매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떻게 하면 내 제품을 잘 포장하여 고객에게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느끼게 하여 기꺼이 가격을 지불하게 하고, 나는 내 마진을 극대화할까?
이것이 서양의 전통적인 비즈니스 이론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한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기업의 이런 속내와 방법론들이 낱낱이 소비자에게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기업의 과장광고에 속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왠만해서는 기업에게 잉여마진을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심리적 태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현재의 세일즈 판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소비자는 똑똑해졌고 온갖 지식으로 무장한 상태다.
이들이 기업에게 잉여마진을 허용하는 범위는 '내가 직접 하자니 돈과 비용과 시간이 너무 들어서 직접할 수는 없는 수준'까지다.
때문에 단순 재판매식 유통업자들은 '한 곳에서 모아서 사니 시간이 절약되어 편리하다'고 느껴지는 범위 이상 수준의 고마진을 책정하기 어려워졌다. 왜냐햐면 이제 소비자는 인터넷 어디서든 최저가를 검색하여 가장 싼 제품을 찾아낼 수 있는 인프라와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마진은 박해졌고 소비자는 더욱 더 이기적으로 변모해간다.
물건을 구하는 것이 어렵고 물건이 귀했던 시절에 소비자는 기업을 감사한 대상으로 여긴 적도 있었건만 이제 소비자는 기업을 '소비자를 등쳐서 폭리를 취하는 존재'로 인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며, 더 나아가 소비자는 분명히 자신이 구매한 재화나 서비스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자신에게서 일방적으로 현금을 가져가버렸다고 느끼기도 한다. 무슨 말이냐면, 기업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고 유통한 노력과 자본투자에 대한 인정이 극저화되고, 본인이 지불한 현금의 가치만 인지하는 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얼마 되지도 않는 원가의 제품으로 편하게 돈버는 기업은 자신에게 거대 잉여마진을 취득했으며, 자신은 그 잉여마진만큼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라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검색하면 알게 되는 온갖 제품의 원가구조들, 투명해져버린 기업의 유통, 수익, 매출구조. AI가 대체해나가는 인간의 지적노동력의 분야들. 이제 장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내가 찾은 해법은 이것이다.
겸손해지기. 소비자와 같은 눈높이게 서기.
하나 얻어오고 싶으면 내 것도 내어놓기.
우리는 프리미엄이고~ 제품의 품질이 너무 좋고~ 친환경이고~ 그래서 이 정도 가격은 받아야 되고~
반짝은 성공할 수 있으나 그 성공이 영구적으로 보장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들 아시리라.
시장엔 언제나 프리미엄을 뒤쫓는 추격자들이 실시간으로, 더 합리적 가격으로, 더 좋은 서비스로 매일 탄생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