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제니 Apr 17. 2018

워킹맘 아이의 먹거리란..

워킹맘의 아이는 늘 부족하지 않은 용돈을 가지고 다닐지 모릅니다. 엄마와 함께할 수 없는 시간동안 간식 또는 끼니를 직접 해결해야 할 지도 모르니까요. 저 역시 그런 생활을 당연시 해왔고 워킹맘인 이모의 아들, 제 사촌동생도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에는 좋았어요. 뭐든지 제 마음대로였지요. 다른애들이었다면 불량식품이라며 엄마들이 못먹게 하는 것들을 제약없이 사먹을 수 있었고, 라면, 떡볶이, 과자, 빵을 거의 달고 살았습니다. 밥과 밥이 아닌 것을 구분하지 않고, 허기만 채우면 끼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워킹맘의 아이로 자라온 생활 덕분입니다. 

편식 또한 꽤 오래했습니다. 엄마가 끼고 앉아서 편식을 고쳐줄 여유도 없었고, 다양한 식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줄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아이들의 편식습관은 아이들 건강에 좋은 영향을 끼칠 리 만무합니다.)

중학생이 된 후로는 아이들이 좀 더 지능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엄마가 주고 간 식비를 절약해서 자기용돈으로 둔갑시켜 이것저것을 사는 데 써버리게 되는데요. 엄마에겐 돈까스를 사먹었다고 거짓말하고 실제로는 대충 씨리얼로 때우거나 빵, 떡볶이 같은 것을 사먹는 방법으로 차액을 적립하는 것이지요. 참고서를 산다며 엄마에게 용돈을 받아서 삥땅을 쳐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 돈을 모아서 무슨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친구들하고 동대문이나 이대앞에 가서 싸구려 보세옷 몇벌을 사는 것이 전부였어요. 대단치도 않은 허접한 옷들도 옷이라고, 자질구레한 옷들이 점점 늘어날수록 엄마가 보기엔 굉장히 '옷이 많은 아이'로 느껴졌나 봅니다. 그래서 엄마는 어느순간부터 제 옷을 잘 사주지 않았습니다. 변변한 옷은 몇벌 없지만 옷장에는 옷이 가득했기 때문에 엄마는 사줄 필요성을 못느끼게 되는 것이죠. 변변한 옷도 못입고 다니니 남들이 보기에 소위 괜찮은, 잘나가는 아이로 보일 리가 만무했지요. 중고등학교 시절 제가 옷을 사들고 들어올 때마다 옷 많은데 왜 또 사왔냐는 잔소리를 항상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악의 순환고리였다는 것을 저는 최근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10대 시절 내내 변비, 극심한 생리통, 빈혈, 허약체질로 고생했습니다. 그냥 제가 그렇게 태어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특히나 변비 같은 경우 4살경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소변은 하루에도 몇번이나 보지만 응가는 3일에 한번쯤 하는 것인줄 알았고, 저의 배변습관을 주의깊게 관찰해 준 어른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제가 변비라는 사실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변비로 고생한다며 떠드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저도 변비인 것을 처음 알게 되어, 3일에 한번쯤이 정상인 줄 알았던 16년간의 세월이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변비, 빈혈, 극심한 생리통, 허약체질..  모든 것이 식습관과 관련된 질병이었습니다. 30대 후반인 지금의 저는 위 4개의 질환을 전혀 앓고 있지 않습니다. 식습관이 완전히 개선되었고, 체력도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제 일기를 보니, 우리 엄마는 도시락에 우리가 좋아하는 반찬을 싸주려고 무던히도 애쓴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워킹맘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싸줌으로써 푸셨던 것 같습니다. 헌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이란 것이 뻔합니다. 건강에 1도 도움안되는 반찬들이 대부분이지요. 엄마는 이런저런 요리를 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저희집 냉장고는 거의 인스턴트 음식들로 꽉꽉 차 있었습니다. 냉동만두나 돈까스, 동그랑땡, 스팸, 참치, 라면은 저희들의 주식이었습니다. 엄마 탓을 할 수도 없었던 부분이, 바로 저희들이 그런 음식들만 먹겠다고 요구했기 때문도 있습니다.  



저와 제 동생은 피지컬이 굉장히 좋습니다. 누가봐도 운동선수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키도 크고 체격도 좋습니다. 헌데 저와 동생 둘다 체력이 매우 약했습니다. 체육시간은 가장 쥐약인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여자라 그렇다 쳐도, 남자인 제 동생 마저 근육도 별로 없고 달리기와 같은 기초 운동실력이 형편없었습니다. 저는 3층만 되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다리근육이 아팠습니다. 대학입학 직후 가장 큰 걱정거리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었습니다. 

