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치의 넓은, 그리고 얕은 인간관계

by 스윗제니

남해바다와 인접한 도시에 살고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울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과는 물리적으로 멀어졌다. 아니, 사실 마음적으로도 한참이나 멀어진지 오래다. 여기서 사귀게 된 친구들이 왜 없으랴만은 마음이 시리고 허전한 것은 인간관계의 깊이가 뚝뚝 끊어진 느낌 때문이다.


어느 지역으로 이주를 하더라도 인사이더의 느낌을 확실히 받으려면 '교회'에 소속되라고 했다. 나는 그러질 못했으니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사람에게 소속감이란 사치이자, 감히 넘봐선 안되는 그 어떤 것이다.


SNS를 켜서 피드를 넘기다보면 언제나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나도 한때 거기 있었고, 치열하게 소통했건만 그 모든 인간관계에서 철저히 배제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나란 존재는 '시골로 시집갔다며? 뭐하고 산대?'가 전부일 것이다. 갑자기 말걸면, '무슨 일이지? 돈 필요한가?'란 의심을 줄까봐 그저 조용히 그네들의 피드만 입다물고 구경중일 뿐이다.


세상은 치열하게 서울 중심으로 흘러갈 뿐이고, 변방의 외로운 철새에게 기회란 없다. 창업이든, 교육이든, 블로거든, 작가든 일단 서울에 살고봐야 그 다음이 있다. 우선 얼굴을 대면해야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몸이 가 있어야 관계라는 것이 생긴다.


법조계, 의료계, 언론계, 각종 산업군의 핵심인물들을 무수히도 알지만 지독히도 그 관계가 얕기에 사소한 부탁 하나 쉽게 던질 수가 없다. 과거 찬란한 삼성맨이었던 시절, 일주일이 멀다하고 온갖 지인들의 '야, 너 통하면 핸드폰 좀 싸게 살 수 없냐?'는 질문 전화를 받았던 과거와는 사뭇 대조된다. 그래. 계속 삼성맨으로 살걸 그랬나? 그 시절 나는 확실한 인맥의 갑의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통하면 핸드폰을 싸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니.


지금의 내 두손엔 나의 사회적 자취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그 어떤 무기도 들려 있지 않다. 뭔가가 해보고 싶다면 '처음부터 다시'해야 한다. 대학원을 새로 가던가, 한 분야를 새로 공부해서 스스로 성공해야 하는 상황. 살아 있는 티가 나면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는 것이 바로 '얕은 인간관계'이기에.


아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은 내가 그 동안 너무 옮겨다녔다는 것을 반증하는 핵심증거가 되기도 한다. 한 장소에 3년이상 머무른 적이 없으니 깊어져봤자 얼마나 깊어지고, 끈끈해져봤자 얼마나 끈끈해질 수 있겠나. 심지어 대학마저도 4년을 못채우고 졸업했으니 7-8년씩 같이 다닌 대학동기와 선후배들과 같을 수가 있으랴.


인간은 관계속에서 상처를 받는다고 하지만, 없는 관계에서도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도 여기 있다고 좀 더 티를 내고, 뭐 재미있는 거 없냐고 한번이라도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가만히 있으면 정말 가마니인줄 아는 것이 흔한 인간관계의 패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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