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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놀이터 Aug 31. 2015

언니가 왔다

어제 언니가 왔다.
아빠의 마음을 풀어드리고자
아빠가 더 늙기 전에 효도하기 위해서
조카 해수를 데리고 왔다.

그러나
아빤 아프다.
마음이 아프고 상황이 아프다.
마음의 여유 없이 그동안의 삶을 고통이나 희생의 역사라 표현하는 아빠가 언니의 진심을 받아주기에는 늙고 지치고 힘들다.
결국 언니는 365일 쉴 틈 없이 일하다 겨우 이틀을 내서 전주에 내려왔지만 아빠를 보지 못하고 우리 집으로 왔다.
무엇이 그리도 서운했는지. 아빠가 야속했다.

언니와 나의 나이차이는 거의 10살 정도 된다.
큰언니와 막내.
늘 언니는 엄마 같은 마음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리고 정 없이 자란 막내동생에 대한  애틋함이란...
예전에는 나를 보면 울기 먼저 했었다.
그리고 엄마를 그리워했다.
그리곤 과거를 떠올리며 좋았던 한때를, 힘들었던 한때를 담배 한 가치 입에 물고  얘기했다.

언니도 아프다.
몸이 아프고 삶이 아팠다.
하지만 언닌 그 안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매번 그녀의 도리와 의무라 여기는 것들을 해내기 위해 몸이 닳고 마음이 닳도록 자신을 아끼지 않고 해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만해도 좋다고,
할 만큼 했으니 이젠 언니를 아껴보라고 얘기했었다.
시댁 어른을 모시고, 남편의 빚을 거의 10년 가까이 갚았고, 그 때문에 빚쟁이에,  도망에, 거기에 시집살이, 빈곤, 고된 노동.
몸이 부서져라 일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당연함으로 인한 시댁 식구들의 무배려와 가족을 돌보지 않은 남편의 욕심, 늙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식당 일밖에 없어 밤낮 바뀐 고된 노동으로 인한 몸의 아픔들.
그래도 언니는 우울해하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고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너무도 오랫동안 고되고 힘든 삶을 살았다.
나의 언니는.

그런 언니를 안아주지도 이해해주지도 않는 아빠를 언니는 이해하고, 걱정하고, 아파했다.
난 그런 언니를 위로하며 언니가 더 잘 살기를 바랬다.
그동안 홀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지금도 견디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일찍 늙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참! 고왔는데.

얇아진 허벅지와 화장끼 없는 주름진 얼굴, 파마  헝클어진 머리와 홈쇼핑에서 몇만 원 주고 산 샌들사이로 보이는 분홍빛 매니큐어를 바른 나 닮은 발가락.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녀의 늙음이.

거의 3년 만에 우리 집을 찾은 언니는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리 집 냉장고를 살핀 언니는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멸치볶음, 어묵볶음, 오징어채 조림, 두부조림, 소고기 장조림 등 장을 보고 다듬고, 자르고, 끓이고를 거의 3시간.
냉장고는 가득 찼다.
그녀는 더해주지 못해 아쉬워했다.

간만에 느끼는 가족의 따뜻함이었다.
가지런히 냉장고에 놓여있는 반찬들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외롭게 버텨왔던 나의 허기진 마음이 든든하게 채워졌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틀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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