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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Apr 17. 2018

엄마의 부재는 열살부터 시작된다

열살은 매우 상징적인 나이입니다. 학년으로 치면 3학년. 혼자 집에 찾아오기도 하고, 학원도 스스로 찾아가며, 간단한 집안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나이.

돌봐주시던 할머니도 더이상 계시지 않고, 오히려 돌봐야 할 동생을 책임지는 위치가 되었으며, 가정 내에서 엄마의 역할을 나눠 맡아야 하는 역할분담도 시작됩니다. 아이가 10살이 될 때까지 자라는 동안 할머니 또한 많이 연로해졌습니다. 더이상 할머니에게 아이들 육아와 살림을 부탁드리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터를 고용했을 경우, 다 큰 아이, 스스로 혼자할 수 있는 아이를 위해 매달 부담스러운 금액의 고정지출을 감당하기에는 벅차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워킹맘의 집에서 할머니의 존재는 심리적, 정신적 의지가 되는 존재임과 동시에 아이들의 보호자이며, 식사제공이나 간단한 청소 등 기능적인 도움을 주는 분입니다. 10세 아동이 기능적으로 충분히 성장했다는 믿음은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데에 합리적 근거가 되어줍니다.

할머니 또는 시터가 사라지는 경우, 아이는 심리적으로 의지할 곳을 잃게됨과 동시에 '보호자'의 역할 및 가사노동의 책임을 나눠져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됩니다. 처음 만남에는 친해지기 위한 적응기간이 있었던 반면 이별에는 적응기간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엄마는 사회적으로 중역이 되는 나이입니다. 어린 아이를 핑계로 퇴근 시간에 동동거리는 모습을 이해받을 시기는 이미 지난 지 오래입니다. 엄마의 늦은 퇴근은 점점 빈도를 더해갈 것입니다.

이 10세 아동은 괜찮을까요? 아무렇지도 않을까요? 11세가 되면 괜찮을까요? 아니면 점점 더 나이가 들수록 그럭저럭 견뎌낼만한 일이 되어갈까요?

제 경우에는 괜찮았습니다. 워낙 어려서부터 어른스럽다는 말을 듣고 자라왔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직접 해보니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다른 집에서 어떻게들 사는 지를 전혀 모르니, 다른 집 아이들도 제 나이가 되면 으레 가사일에도 참여하고 동생도 돌보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이 모든 것이 부당하고, 감당하기 힘든 것으로 느껴졌었나 봅니다. 차곡차곡 쌓여있던 의문과 억울함은 친구관계를 통해서 조금씩 밖으로 스며나왔습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간간이 느껴지는 '다름',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은 저로 하여금 결국 분노를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저처럼 집안일을 해놓지 않아도 혼나지 않았고, 동생의 저녁밥도 책임질 필요가 없더군요. 저는 항상 인스턴트 식품를 조리해먹거나 되는대로 간식을 사먹으며 끼니를 때웠는데 다른 집 아이들은 엄마가 해주는 다양한 요리를 먹으면서도 반찬투정을 했습니다. 

사춘기 때 1차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엄마 밑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엄마가 일찍 퇴근하면 요리 솜씨가 없었던 엄마가 해주는 맛없는 음식과 잔소리를 참아야 했고, 엄마가 늦게 들어오면 독박 집안일에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사실이 괴로웠습니다. 동생의 저녁밥을 챙기기 싫어서 제가 저녁을 굶어도 보고 반항도 해보았지만, 엄마로부터 너는 굶더라도 동생 밥은 챙기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더 좌절하고 비뚤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이 집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은 부모의 고마움을 형이상학적으로, 관념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가 몸을 움직여서 나를 케어하고, 열심히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고마움을 느끼고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서 가져야 했던 고마움은 눈으로 보고 느낀 사실보다는 관념적으로 억지로 이해해야 하는 사실들 뿐이었습니다.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를 해내야만 하는 것들 뿐이었죠. 엄마가 돈을 벌어오니까 고마운 것이고, 밖에 나가서 힘들게 일한다고 하니까 그것을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벌어오는 돈은 제가 만져본 것이 아니니 와닿지 않았고, 밖에 나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은 직접 본 적이 없어서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집들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생활에 대해 여전히 잘 알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고, 저는 성인이 된 다른 집 아이들도 이제는 스스로 집안일을 하고, 밥도 알아서 차려먹겠지.. 즉 쟤네들도 나와 같아졌겠지.. 또는 나도 이제는 쟤네들과 같아졌겠지.. 란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결혼할 때가 되었는데,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전히 서른살 가까이 되도록 집안일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사과조차 한번 깍아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겉으로는 짐짓 놀라지 않은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친구들은 한두명이 아니었고,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내가 다 커서 다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괜찮다고 생각했고, 억지로 괜찮아야 했던 모든 일들과 상황들이 사실은 다른 집 아이들에게는 한번도 일어나지도 않았던 상황이었고, 앞으로도 아무렇지도 않을 일들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고, 괴롭고, 화가 났습니다. 저 아이들은 저렇게 사랑받고 자랐구나. 나는 사랑받고 아낌받기는 커녕 안해놓으면 혼나고 비난받아야 하는, 엄마의 하녀였나라는 생각이 모든 다른 생각들을 덮어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와의 좋은 추억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 받은 지배적인 감정인 '억울함'이 그런 좋은 추억들의 기억마저 삼켜버렸고, 저의 10대의 기억은 소녀가장처럼 살아왔던 모습으로 굳어졌습니다. 거대한 부정적 감정 하나가 기억의 우선순위를 모두 재배열시켰고, 부정적 기억들 위주로 기억의 강도를 재편성했던 것입니다. 