10대 시절 내내 약하게 태어난 저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30대 후반인 지금, 평균 이상의 체력과 병치레 한번 없는 놀라운 건강상태와, 신생아를 돌보면서도 손목 아대 한번 안했던 근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생리통이야 애 낳고 약해질 수 있다고 쳐도, 1년 내내 빈혈 한번 없이, 좀처럼 피곤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좋은 건강 상태 덕에 또래 친구들의 부러움마저 사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놀라운 몸의 변화를 '먹는 것'의 변화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것이 그것 말고는 전혀 없거든요. 평소에 운동도 하지 않는데 상식적으로 10대보다 30대의 체력이 좋아질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요즘 세상은 다행히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균형잡힌 급식을 해줍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영양 불균형 현상과 편식습관이 많이 개선되었지요. 하루 세끼 중 한끼만이라도 제대로 먹는다면 아이들은 저보다는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데 엄마가 된 저의 시야에는 아직도 저와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TV 프로그램에도 자주 나옵니다. 엄마가 늦게 들어오는 날 라면으로 끼니는 때우는 아이들의 모습, 좋은 음식을 먹어봤자 돈까스, 짜장면인 아이들..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려고, 또는 싸주려고 아이들 입맛에 잘 맞는 음식들을 대령해서 갖다 바칠지도 모릅니다. 누구라고 꼭 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제 주위에도 적지 않은 워킹맘의 아이들이 어린시절의 저와 비슷한 패턴으로 살고 있는 경우를 꽤 보았습니다.

코 앞에 있다면 달래고 얼르고 혼내서라도 아이에게 채소를 먹일텐데, 일단 아이가 내 눈앞에 없고, 뭐가 됐든 먹여야 된다는 의무감이 입에 달고 몸에는 좋지 않은 음식들을 아이 입에 들어가게 합니다. 날로 진화하는 레토르트, 반조리 식품들의 무한증식은 워킹맘 뿐만 아니라 전업맘 아이들의 식단마저 쉽게 짐작할 수 있게끔 해줍니다. 

오늘은 내가 시간이 없으니까 이걸로 저녁을 때워야겠다, 아이가 간식은 먹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챙겨줄 수 없으니까 돈을 주자, 아이의 편식을 고칠 시간과 여유가 없으니 일단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쌓이고 쌓여서 아이의 식생활을 만들어나갑니다. 아이의 식생활은 아이의 건강과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요. 엄마가 저희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싸주기 위해 무던히 했던 그 노력이 결국 아이들에게 독이 되었다는 사실은 저의 마음까지도 아프게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왠만한 전업맘이 있는 가정에서는, 엄마들이 직접 장을 보고 다양한 요리를 해서 아이들을 먹이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워킹맘 뿐만 아니라 전업맘의 가정에서도 '편리함' 덕분에 외식이 잦아지고 아이들 건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인스턴트 반조리 식품이 밥상을 점령해나가고 있습니다. 편리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니까 하루하루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20년간 쌓이고 쌓여야만 그 변화를 겨우 눈치챌 수 있는 건강의 악화는 장기적인 행복을 담보해주지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쉽사리 획일적인 '해결책'이나 '솔루션'을 제시하기 힘듭니다. 각 가정별로 처한 상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제제기는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문제를 모르고 넘어가는 것과 아는 것은 각자의 대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워킹맘이 신도 아니고 체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아이들 반찬과 간식거리를 손수 만들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친인척과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거나, 믿을만한 곳에서 식사를 배달받는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는 꼭 유념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이들의 저녁식단은 엄마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요. '돈 주고 알아서 사먹어라'가 아니라 구체적인 가이드를 꼭 주는 것이 좋고, 카드 결제를 통해서 아이들이 자기 멋대로 불량식품을 사먹지 못하도록 지출 기록을 관리하면 좋을 것입니다. 아이들 옆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미안한 마음에 먹는 것을 자유롭게 풀어주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그 부작용에 시달릴 지도 모릅니다. 

식비를 삥땅쳐서 모은 돈을 지출하는 습관 또한 매우 안좋습니다. 저처럼 허접한 옷을 사입고 돌아다니는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게요. 요즘에는 피씨방에 가서 죽치고 앉아 있거나, 저가 화장품을 사서 얼굴에 독을 바르거나, 아이돌 굿즈를 사모으는 등 엄마에게 정당하게 받은 용돈으로는 왠만해선 쉽게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데에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공감되는 과거, 누군가에게는 현재,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충분히 개선할 수 있습니다. 저희 경험담이 누군에겐가 꼭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워킹맘의 아이에게 돈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