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전에 없이 '남에 대한 폐'에 민감하다.
좋게 말해 개인주의고,
나쁘게 말해 선긋는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개인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남에게 폐를 끼쳐선 안되고 남도 역시 나에게 폐를 끼쳐선 안된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는 언제나 폐가 발생한다.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그렇다.
단순히 한 공간에 모여있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폐는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폐'를 어떻게 볼 것이냐다.
결혼식에 청첩장을 주는 것도 폐
돌잔치에 초대하는 것도 폐
생일잔치에 초대하는 것도 폐
자기공간을 지키기 위한 모든 '조건'에 일말의 흠집을 내는 것도 폐
환갑잔치를 하는 것도 폐
늙어서 병 걸린 것도 폐
여자가 결혼해서 돈을 안벌어오는 것도 폐
가족 행사에 부르는 것도 폐
가족 행사를 의논하는 것도 폐
모든 것이 다 폐다.
폐끼치는 것이 싫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대안으로 선긋기를 한다.
무한대로 선을 긋는다.
부부사이에도 선을 긋는다.
이러려면 혼자 살아야 된다.
혼자 살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내가 끼칠 수 있는 모든 폐를 돈을 주고 서비스로 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려면 너무나 힘들지 않겠는가.
어떻게 내가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돈주고 살 수 있을만큼 풍족하게 벌고 모아 남기겠는가 말이다.
몇일전 2.5촌이라고 볼 수 있는 사촌동생이 결혼을 했는데 갈 수가 없었다.
쌍둥이 이모의 아들이라 나와는 유전적으로 다른 사촌들보다는 더 가까워서 2.5촌이라고 생각했고,
유년시절 실제로 2.5촌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스몰웨딩을 했다.
그래서 내 자리는 없었다.
그 아이의 선긋기는 선의에서 출발했을지언정 나에게는 적잖이 상처가 되었다.
심지어 그 아이의 결혼소식을 듣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촌오빠가 작년에 이미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선긋기가 벌어지는데 하물며 남이랴.
나 어릴적 생일잔치는 분명 축하받는 행사였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는 생일잔치가 선물주고받는 날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축하를 물질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다보니 생일잔치 자체가 서로 불편해졌다.
그래서 요즘 생일은 그냥 자기가 가지고 싶은 물건 사는 날이 되었다.
축하는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
축하를 잘못해주었다간 내 주머니 속에서 그 사람에게 뭐라도 나가야 될까봐 그렇다.
부모님도 생일이 되면 돈을 준다. 가지고 싶은거 알아서 사라고.
다 알아서 해야 한다.
혼자서
돈을 가지고.
물어서도 안되고
내보여서도 안된다.
지나가던 길손을 재워주고 밥을 먹여주면서도 돈 한푼 안받았던 그 사회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갚을 신세도 없다.
신세를 져 본적이 있어야 갚을 것이 아닌가.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우리는 서로 남이었구나를 확인하는 과정과 맥을 같이 하게 된다.
나는 내가 필요한 폐를 돈주고 전부 살 수 있을만큼 돈을 벌 수도 없고 쓰고 남겨서 다음에 필요한 폐를 구할 여력도 없다.
폐 좀 끼치면 어때
남이 나에게 손해 좀 주면 어때
나에게 청첩장 좀 주면 어때
셋째 돌잔치에 불러주면 어때
남이 나에게 폐를 끼치는만큼 그 사람과 내가 가깝다는 증거가 되는 거잖아.
이 정도 폐는 서로 마음껏 끼치고도 서로 아무렇지 않아할 수 있는 사회
내가 폐를 끼치는 만큼 남도 나에게 폐를 끼치고 서로 보듬어줄 수 있는 사회
우리는 한 때 분명 그런 사회에 살았었고
여러 미담들을 아름다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너무 차갑다.
생일카드 한장 안써오는 친구들이라도
내 아들 생일파티에 초대해서 실컷 먹여주고 싶건만
요즘은 생일파티를 한다는 발상자체가 조심스럽고 위험하다.
내가 생일파티를 하면 남도 부담스러워진다.
누구 한놈만 생일파티라는 호강을 하는 것 때문에 모두가 불공평해지면 안되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필받아 반찬을 많이 했는데
친한 엄마에게 조금 나눠주고 싶어도
그 사람이 나에게 동급의 무언가를 갚아야 될 것 같다는 부담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나눠주면 안된다.
그냥 잘먹고 빈그릇만 돌려주면 만족할 일인데.
왜 이렇게 따져.
뭘 그렇게 서로 부담스러워 해.
조금 뻔뻔하면 어때.
안 갚으면 어떻냐고.
혼자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
그런데 난 혼자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