10대 시절 하루하루의 일상을 돌이켜보면 사실 엄마가 집에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 게임도 실컷할 수 있었고, 만화책도 쌓아놓고 볼 수 있었으며, 친구들을 우리 집에 데려와 밤 늦게까지 실컷놀 수 있어서 즐거운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는 생각 하나가 저희 10대 시절을 '암흑기'로 인지하게 합니다. 





부모의 양육 태도는 크게 3가지로 구분됩니다. 돌봄, 침범, 방임이 바로 그것인데요. 돌봄이란 아이를 물리적, 정서적으로 충분히 케어하지만 스스로 기능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연습기간과 적응기간을 준 후 하나하나 독립해나갈 수 있게 뒷받침하는 것이고, 침범이란 다 큰 아이에게도 여전히 지나친 과잉보호와 정서적, 기능적 의존을 시키는 것으로 마마보이, 마마걸을 떠올리시면 쉽습니다. 방임이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것으로, 방임을 받은 아동은 공격성을 띄기 쉬우며, 정서적으로 분노가 올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업맘이 조심해야 할 부분은 바로 '침범'이며, 워킹맘이 주의해야 할 부분은 '방임'입니다. 말은 쉽지만 침범하지 않는 전업맘으로 살기도 사실상 매우 어려우며, 방임하지 않고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끼고 키우면 키울수록 아이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더 자라나기 때문에 다 큰 아이에게도 독립할 기회를 주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4살때부터 혼자 밖에 나가 놀다 왔지만 제 아이는 7세가 되어도 혼자 밖에 내보내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처럼요. 반면 워킹맘의 방임이란, 의도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안되는 것을 누구나 잘 알지만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서 그렇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상황들, 누적되고 반복되는 그 상황들 때문에 워킹맘의 아이는 물리적 방임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리적 방임은 워킹맘이 의도한 것도 아니고, 죄책감과 미안함도 느끼지만 연차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매번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게 되지도 않고, 정서적으로나마 충분히 보완하고 보상해줄 만큼 많은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십수년 이상으로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엄마 자신도 이런 상황에 무뎌지게 됩니다. 한두번의 예외적인 방임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일상으로 둔갑하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사실 엄마도 신이 아니기에, 이렇게 되면 안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더라도 당장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쉬고 싶은 마음이 더 굴뚝같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문제 행동이 나타나거나, 문제 증상이 나타났다면 워킹맘도 각성하고 아이를 위해 적극적인 관찰과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가 아무 문제 없이 잘 자랄수록 그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엄마의 손길은 더 적어집니다. 

그러므로 워킹맘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정서적 방임'입니다. 적어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매일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각성하고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입니다. 매일 각성하지 않으면 서서히 안이해져가고 무뎌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자기주도적으로, 독립적으로 잘 자라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내가 보완해줄 부분은 없는지, 아이와 나눠서 질 책임은 없는지, 아이가 혼자 감당하고 있는 마음의 짐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나눠가지고, 덜어주어야 합니다. 아이 스스로 자각하고 있지 못하는 부분까지 보듬어주고,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될 수 있으면 많이 가지면 좋습니다. 


<+> 옛날 엄마들은 육아정보가 부족한 세대였기 때문에 아이와 대화하고 놀아주는 경험이 낯설고 익숙치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저 같이 워킹맘 밑에서 자란 옛날 아이들은 특히 결핍과 방임의 경험이 거의 일치하는 패턴을 보이더군요. 한 친구는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른 세살 쯤이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엄마아빠가 늙어서 힘이 없어지게 되면 버릴거다. 내가 힘들 때 도와주지 않았으니 나도 복수할거다'라고요. 워킹맘의 아이가 받은 상처는 성인기에도 이어집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자동적으로 다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군요. 남들이 보면 유복한 가정현편에, 뭐가 부족할까 싶어 보이는 친구입니다.

<+>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글 한편에는 하나의 주제를 담아야 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다가 끊기는 기분이 듭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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