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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놀이터 Sep 14. 2015

욕에 관한 4가지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이틀째 야근이다.

요즘 프로젝트 신청서 작성으로 머릿속 핏줄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꼭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가며 결국 완성했다.

그리고 시청 담당자에게 건네줄 때에는 이제 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번째 back. 내용이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보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좋다. 다시 사무실로 가져와서 내용을 보완했다.

다시 back. 그리고 또 back.

이유인 즉 보낸 서류가 폼 나지 않고 보기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신청서를 묶어서 보기 편하게 가져갔건만 결국 제본을 해야 한다는 거였고, 각각 견출지 라벨링을 해서 보기 편하게 해오라는 것이었다.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프로젝트 신청서의 내용보다는 외적으로 보여지는 형식을 중요시 여기는 공무원들의 행태가 짜증이 났고, 그것에 휘둘리며 거의 3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는 우리의 모습이 싫었다.   


마지막 D-DAY 월요일, 오전에 라벨링 작업할 때다.

대표님께서 욕을 하시기 시작했다.

이런 000같은, 그냥 000해 버릴까 보다, 공무원들이 다 그렇지 이런 000들이 등등.

고마웠다.

우리의 힘듦 과 짜증을 보시고 참아보라고, 원래 해야 하는 거라고 말하지 않으셔서 그리고 공무원들의 행태에 대해 함께  속상해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녀의 욕이, 그녀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  


운전한지 거의 1년쯤 되어가는 것 같다.

이때가 가장 사고가 많이 날 때니 운전 조심해야 한다고 오랜 운전 경력자들은 얘기하곤 했다.

맞다.

요즘 나의 운전이 위태위태하다. 속도뿐만 아니라 주위 차들에 대한 무서움이 덜 해져서 인지, 운전이 겉 넘어서 인지, 긴장하지 않은 탓인지 사고 날 위기가 몇 번 있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이틀 후에 있을 댄스 수업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해 음악을 틀어놓고 머릿속으로 연습하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파란불을 따라 신호등을 잘 지키며 운전을 해서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트럭 한대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트럭 창문이 열리면서 나보다 어려 보이는 청년이 갑자기 욕을 해댔다.

'이런 시팔xxxxxx'

나의 창문은 아쉽게도 열려있었다.

운전 중에 욕을 듣긴 처음이었다.

당황했다. 겁도 났다.  


뭐지?

내가 뭘 잘못했지?  


그동안 운전을 하면서 앞차가 느린 속도로 진로 방해를 하거나, 배려 없이 끼어들면 신호등을 지켜도 화냈던 상황이 생각났다. 그래 아마도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 곳에서 그 사람을, 그 트럭을 위험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결국 난 겁을 먹고 골목골목으로 돌아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화가 나기보다는 이제 내가 운전을 조심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 때문인지는 몰라도 주님께서 나에게 운전 조심하라는 말을 이렇게 격하게 표현하셨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이 번뜩 났다.

결국 난 그 욕을 먹고 나서야 나의 운전이 나를 포함해 다른 사람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 이야기.  


사회에 나와 알게 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욕을 잘한다. 맛깔지게 한다.

사실 나도 욕을 하고 싶다.

하지만 성격 탓인지, 용기 탓인지, 다른 사람을 인식해서인지 할 수가 없다.

욕을 잘한다는 것을 뭘까?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가 싸울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여성들이 욕한다는 것은 뭘 뜻하는 걸까?

까진 년, 위아래도 없는 년, 노는 년, 멍청한 년 등등…….

그 친구는 43년을 살면서 이런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고 했다.  


저번 주에 문자가 왔다.

“나 전주 왔어”

9월 첫 주에 통화할 당시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는데 아마도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나 보다.

전화를 걸었다.

“어찌된 겨”

“시어머니일로 계속 싸웠는데 그 놈이 욕을 하고 때리려고 하기에 내가 먼저 욕하고 때리고 나와 버렸지. 그 씨발놈이.....” 뒷말이 흐려졌다.

“잘했다! 아주 잘했어” 나는 위로하고 싶었다.

그녀가 지금 얼마나 속상하고 힘든지 나는 알기 때문이다.

그녀의 욕은 그녀를 보호한다.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가진 것도 많지 않은, 그리고 강하지도 않은 그녀는 욕이 무기라도 되는 양 그동안의 세월을 그걸로 막아왔다.

그래서 가끔 그녀가 욕을 시원하게 할 때면 내가 위로를 받는다.

어찌 보면 그녀의 경험이 나와 그닥 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고 곰곰이 그녀의 욕을 들여다보니 남편과 싸움에서의 욕은 그녀의 무기였는지는 몰라도 뒷말의 욕은 그동안 그녀가 남편과 시댁에 어떻게 했는데 이런 대우라니... 그놈이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가 있는지..라는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감정적인 언어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 마지막 욕에는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늘 노력했던 그녀가 슬퍼 보였다.    


네 번째 이야기.

  

나의 이야기다.

2년 전 남편과 아는 언니로 인해 힘들었을 때, 그 누구도 내 옆에 없다고 느꼈을 때, 우울할 때, 아이조차도 나에게 힘듬이었을 때 ‘욕’은 내 곁에, 내 일기장에 있었다.

난 욕을 잘 못한다.

그래서 나의 분노를 대상에게 잘 표출하지 못한다.

다만 입을 닫아버린다든가, 관계를 끊는다는 가, 그것도 아니면 일기장에 ‘욕’을 쓴다.

긴 장문으로다.

일기장에 ‘욕’을 쓴다는 것은 막장까지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출구가 없고, 대안도 없고, 사람도 없다는 뜻.

내가 ‘욕’이 되는 건지, ‘욕’이 내가 되는 건지 모르게 눈물과 범벅이 되어서 난 그곳에 나의 분노와 하고 싶은 얘기들을 적어 내려간다.

그렇게 하고 나면 고해성사라도 한 것처럼 어느 정도 분노는 가라앉고 이성적으로 나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된다.

욕을 할 수 없는 내가 욕을 한다.

대상에게 할 수 없어 일기장에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내 것을 다 토해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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