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 친구 중에 워킹맘이 있는데, 친정엄마가 애를 봐주시니까 저녁 약속도 자유롭게 잡고 주말에도 사람들 만나러 나가더라. 우린 언제쯤 밤에 나댕기려나"
친구의 얼굴에는 좋겠다, 부럽다가 한가득이었다.
나 역시 좋겠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부러우면 뭐다?
준이를 낳고 살면서 저녁 약속이 한번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참 부자연스럽고, 힘든 일정이었음을 고백한다. 한번은 애가 아기띠하던 시절 호프집에 데리고 갔다가 하도 울어서 안감만 못한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남편이 6시면 이미 집에 도착해 있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애를 맡기고 언제든 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된 후 저녁 약속과 멀어지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신분의 변화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 중에 나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꼽으라면
가족, 친구, 지인, 사회생활에서 맺은 인연들로 구분해볼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족과 친구는 굳이 저녁에 만나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친구들은 나와 같은 연령을 가지고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애엄마들이고, 편한관계이므로, 애를 동반해서 주말에 만나는 것이 서로 편하고 자연스럽다. 전업맘인 친구들끼리는 당연히 낮에 만나면 된다. 워킹맘인 친구들은 굳이 저녁 시간에 친구를 만나러 나오진 않는다.
지인이라 함은 가족, 친구, 사회생활 동료 외의 모든 사람을 일컬을 수 있는데, 지인 무리는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지인들의 구성이 그때그때 달라지는데, 현재로선 내 지인이라고 하면 동네 애엄마 무리들이다. 당연히 저녁에 만날 일이 없다. 그 외의 지인들은 현재로선 일단 나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만날 일이 없다.
마지막으로 사회생활에서 맺은 인연들은 나의 퇴사와 함께 서서히 멀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영원히 볼일 없는 사람들이 85%, 연락을 하는 사람들은 15%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같은 사회인일 때는 은연 중에 정보공유 거리들이 있고, 회사이야기, 산업전반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나고 모였다. A 회사를 퇴사하고 B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정기적으로 A 회사 사람들을 만나고 모임을 가졌었다. 서로 퇴근시간을 조율해서 중간지점에서 장소를 정한 후 즐겁게 시간보내고 헤어지면 끝.
그런데 자연인이 된 나와 그들은 일단 출발지점이 다르다. 그들은 회사에서 출발하지만 나는 집에서 출발한다. 그것도 거의 내가 일방적으로 회사앞으로 찾아가는 모양새가 된다. 나는 편하게 집에 있다가 번거롭게 시내로 나가야 되는 상황이고, 그들은 집에 있는 나를 자기들 편한 곳으로 불러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공통화제거리가 지극히 협소해졌다. 그들의 회사이야기는 나에게 더이상 아무 의미가 없고, 나의 육아이야기는 그들에게 큰 의미가 없다. 만나고 모여봤자 공통된 주제로 이야기할 기회는 거의 없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다른 한쪽이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갓 퇴사했을 때에는 공공의 적의 험담을 하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퇴사 후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조직구성원은 달라지고, 공통으로 아는 멤버들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줄어든다. 누가 어떻게 됐다더라라는 소식 공유 외에는 할말이 없다.
점점 속한 세계가 달라지면서 서로 할말이 없어진다. 굉장히 개인적이고 신변잡기적인 주제가 아니면 공감되는 이야기주제를 찾기 어렵다. 심지어 내가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물어보면 대외비 때문에 쉽게 알려주지 못하는 정보들 마저 있었다. 그럴때면 괜시리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고 쳐도, 전업맘의 육아 이야기는 굉장히 디테일하고 스토리텔링적인데, 워킹맘이나 직장인 아빠의 육아이야기는 정보나 팁 위주다. 그들에게는 전업맘인 내가 주는 팁 보다도 같은 워킹맘인, 매일 만나는 직장선배 누군가가 주는 조언이 훨씬 더 도움된다.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육아는 여건상 그들이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이다. 결국 아이들 이야기마저 겉돈다.
저녁약속이 있는데, 애 때문에 못나간다기 보다는,
저녁약속자체가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이 저녁에라도 만나고 모임을 갖는 이유는 주고받을 정보가 있거나, 친분자체가 주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따로 시간 내서 만나긴 덜 친하고, 이왕 밖에 나온김에 저녁해결과 회포풀기를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에 저녁에 만나는 것인데, 줄 정보가 없는 나로서는 불러주는 이도 없다. 나름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도 '언제 한번 점심 때 놀러와. 밥이나 먹자'는 기약없는 공수표만 던질 뿐이다. 애 키우는 아줌마 하나 알고지내봤자,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이익이 될까. 그저 과거에 친했던 지인리스트 중 하나일뿐.
지금은 아이의 일과 안에 내가 부속품처럼 들러붙어 있어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가면 뭔가 제대로 안되어있거나,
수시로 전화가 오는 등 맘편히 놀지도 못한다.
한번 나갔다 돌아오면 죄책감과 후회, 그리고 퇴보된 아이와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소멸된 것이 아니다. 저녁에 활동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회생활은 대낮에 충분히 하고 있어서 저녁엔 휴식이 필요할 정도다.
그저 인간관계가 재편된 것일 뿐이다. 저녁에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들 위주로.
아쉬워할 것도, 부러워할 것도 없다. 호프집가면 얻는 것은 살뿐이라고 생각할 나이가 되기도 했다.
언제가 될까.
다시 밤에 나가게 될 그 때는?
애 다 키우고 아줌마들끼리 모이는 저녁모임이 될까?
삶은 이렇게 계속 변화하겠지.
내가 예측하지 못하는 다양한 변화들이 슥슥 스쳐 지나치겠지.
23살 첫회사에 입사할때는 세계를 제패하는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는데,
지금은 아이 머리 속도 클리어하게 읽어내지 못하는 깜깜이 신세다.
그래도 운과 기회가 나에게도 다시 찾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