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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Jan 13. 2019

워킹맘, 할머니 육아와의 밸런스 (1)

제가 태어나자마자 10년간 저를 키워주셨던 할머니.

저는 할머니에게 '엄마 대신'이라는 묘한 사랑과 신뢰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그래도 엄마는 아니었다'는 냉정한 감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엄마가 아니기에,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고, 조금 커서는 예의바르게 대해야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할머니를 엄마로 알고 클 정도로 할머니와의 애착이 엄청 좋다고도 하는데요, 제 경우에는 하루종일 할머니와 단 둘이 있었던 아기 시절에도 '할머니는 엄마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교적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 몇 개를 선명하게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제가 3살 가량 시절의 일화를 한 가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동생이 아직 태어나기 전인 것으로 봐서 3돌이 아니라 우리나라 나이로 3살이었고, 기저귀를 언제 뗐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 전용 변기에 대소변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거실을 걸어다니고 있다가 갑자기 응가가 마려웠습니다. 변기에 갈까말까 하다가, 갑자기 제가 서있던 그 자리에서 응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응가가 나와버렸습니다. 3살의 조그만 어린아이였는데도, 저는 폭풍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처럼 다 큰 아이가 바지에 응가를 하다니 너무 창피하다.
이걸 나 혼자 몰래 처리해야 하나? 엉덩이에 손이 닿지 않는데 ㅠㅠ
할머니에게 말해야 하나?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릴까? 

우선 엄마가 올 때까지 할머니에게 말하지 말고 기다리기 했습니다. 그래서 응가 싼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면서 한참이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헌데 응가 싼 바지를 입고서는 바닥에 앉을 수도 없고, 계속 걸어다녀야 할 것 같아서 결국 포기하고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습니다. 

할머니에게 혼날까봐 엄청 눈치를 보며 할머니에게 바지에 응가를 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할머니가 전혀 혼내지 않고 별말 없이 응가를 치워주시고 새 바지로 갈아입혀주셨습니다. 너무 챙피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할머니가 탓하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아 주셔서 너무 고마웠던 기억이 납니다. 

헌데 그 다음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할머니가 혹시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할까봐

하루종일 걱정하고 고민하던 저는 결국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오자마자 자진납세를 했습니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제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선수쳐서 엄마에게 제가 먼저 이야기를 한 것이죠. 엄마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어서 또 한번 놀랐던 기억.

그도 그럴 것이 겨우 3살, 언제든 대소변 실수를 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저 혼자 오바하며 하루종일 고민했던 결과 치고 허탈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두 분 다 '넌 아직 어리니 충분히 실수할 수 있어, 괜찮아'란 말은 안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38살 먹은 지금까지 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아무도 괜찮다고 토닥여주지 않아서, 그 때 그 일이 엄청 챙피했고 엄청난 실수인 것인 줄 알고, 계속해서 그 때 일을 곱씹고 되새겨보았기 때문에 35년간 그 기억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키워주신 저는
1차적으로 할머니 앞에서는 수치스러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차적으로 엄마에게는 칭찬받을만하고 좋은 일들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차적으로 할머니에게는 키우기 수월한 아이여야 하고, 엄마에게는 항상 칭찬받는 아이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치심 처리는 1~3세 영유아 발달과업 중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배변훈련을 완성해야 하는 이 시기의 아이들이 적절히 배변활동을 처리하지 못하면 수치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기저귀 떼기가 늦는 아이일수록 억압하거나 혼내지 않고 적절히 지지해주며 훈련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지차일드였던 저는 기저귀떼기도 빨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저귀떼기를 일찍 완성한 아이들이더라도 언제든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준이 역시 아직도 가끔 밤에 이불에 지도를 그립니다. 그럴 때 저는 혹시라도 아이가 수치심을 가지고 죄책감을 느낄까봐 항상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아직 어린 너는 충분히 실수할 수 있다'며 죄책감을 소거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아이들의 심리나 감정까지 세세하게 케어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에이 지지~'라며 아이를 나무라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행이지요. '똥싸개네 똥싸개~'라며 놀리시는 분도 봤습니다. 똥이 묻었으니 닦아주고 옷을 갈아입혀주기는 하지만, 아이를 다독여주는 말이나 수치심처리에는 무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 어른들일수록 더욱 그런 성향이 강합니다. 

할머니 뿐만 아니라 시터, 어린이집 선생님들 역시 내 아이에 대한 세세한 감정읽기나 감정코치를 해 줄 여건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친부모인 나조차도, 제대로 된 부모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라면 아이가 사소한 실수를 했을 때 아이를 다그치고 나무라는 발언을 서슴치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루종일 함께 생활해야 하는 할머니 앞에서 부끄럽거나, 챙피한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아이는 욕구불만이 되거나 욕구를 억압하는 상태로 자랄 가능성이 있습니다. 준이의 경우는 배변훈련 시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 유치원에 입학한 후 심각한 배변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치원 생활을 하면서 대변처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응가가 마려울 때 참는 연습을 해나갔고, 점점 주기가 길어지더니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소변은 혼자 처리가 가능하다고 쳐도, 엄마가 아닌 타인이 응가처리를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성격 덕분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준이의 응가 문제는 저희 부부의 가장 큰 골칫거리입니다. 

너무 배변훈련쪽으로 이야기가 새버렸는데요, 배변훈련 외에도 아이의 사소한 실수를 나무라거나 놀리는 등의 피드백을 많이 받게 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위축되고, 자율적인 행동을 하는 데 제약을 받기 쉽습니다. 

할머니가 아이를 봐주시는 경우 엄마들의 3대 걱정거리는 뭐든지 너무 받아줘서 독불장군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사례와, 너무 TV를 많이 보여주셔서 아이의 활동성이 저하되는 경우, 적절한 피드백을 잘 받지 못해서 아이가 위축되어 있는 경우의 사례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렇다고 불만을 부모님께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귀한 노년기를 나와 손자를 위해 힘들게 보내고 계신 부모님들이시니까요. 나보다 훨씬 육아 베테랑이신 부모님들께 내가 아는 얕은 지식을 잘못 말했다간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입니다. 

'제가 육아서에서 읽었는데요..'로 말문을 꺼내면, 책도 안읽고 되는대로 애를 막키우는 노인네 취급을 한다고 느끼실까봐 걱정이 됩니다. 

그럴 땐
할머니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을 이용해보세요.





할머니들은 TV에 나온 것이라고 하면 신뢰도 급상승, 심지어 건강에 좋다는 뭐가 나오기만 하면 주위 지인들에게도 소문을 내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할머니들이 애정하시는 TV를 역이용하면 할머니 육아에서 오는 많은 부정적인 결과물들을 효과적으로 컨트롤해나갈 수 있습니다. 

요즘엔 유투브나 네이버TV에 육아 관련된 클립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부모님과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부분이 수록된 동영상 강의를 TV에 연결해서 보여드리세요. 육아서를 읽어보시라고 권하거나, 자식 입장에서 육아 훈수를 두는 방식보다는 훨씬 잘 받아들여 주실 것입니다. 

저희 엄마도 제가 없을 때 잠깐 준이를 봐주신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TV에서 봤던 육아지식을 자랑스럽게 활용하시며 저한테 일장연설까지..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저의 입을 통해서 육아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며, 책을 읽어보실 것을 권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방법입니다. 그분들이 좋아하시는 매체인 TV를 꼭 이용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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