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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Jan 13. 2019

워킹맘 아이에게 해서는 안될 말

워킹맘의 아이로 성장해오면서 무수히 들어왔던 말이 있습니다.      

                                     

엄마는 너희들 때문에 밖에서 힘들게 고생한다


누가 이런 말을 저에게 했느냐고요? 물론 엄마도 가끔 저런 말을 한 적이 있었죠. 엄마도 힘든 날들이 있었을테니까요. 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이런 말을 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주위의 모든 어른들이었습니다. 당사자인 엄마가 가만히 있는데도 주위의 모든 어른들 - 친척, 선생님, 동네 아줌마, 엄마 친구들 등 저를 아는 모든 어른들이 다 그렇게 얘기했다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엄마는 너희들 때문에 밖에서 힘들게 고생한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더 엄마 말 잘듣고 
엄마 집안일도 도와야 하고
엄마가 힘든 것을 다 이해해줘야 하고
(동생도 잘 돌보고 이끌어줘야 되고)
커서 꼭 효도해야 된다.

할 수 있지? 약속!



몇년에 한번 볼까말까한 친척들도 저에게 저런 레파토리의 다짐을 받아내며 약속을 하고 갔습니다. 워킹맘인 엄마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도 있었겠죠. 하지만 성인이고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 그에 따른 책임도 어느 정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선택하지도 않은 삶을 강제로 살아야 하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과중하게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지워지는 어리고 약한 아이들에게 '엄마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도와야 되고, 나중에 꼭 갚으라'는 조언은 자아개념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너무 위험한 강요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완벽한 인간이 되어라라고 조언하는 것이 더 속편할 것 같습니다. 

'엄마는 너희들 때문에 밖에서 힘들게 고생한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상식적으로 일하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갖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워킹맘 아이들이 놓인 환경의 특성상, 아이들 역시 엄마에게 죄책감을 갖게 되는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들게 고생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초등학생때까지는 어른들이 만들어 준 '효녀심청' 프레임에 완벽빙의해서 성실하게, 성심성의껏 워킹맘의 딸노릇을 수행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수없이 저에게 세뇌했던 '고생하는 엄마, 넌 엄마에게 잘해야 하는 아이' 프레임은 안타깝게도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사춘기가 되어 주위 가정과 우리집의 차이를 눈치채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과 나와의 비교, 부족했던 정서적 지지 탓에 저는 걷잡을 수 없는 반항아가 되어버렸습니다. 다행히 규범과 규칙,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행동했고, 저 자신을 망가뜨리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이 보면 여전히 모범생 소녀였을지 모르나 엄마에 대한 반항심은 반항심을 넘어 적개심으로까지 자라났습니다. 

일단 저에게 하라는 게 너무 많았고, 엄마는 도무지 저에게 만족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집 애들은 오직 공부 하나만 잘해도 집에서 떠받들고 산다는데, 나는 뭐 이렇게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고, 주어진 역할이 많은지.. 사춘기 외모 고민 하나만으로도 매일같이 울고 싶었는데 집에 오면 다른 아이들이 체험조차 못해본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엄마가 직장도 다녀야 하고 피곤해죽겠는데 어떻게 나혼자 집안일을 다 하니? 너도 이만큼 컸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며 조금씩 넘어왔던 집안일이 제 전담이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장 상처였던 사건은 고 3때 일어났습니다. 이제까지는 몰라도 고 3정도 되면 나도 집안에서 대접 좀 받고 살겠지 싶었는데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제가 남동생의 교복을 빨아놓지 않아서 애가 입고갈 옷이 없다며 저에게 책임을 묻는 엄마에게 순간적으로 제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쟤 엄마도 아닌데 쟤를 왜 맨날 나만 챙겨야 하냐고, 엄마는 뭐하는 사람이냐고요. 엄마는 제가 싸가지 없다며 한달동안 말도 한마디 안하고 용돈도 안주고 밥도 안줬습니다. 저도 엄마 있는데서 혼자 밥 챙겨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엄마 없는 곳에서만 끼니를 때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돌이켜봐도 엄마 잘못인데, 제가 숙이고 들어가서 용서를 빌기 전까지는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결점이고 잘못은 학생들이 한다'는 직업병을 가진 선생님 엄마의 단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제가 평생의 상처로 간직하고 있는 그 사건을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합니다. 



워킹맘의 아이에게 '엄마는 너희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말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하며, 이전 글에도 언급했다시피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또 엄마 본인이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주위 어른들이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는 지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말을 자주 들은 아이는 초등학생 시절까지는 '착한 아이 증후군'에 시달릴 수 있으며, 사춘기가 되면 남과 나와의 비교를 통해 반항심을 기르게 됩니다. 


<+>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저를 불러 해주신 이야기가 종종 떠오릅니다. 당시 말도 없고, 덩치도 크고, 무표정이던 저에게, 



넌 집에서 엄마에게 애교도 부리고 그러니?
아니요
엄마한테 떼도 써보고 투정부려 본 적도 없어?
어떻게 그래요?
엄마한테 애교도 부리고 그래봐. 
어떻게 하는 지 모르는데요.
다른 딸들은 다 그렇게 해. 애교도 부리고 투정도 부리고.
저는 말 잘 안하는데요.
엄마한테 그렇게 해도 돼. 너무 어른스럽게 하려고 하지마. 편하게 해.
... (속으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함)

할 수 있지? 화이팅!



저에게 아이로서의 권리를 누려보라고 조언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해본 적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일을 왜 억지로 강요하고 시키냐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저 상담 이후로 담임선생님과 마주칠 때마다 엄마에게 애교를 부려봤냐고 몇 번이나 확인을 하시는 통에, 일부러 선생님을 피해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런 선생님이 좀 더 많았어야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다른 아이들이 누리는 것을 동일하게 누리면서 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환경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자신만 못누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아이는 부모에게는 반항심을, 자기자신에게는 비관적 가치관을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착한아이 증후군'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도 부른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어린 시절 주 양육자로부터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유기공포(fear of abandonment)가 심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방어기제의 일환으로 본다. 
착한 아이를 연기하는 아이의 심리 밑바탕에는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 중요한 사람들의 요구에 순종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필수이다. 




착한 아이 증후군을 앓는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

자녀가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 증후군’을 보인다면 부모는 다음과 같이 대처하는 것이 좋습니다.
1.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2. 자녀가 부정적인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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