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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Apr 17. 2018

워킹맘의 아이에게 돈이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용돈을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회고하는 친구들이 제 주위에 꽤 있습니다. 저는 1도 이해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 용돈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필요한 게 얼마나 많고, 사먹고 싶은 간식은 또 얼마나 많은데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도 학창시절, 용돈이 없어서 항상 친구들에게 얻어먹기만 했던 친구들 몇명이 기억납니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가난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충분히 부유함에도 불구하고 용돈을 받지 않았던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더 이상했던 것은, 본인들 스스로가 용돈이 필요 없다고 느꼈다는 점입니다. 

제가 용돈없이 사는 인생을 1도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용돈 없이는 제 생활이 안됐었기 때문입니다. 용돈 없이는 밥을 굶어야 하고, 옷을 사입지 못하고, 책이나 학용품을 살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용돈은 엄마 대신이었습니다. 용돈이 아니라 생활비였던 것입니다.

엄마가 저에게 줬던 돈은 크게 두가지였습니다. 정기적으로 줬던 용돈, 그때그때 타서 쓰는 비용(생활비)으로 주로 저녁값과 학용품비, 준비물, 책값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용돈보다 생활비 규모가 더 컸던 것은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엄마는 학용품과 준비물, 책, 문제집 등을 직접 사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녁 또한 주3회 가량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작은 아이가 유용할 수 있는 돈의 단위가 커지니 경제관념이 일찍 자랄 수 있었던 장점도 있습니다.

학창시절, 저는 언제나 늘 용돈을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돈이 없이 어딜 다니는 것은 매우 불안했습니다. 아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가지 않아서 10시쯤 배가 고파지면 학교 매점에서 간식을 사먹어야 했고,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저는 분식집의 고정방문객이었습니다. 공책이 떨어지거나 학용품, 학교준비물은 당연히 제가 알아서 구매해야 하는 것들이었으며, 중학교에 올라가고부터는 옷을 거의 제 돈으로 다 사입었습니다. 돈이 없이 어딘가를 다닌다는 것은 옷을 벗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돈'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물질이었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잔고의 바닥이 보이지 않게 항상 찰랑찰랑 차있을 수 있도록 잔고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용돈을 받으면 몇일만에 홀랑 다 쓰고 엄마에게 더 타서 쓰는 아이들도 있다지만, 저는 용돈을 아끼고 아껴서 통장에 넣어놓고, 달마다 늘어나는 잔고를 보며 뿌듯해하는 쪽이었습니다. 용돈을 불리기 위한 치팅도 서슴치 않았는데, 시험성적을 올리면 용돈을 더 올려달라는 식으로 엄마와 매번 협상을 하는 정당한 방법 외에도, 엄마가 저녁 사먹으라고 주고 간 돈을 쓰지 않고(저녁을 굶고) 모아서 용돈에 보태거나, 회수권 사라고 준돈의 일부를 안쓰고 (몇 정거장 되는 길을 걸어감) 모으는 방법을 통해 계속 돈을 모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씁쓸한 것이, 저는 부잣집 아이도 아니었는데 단지 항상 돈을 가지고 다닌다는 이유로 친구들의 간식을 대신 사주어야 했던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던 것 같습니다. 500원, 천원짜리였지만 뭔가 지속적으로 저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주어야 했고(빌린다는 표현, 다들 아시죠?), 그 아이들은 끝까지 학교에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돈을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안되어 있어서 그랬는지, 집에 가서 잊어버린 건지, 일부러 그랬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저는 언제나 돈을 꾸준히 관리하는 편이었고, 친구들은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쓰거나 빌려쓰는 생활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가 제 아이를 키우니, 아이가 어떻게 용돈 없이 살 수 있는 지를 완벽하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준이에겐 용돈이 1도 필요없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졸업때까지는 충분히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집에 와있는 모든 시간에 제가 함께 있어서, 아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다 제가 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이가 필요한 지 아닌 지 알지못하는 것들까지 미리 계산해서 채워넣어줍니다. 아이가 뽑기 같은 것을 하고 싶다고 하면, 제 지갑에서 바로 천원짜리가 나갑니다. 준이는 돈을 가지고 다닐 필요도, 얼마가 필요할까 생각해볼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 간식이 미리 채워져 있고, 아이의 학용품과 미술용품들이 미리 채워져 있고, 아이 옷 역시 계절마다 미리미리 채워주고 있으며, 발달단계에 따른 장난감과 레고, 활동지나 문제집, 생활용품들 모두 아이가 요구하기 전에 이미 제가 다 채워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들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저는 어렸을 때 이 모든 것들을 그때그때 제가 해결하거나 엄마에게 한참 졸라 얻어냈습니다. 

