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아이' 시리즈를 연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많은 분들이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주셔서 좀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목차라고 혼자 기획해 본 항목들이 40여가지였고, 조금씩 추가 되어서 6가지의 주제가 더 생겼습니다.
사실 제 이야기는 너무나 오래전 옛날 부모, 옛날 아이의 이야기라 요즘 세대와 동떨어질 것이란 걱정도 많았는데요, 제가 글감을 찾기 위해 검색을 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대다수의 가정에선 아이들에게 충분히 잘 해주고 계시지만, 여전히 일부 가정에선 제가 자랐던 옛날 모습을 답습하고 있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런 사례들은 TV 방송으로도 쉽게 접해볼 수가 있지요.
십수년전만 해도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아이들의 케이스는 조손가정, 편부모가정 등 특수한 가정환경의 사례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평범한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이 방문하는 비율이 60%까지 늘었다는 어느 심리상담센터의 글을 보았습니다. 심리상담센터의 대중화, 보편화 때문일 수도 있겠고, 맞벌이 가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글을 보고 '뭔가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제가 겪었던 일들을 공유함으로써 혹시 모를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를 미리 예방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서두가 길었네요. 얼른 본론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시간개념'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어른이라면 '어릴 때는 하루가 참 길었는데, 요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난다'라는 말에 100% 동의하실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 할일이 많아지고, 바빠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이와 어른이 시간개념이 달라서는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를 구성하는 어린이들의 시간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늦게 자는 아이, 일찍 자는 아이 할 것 없이 아이들의 권장취침시간은 저녁 9시입니다. 실제로 11시경에 잠드는 아이들도 9시부터 '이제 자야한다'는 말을 수십번씩 반복적으로 듣습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저녁 9시는 하루의 끝이며, 그 이후의 시간은 아이에게 용납되지 않는 시간입니다.
반면 어른들의 취침시간은 최소 밤 12시입니다. 성인 드라마는 밤 10이 시작하여 11시에 끝이 납니다.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는 밤 11시에 시작합니다. 어른들의 권장 취침시간은 암묵적으로 밤 12시입니다.
어른들은 밤 12시에 잠들어서 6-7시간을 자고 일어나며 총 11시간 이상의 하루 일과시간을 갖습니다. 6시에 칼퇴하여 집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총 6시간 가량의 저녁일과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하루에 주어진 15시간 중 낮과 밤의 시간 사용 비율은 2:1로, 낮시간의 사용량 만큼 밤시간의 사용량 역시 성인들에게 중요한 비중을 갖습니다.
반면 하루에 10-11시간을 자는 데 사용하는 아이들은 하루에 13시간 가량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아, 성인보다 하루를 구성하는 시간이 짧습니다. 그런데 주어진 시간을 구성하는 요소를 살펴보면 '낮시간'의 비중이 77%를 넘어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인이 사용하는 낮시간의 비율이 64%임을 감안하면 아이들이 느끼는 '낮'시간은 상대적으로 매우 길고 밤은 엄청 짧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느끼는 밤은 엄청 짧을 뿐더러, 하루의 끝이라는 인식이 더해지고, '자야해자야해'란 말까지 엎어져서, '밤 = 내 마음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갖게 합니다. 실제로는 해가 지고 나서도 3-4시간이 지나야 잠자리에 들게 되지만 아주 아기때부터 '밤에는 자는 거야'란 조기교육을 받고 자라오기 때문에 실제 밤시간이 몇시부터 몇시인지에 정확히 인지하기 보다는 '밤이 오면 난 자야한다'는 강박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밤이란 무기력하고, 아무 것도 허용되지 않는 '하루의 끝'이라는 개념인데, 엄마가 밤에 집에 오게 되면 실제로는 몇 시간을 함께 보냈든지간에, '아주 짧은' 시간만을 함께했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실제로 아이 양육을 할 때 낮시간에는 아이가 원하는 활동은 무엇이든 허용되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행동이 제약받게 되고, 재촉받게 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시간이 잘 안가고 하루가 길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은, 낮 시간이 밤 시간에 비해 지나치게 길었고, 바쁘게 소화해야 할 '일과' 없이 빈둥댔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맞벌이 가정에서는 '밤 시간'에 대한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빨리빨리 밥먹고, 빨리빨리 씻고, 얼른 숙제하고, 얼른 자야 되는 시간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하는 여유있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개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 잘 시간까지 3시간 밖에 안남았어. 얼른 ㅇㅇ해야지, 얼른 ㅁㅁ해야지'
라는 말보다,
'이제 엄마와 ㅇㅇ이가 함께할 시간이 3시간이나 남았어. 3시간이면 a도 할 수 있고, b도 할 수 있고, c도할 수 있는 아주 긴 시간이란다. 엄마와 ㅇㅇ이는 이렇게나 긴 시간 동안 ***들을 할 수 있어'
라는 말로 아이의 마음을 안심시켜주고, 여유와 느긋함을 심어주세요.
