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안키 21편] 우리나라 훈육의 언어 - '안돼'

대신 이놈, 어허, 에비, 지지

by 스윗제니

우리 세대 엄마들은 아이에게 '안돼'라는 소리를 하길 꺼려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안돼'라는 표현이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자율성 발달을 저해한다는 육아 정보가 온라인 상에 파다하게 퍼진 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안돼'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육아 정보의 출처는 우리 나라가 아닌 다름 아닌 서양입니다. 서양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아이들의 행동을 제지할 때 '안돼(no)'라는 한마디만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No'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서 옮기다 보니 '안돼'가 된 것이고, 아이에게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육아 정보가 퍼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훈육 언어는 뭐가 달랐을까요?

네 많이 다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안돼'라는 외마디 말 대신 이놈, 어허, 에비, 지지라는 말을 상황에 맞게 나누어 썼습니다. 위험할 때는 에비, 더러운 것을 만질 때는 지지,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할 때는 어허, 말썽을 부릴 때는 이놈이라며 애정어린 표현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제지했습니다. 이놈과 어허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자율적으로 혼용하여 사용했습니다.

서양에서는 '안돼'라는 말을 금지하는 대신, 상황별로 그 행동을 막을 수 있는 다른 표현을 쓰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것을 만지면 '위험해', 더러운 것을 만지면 '더럽단다'라는 식으로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서양 부모들은 'no'라는 외마디 말이 습관적으로 자주 튀어나오기 때문에 말을 수정하는 데에 애를 먹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이놈, 어허, 에비, 지지가 있습니다. 이놈, 어허, 에비, 지지라는 말은 우리가 어렸을 때에도 익숙하게 들어왔던 말입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그 말들을 꺼내어 써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말들을 어떤 톤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정하고 애정어린 제지가 될 수도 있고, 따끔한 주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굳이 오디오 파일로 녹음해서 알려드리지 않아도,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애정어린 어허, 이놈, 에비, 지지가 어떤 톤인지 충분히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짧고 엄하게 이놈, 에비, 어허, 지지 라는 말로 아이를 당황하거나 놀라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의 생활 문화 속에서 우리는 다양하게 그런 표현들을 접하며 자라왔으니까요.

이놈, 어허, 에비, 지지는 아이에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지 않으면서도 상황별로 아이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아이 맞춤형 눈높이 언어'입니다. 어른들끼리는 사용할 수 없는, 어른이 아이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아이에게 '안돼'라는 부정적 언어 대신 부정의 분위기가 전혀 없는 이놈, 어허, 에비, 지지를 사용해왔습니다.

약간은 올드한 느낌, 구식인 느낌이 들어 이런 표현을 아이들에게 잘 사용하지 않아왔던 부모들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약간은 내 입에 익지 않아 낯선 느낌도 줍니다. 젊은 엄마들은 '지지' 정도는 사용하나 이놈, 어허, 에비는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두번 사용하다보면 입에 착착 달라붙을 뿐만 아니라, 아이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제지하면서도 부정적인 정서를 전달하지 않을 수 있는 마법의 단어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앞으로 빈번하게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서양의 no는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안된다고 할 때, 싫다고 할 때, 아니라고 할 때 모두 no를 사용합니다. 그러다보니 서양 사람들에게는 no가 굉장히 자주, 빈번하게 사용하는 소위 '입에 붙은 말'입니다. no는 어른과 어른 사이에서도 사용되고 아이와 아이 사이에서도 쓰이며,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도 사용됩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no라는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말버릇 자체를 고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를 대체해야 하는 표현들은 단어가 깁니다. 우리나라처럼 이놈, 어허, 에비, 지지와 같은 아이 눈높이의 대체 단어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하거나, 문장형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비해 귀찮은 측면이 아주 많은 것이죠.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육아 정보들 중에는 서양의 이론이 넘어온 것들이 참 많습니다. 이론만 넘어와도 받아들이기 버거운데, 번역의 오류에 빠지거나, 번역의 오해가 발생할 경우에는 육아 정보 자체가 모호해지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파다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안돼'라는 표현 대신 이놈, 어허, 에비, 지지를 잘 사용하고 있었는데, 마치 우리나라 부모들이 '안돼'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어느날 갑자기 '아이에게 안된다고 하지 말아라'라는 이론이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육아 풍토를 면밀히 관찰하고 퍼뜨린 육아 정보가 아니라, 그저 서양의 이론을 번역해서 알리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발생한 헤프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돼'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니 역으로 더 '안돼'를 사용하는 부작용마저 발생했습니다. 이놈, 어허, 에비, 지지가 있었던 것을 까맣게 잊고, 오히려 '안돼'라는 표현에 매몰되어 아이를 키우게 된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안된다고 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를 고민하며 오로지 아이 훈육에는 '안돼'를 사용하면 될까 안될까만을 고민하고 있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안돼 말고 대체제가 많습니다. 마음껏 자유롭게 활용하세요. 부정적인 정서를 풍기지도 않고, 아이의 자율성을 침해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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