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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Apr 17. 2018

[프롤로그]워킹맘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들

앞선 글들에서 밝혔다 시피, 저는 38년간 워킹맘의 아이로 자라왔습니다. 제가 워킹맘의 딸이었다는 사실은 제가 전업맘의 길을 선택하게 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가 워킹맘의 딸로 살아오면서 받았던, 잃었던, 놓쳤던 그 모든 것들이 단순히 '엄마가 일을 해서'라고만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겨우 7년이지만 저도 이제 엄마가 되었고, 엄마로서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보니, 제가 못받고, 놓쳤던 그 무수한 가치들이 단순히 엄마가 일을 했다는 사실로부터 발생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엄마도 잘 몰랐기에 저질렀고, 못주었고, 하지 않았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경험이 있었다면, 좀 더 잘 알았다면, 좀 더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보완할 수도 있었던 그 어떤 것들이었습니다. 

퇴근 후 몇 분간 엄마 살냄새를 맡게 해주고, 단 몇 분간 놀이를 해주고, 단 몇 분간 대화를 해주면 모든 게 씻은 듯 해결될 것이라는 이론들과 책들을 저도 간간이 보았습니다. 그 이론을 만드신 분들은 워킹맘의 아이로 살아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당사자에게 물어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너무나 어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방법론들은 아닌가 반문하고 싶습니다. 

워킹맘 아이의 심리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특히 열살이 넘어가면서부터 지나치게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짜내고 억압하고 회피하는 노력은 짠함을 넘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이고, 어른스럽게 성장한 자녀의 모습을 보며, 미안하다는 생각보다는 대견하다는 생각에 뿌듯해하실 부모님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저 역시 11살에 동생을 돌보며 밥을 차리고 동생 도시락을 싸주는 등 그 나이대에 기대되지 않는 어른스러운 행동으로 엄마의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자녀가 독립적으로 잘 자람 -> 든든한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놓음 -> 더욱 믿고 맡기며 혼자 알아서 해결하게끔 하는 생활이 고착화됨 -> 부모로서 자식에게 정을 더 빨리 떼게 됨 -> 결국 자녀는 자신의 자율성과 독립성으로 인해 부모의 품 안에서 좀 더 비빌 시기를 일찍 끝내게 됨 -> 다양한 형태의 정서적 허기증이 발생




예를 들어, 저의 경우엔 10살 경부터 밥을 앉힐 줄 알고 돈까스를 데워 먹는 등 간단한 상차림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엄마가 저녁에 늦게 들어올 때 냉장고에 뭐 있고, 어떻게 데워먹고, 밥은 어떻게 하라고 일일이 설명을 해주고 반복 확인을 하였습니다. 몇번의 경험으로 제가 스스로 알아서 잘 하게 되자, 엄마의 야근 및 저녁 약속은 더욱 빈번해졌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당연히 해내야 되는 저의 책임이 되었고, 엄마가 밥을 차려주거나 설거지를 하게 되면, 일하고 돌아온 피곤한 엄마에게 '그런 것'까지 시키는 나쁜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까지 들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다 큰 아이'라는 프레임에 너무 일찍 갇히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른 여자들은 친정에 가서 엄마 밥 얻어먹으면 행복해 하는데, 저는 친정엄마가 제 밥을 차리면 죄책감이 듭니다. 이렇게 나이든 엄마가 서른살도 넘은 자식 밥을 차리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죠. 이런 느낌은 마치 양치질을 할 줄 알게 되었는데, 계속 엄마가 아이 양치질을 해주지 않듯, 하나의 능력의 마스터가 끝났기 때문에 더이상 엄마에게 의존하면 안될 것 같다는 기분과 비슷합니다. '일하는 엄마'라는 상황이 만들어 낸 특정한 경험이 어린 시절 어느 시점의 정서적 현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인기가 되고 죽을 때까지 쭉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워킹맘의 아이들은 특별히 아동학대를 받고 자라지 않는 이상, 큰 상처 없이 잘 자랍니다. 저 역시 제가 정상적으로, 독립적으로 잘 자라고 있고, 그래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가끔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분위기 파악을 못한 발언으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뻘짓 몇 번을 제외하고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부터는 뭐가 문제였던 것인지 가혹하게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외로운데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힘들었는데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매우 이상한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심리학 용어로 이런 현상을 '억압'이라고 합니다. 워킹맘의 아이는 '회피'와 '억압'에 매우 능숙합니다. 

제가 얼마나 억압에 능숙했느냐면 고3때 아빠가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고 목표에 가까운 대학에 진학했을 정도입니다.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이틀 정도 후에 시작된 중간고사에서 전교 4등(정확한 기억은 아님)정도의 성적을 냈습니다.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못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적이 나왔다는 것은 실력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심리적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는 쪽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맞을 것입니다.

저를 아는 제 지인들은 여러모로 힘들었을텐데 잘 자란 것 같다고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힘들다는 감정을 곱게 접어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꺼내보지 않고 살아왔으니까요.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은 여러가지 성향과 행동으로 어떻게든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몇년 안에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몇십년간 괜찮게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나 굴곡을 만나게 되면 억압해놓았던, 즉 처리를 미뤄놓았던 채무들이 와라락 쏟아져내리며 그 자체로 문제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저는 30여년간 저를 오해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강철멘탈의 소유자인 것으로 착각했던 제 자신이 사실은 강철멘탈이 아니라 유리멘탈이었고, 능수능란한 '억압' 기술을 통해 부정적 감정들을 모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속이고 살아왔던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몇년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글들을 통해 제가 경험했던 워킹맘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들을 소개하고,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방법과, 또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공유하려고 합니다. 저의 글들은 저의 경험을 토대로 심리학적 이론을 접목시켜 전개될 예정입니다. 전업맘인 엄마분들이 읽으셔도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들이 간혹 나올 것이니 관심있게 지켜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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