저는 어린 시절 내내 저 혼자 낮 시간에 뭘 하고 놀았는지는 꽤 많이 기억이 나는 데 반해 저녁 시간에 엄마와 뭘 한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엄마는 저녁에 나름 저와 뭔가를 했다고 하는데, 제 기억엔 1도 남아 있지 않아요. 할머니와 밥 먹었던 기억이나 할머니와 놀이터에 갔던 기억들, 동생과 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들도 많이 있지만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엄마와 하루에 서너시간씩은 충분히 함께 보냈을 것이 분명함에도 제 머리 속에는 남아 있는 기억이 없고, 이런사실이 '엄마와 어린시절 함께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명제만 남게 했습니다. 엄마로선 억울한 일일 수도 있을테지만 기억은 주관적인 것이라서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렸거나, 임팩트가 없었거나, 후다닥 지나가 버려서 즐길 수 없었거나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의 시간인식을 조금 바꿔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밤은 짧고 낮은 긴 것이 아니라, 낮도 길고, 밤도 길다는 것을요. 엄마와 함께 하는 밤 시간 역시 충분히 긴 시간이고,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추억을 함께 쌓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있어요.
바로 '사진'입니다.
'사진'은 아이들로 하여금 과거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저녁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했던 추억들을 반드시 사진으로 기록해놓고, 틈틈이 아이들과 자주 꺼내보면서 그 때 했던 일들을 다시 이야기해주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사진으로 남아있지 않은 낮의 일과시간의 기억들보다, 엄마와 함께 했던 저녁시간의 기억들을 더 많이 남기게 될 것입니다.
사진이 주는 기억의 임팩트는 상당히 강력합니다. 휘발되어 버리는 평상시의 수만가지의 기억보다, 사진으로 다시 꺼내보는 기억이 훨씬 오래 갑니다. 제 경우엔 평생 기억되기도 합니다. 가령 1살에 찍었던 사진을 2살에 보면, 그 때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고, 3살에 다시 보면 또 다시 기억이 살아나고, 4살, 5살에 봐도 다시 그 때의 기억이 살아납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1, 2살 때의 기억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이 몇 개 됩니다. 신생아 때 부터 한 1년간 덮고 잤던 이불의 무늬와 재질, 감촉, 누빔의 형태까지 기억이 납니다. 이런 기억재생작업은 아기때부터 수시로 사진을 꺼내보면서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작업을 자주 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필름카메라였던 시절, 제 어린시절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은 앨범에 담겨서 저의 평상시 장난감이 되어주었습니다. 사진을 자주 펼쳐봤던 저는 아주아주 어릴 때부터 기억을 저장하고 불러오는 연습을 했던 것이지요.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수천장의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거의 보관용에 그치거나, 엄마아빠가 아이들 잘 때 몰래 한번씩 들여다보는 용도로 사용되는 데에 그칩니다. 이 사진들을 꼭 인화까지는 안하더라도, 수시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그 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세요. 아이들의 기억의 우선순위가 재배치 될 것입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등장하는 사진이어야 한다는 사실 꼭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