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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놀이터 Oct 05. 2015

여행의 끝자락에서

남이섬에서의 하룻밤

상원이와의 여행이 끝나간다. 

남이섬 안 맛집이라 소개된 '남문'에서 아점(뚝배기불고기, 미니찜닭 추천)을 먹고 볕이 잘 드는 카페 밖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켰다.
상원이가 웃으며 애교를 피운다.
이유인즉 "응답하라 1997"에서 서인국이 즐겨먹던 캐러멜마키아또 크림 듬뿍을 먹고 싶다는 거였다.
원래 커피는 몸에 좋지 않다며 못 먹게 했는데 오늘은 이런 여유를 함께 느끼기 위해서 사줬다. 오늘만이라고. 
 
'따뜻한 오후 음악이 흐른다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
나의 울컥한 행복감
내 옆 아이의 여유가 느껴진다
눈물 나도록 행복한 오후다.'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했다.
좋은 시간들을 보냈다.
섬안의 투어버스도, 기차도 타고 걷기도  하면서... 
그런데 행복은 그닥 길진 않았다. ㅋㅋ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금요일이라 기차표 예매를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가 없다고 하니, 있어도 서서가야한다고 하니 상원이가 화를 냈다.
왜 미리미리 예약하지 않았냐며.
대충 시간을 알아서 해야 하지 않았냐며.
어떻게 서서갈 수 있느냐며. 
 
갑자기 서운하고 화나고 슬퍼지기까지 했다. 내가 진 짐은 상원이 몸통 만한 것이었는데, 어깨가 느끼는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내 입술은 부르트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상원이는 자신의 힘듬만 보고 나를 배려하지 않는 그 모습에 속상해졌다. 
 
기차에 내려 상원이에게 얘기했다.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번 여행에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지. 
 
상원이는 '아차'했다고 했다.
늘 난 얘기했다. '아차'할때 얘기해야 한다고. 아님 오해가 생기고 서운함이 생긴다고.
오늘도 때를 놓쳤다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기차 안에서 생각을 했다.
아이와 여행하면서 "내가 너 때문에,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는 아닌 것 같다고.
아이에게 대가를 바라고 했던 행동들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위한, 나를 위한 상원이의 배려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내가 속상했던 건 소통의 문제였지. 희생의 문제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여행 마무리에는 서로가 힘들어서인지 늘 이렇게 다툼이 있다. 상원이는 대부분 할 말이 없다. 내가 더 희생하기 때문이고,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나의 기꺼운 행동이 희생이라는 단어로 아이와의 소통에 무기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상원이와 난 전주 가는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화해를 했다. 
갈수록 여행에서의 싸움 횟수는 줄어드는 것 같다. 상원이가 커서이겠지. 그리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제법 어른스럽기도 하다. 아직도 깝쭉거리기는 하지만.ㅋㅋ
38분 후면 전주에 도착한다.
난 당분간 남이섬을 그리워할 것 같다.
정관루에서의 하룻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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