냉장고가 텅 빌 때까지 장을 보지 않아서 한달에 두세번 정도 엄마와 장을 보러 나갈 때 될 수 있는 한 많이 카트에 담아서 먹을 것을 확보하거나, 용돈으로 간식과 끼니를 해결했었고, 장난감은 어린이날이나 생일 외에는 감히 사달라고 조를 수 없는 물건이었으며, 옷을 얻어 입는 것 역시 연중행사에 가까웠습니다. 활동지나 문제집, 학습지는 제가 엄마를 조르고 졸라서 '허락'을 받으면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먹는 문제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나의 식비가 곧 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아이는 먹을 것을 줄이거나, 싼 것으로 대체하여 자기의 용돈 잔고를 확보해나가는 짓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이 얘기는 다른 편의 글에서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이야기, 어떤 부분은 옛날에나 가능했던 이야기이고, 또 어떤 부분은 가정 형편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글에서 꼭 다루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워킹맘의 아이가 가지고 있는 돈이 '용돈'인지 '생활비'인지에 대한 자각은 아이의 생활과 심리적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이가 한번 용돈으로 자기 생활을 해결하기 시작하면 많은 것이 헷갈립니다. 무언가를 사야할 때, 이것이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엄마가 당연히 채워줘야 하는 것인지 그 구분을 잘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여자 아이의 경우 자기가 쓰고 싶은 샴푸가 있을 때, 이것을 엄마에게 사달라고 해야 되는 것인지, 자기가 개인적으로 갖고 싶은 것이니까 내 돈으로 사야 되는 것인지에 대해 심리적으로 갈등하게 됩니다. 

귀밑 3센치 강제 단발을 하고 다녔던 제 중학교 시절, 지랄곱슬머리 때문에 매일 아침 드라이기를 붙잡고 30분 이상을 씨름했던 저로서는 스트레이트용 샴푸와 스트레이트 파마가 생필품이었습니다. 지금 성인이 된 제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엄마가 해줘야할 부분들인데, 그 당시 저는 제 돈으로 알아서 해결해야 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고민할 문제가 아닌데 고민을 하며 에너지를 소모했고, 엄마에게 말해도 되는 부분인데, 말하면 안되는 것인 줄 알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굳이 안해도 될 마음 고생을 하는 등 피곤한 삶을 살았습니다. 

4학년 때의 제 일기를 보면, 롤러 스케이트를 사기 위해 용돈을 모으고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초등학생 자녀의 롤러 스케이트는 당연히 부모가 사주는 것이 맞죠. 하지만 저는 왜 제가 용돈을 모아 사야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엄마가 없는 긴 부재시간 동안 엄마가 준 돈 또는 자기 용돈으로 이것저것 사러 다니며 생활비를 지출했던 경험이 많은 아이는 점점 더 많은 영역의 지출을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고, 돈을 가지고 있어야 안심이 되며, 이러한 성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일정 부분 이어집니다. 

저는 대학에 가고부터 집에서 잠만 자는 것 외에는 모든 비용을 저 혼자 감당했습니다. 옷, 화장품, 먹거리, 책값, 학원비, 교통비, 통신비, 데이트 비용 등 모든 것을요. 그러자니 월 4-50만원의 생활비가 필요했고, 과외 2개씩을 놓지 않고, 남는 돈은 저금해가면서, 4년간 꾸준히 정말 바쁘고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옷이나 화장품 같은 것은 가끔은 엄마에게 사달라고 해도 되는 것들인데, 단 한번도 엄마에게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습관이고 버릇이 된 지 오래된 제 지출원칙이고, 제 자존심과도 연결된 부분이었습니다. 다 큰 자식이 엄마에게 개인용품을 사달라고 하는 것은 못난 짓, 불효, 철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의지 좀 하면 어때서, 손 좀 벌리면 어때서..

지금도 자녀에게 가끔 식비를 주고 저녁을 사먹게 하고, 아이가 학교 준비물을 스스로 살 수 있게끔 필요한 경비를 아이 손에 쥐어주는 워킹맘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엄마가 일일이 아이 뒤를 따라다닐 수 없으니 당연히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자녀가 생활을 혼자 감당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나 주의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엄마 입장에서 '이건 내가 사줘도 될 물건인데 왜 자기 돈으로 샀지?'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발생하면 자녀와 속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꼭 말해주세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은 언제든 엄마에게 넘기라고. 마음껏 요구하고,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성인이 될 때까지는 너에게 필요한 물건은 1차적으로 엄마인 내가 책임질 것이라고요. 


<+> 저와 같은 집에서 자란 제 동생은 저와 반대로 무욕구의 상태로 자랐고, 그렇게 성인이 됐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도,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엄청나게 큰 구멍을 안고 자랐습니다. 옷도 없고, 신발도 없고, 언제 머리를 잘라야 하는 지도 모르고, 사춘기 반항으로 동생밥을 차려주지 않는 누나 때문에 이 아이도 스스로 밥을 하고 차려먹는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돈의 필요성 조차 모르고, 그렇다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도 없어서, 학교 준비물은 안가져가고, 책도 사볼 생각이 없는, 요즘 말로 하면 '관리 안되는 애'로 자랐습니다. 제 동생은 마음의 빈 구멍을 게임으로 채웠습니다. 이 이야기 역시 다른 글에서 자세하게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나 제 동생이나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고 자랐기 때문에 엄마는 아이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 채 알아서 잘 크고 있다는 생각으로 몇십년을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일일이 신경쓰지 않아도 잘자란다고 뿌듯해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이것입니다. 한놈은 대리충족으로 살아왔고, 한놈은 결핍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겉으로 아무 일 없어 보이는 현상도 들여다보면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일이 신경쓰지 않아도 잘자라는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일일이 신경써야만 잘 자랍니다. 식물도 세심하게 케어해서 키우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워킹맘의 아이로서 제 어린시절의 문제점은 저 역시도 뭐가 문제였는지 모른 채 30년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되어보니 비로소 알게 된 모든 것들.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각성한 키아누 리브스처럼, 저는 하루하루 새로운 것들을 깨달아가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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