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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놀이터 May 26. 2016

논쟁과 질문 없는 곳에 페미니즘이 살아있기가 가능한가?

여성주의 학교에서 김홍미리를 만나다

전북여성단체연합은 지난 5월 11일부터 여성주의 학교를 시작했다. 여성주의 학교는 전북지역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및 여성운동에 관심 있는 회원, 시민,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우리 주변의 다양한 이슈와 움직임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소통하고자 만들어졌다.
첫 번째 강의는 지난 5월 11일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인 오찬호 강사의 “차별을 무기로 진격하는 대학교”란 주제로 전북대학교에서 진행되었다.
오늘 5월 17일 두 번째 강의는 김홍미리 여성학자의 '페미니즘. 페미니즘? 페미니즘!, 페미니즘???"이란 주제로 진행되었다. 강연은 페미니즘 전반에 대한 이해와 최근 화두로 등장하는 '여성 혐오'등을 다루었다.


강의가 시작되자마자 질문도 시작된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와 앉아있을까?"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그곳에 앉아있던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모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페미니스트라 말하기에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아님 페미니스트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몰라서였을까?
나 또한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는 후자 쪽에 더 가까웠다.


김홍미리는 얘기한다.
매 순간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고, 그것들을 내 문제로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를 성찰해야한다고 말이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관계와 논쟁 속에서 발전해왔다.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얘기되어 온 이론들은 변하고 변해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의 또한 바꿔놓았다.

페미니스트란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그럼 나는 페미니스트였다. 하지만 나는 매순간 질문을 던지지 않았으며, 그것들을 내문제로 가져가지도, 고민하지도, 스스로 성찰하지도 않았다.
여성혐오 문제를 얘기하면 공감하고 응원하는 정도였지, 그것들에 내 에너지를 쏟거나 공부하거나 관심갖지 않았다. 매순간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건 그냥 일상이 될 뿐이다.


며칠 전 아이와 콩나물국밥을 먹으러갔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이상해! 안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앉아서 쉴 의자가 없어! 그럼 그분들은 어떻게 쉬어?”
나는 그동안 여성노동에 대해 공부했던 내용을 들어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나 또한 놓친 것이 있었다.
아이의 질문을 통해 본 그녀들의 삶은 내가 공부한 것 이상으로 열악했다.
질문 후에 비로소 보여지는 것들이었다.
주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자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주방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분들은 저녁 11시가 넘어서 사람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계속해야만 했고 서성이고 있어야 했다. 아이는 이 가게가 부당하다고 했다. “일이 없을 때는 쉬어야지 그럼 쉬지도 않고 일만해?”
나 또한 아이의 말에 동의한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 일을 겪고 나니 메갈리아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부당함을, 옳지 않음을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쏟아지는 욕들을 감수하면서 그녀들은 끊임없이 표현하고 행동한다.


김홍미리는 모든 문제를 여성과 남성으로 나뉘어 해석하지 않고 그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성폭력을 포함해서 여성에게 발생하는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피해자 여성의 몸이나 여성에게 집중해서 그 문제가 여성으로 인해 생긴 문제인양 해석하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그 여성이 왜 죽었는지, 죽음을 이유로 여성들이 왜 모였는지, 왜 추모제를 진행하고 길거리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여성혐오라고 표현한 메갈리아나 여성에게 쏟아지는 남성들의 불편함과 공격과 분노 발산만 있을 뿐이다.


성차, 이것은 어떤 '차이' 일까?
“잉녀 생활백서”라는 웹툰을 예를 들어 얘기한다.
웹툰에는 '모든 사람'으로 표현되는 잉여와 여성으로 표현되는 잉녀가 나온다. 이처럼 그동안의 뉴스 기사를 보더라도 남성을 표현하는 특별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여성의 경우는 재혼녀, 아이스크림 판매녀, 김치녀, 조카녀 등 뒤에 필요 없이 ‘녀’라는 단어를 붙어 사건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워쇼스키 감독이 트랜스젠젠더로 산다는 것에 대한 글을 인용함으로써 우리가 사람을 여성과 남성으로만 구분 짓고 있으며 그 외 성에 대해서는 특별한 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트랜스젠더는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독단적인 두 종착점 안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그리고 '전환'은 한 종착점에서 다른 종착점으로 순식간에 옮겨갔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나는 계속 전환을 해왔고, 앞으로도 평생 계속 전환을 할 것이다. 0과 1사이의 무한과도 같은, 남성과 여성사이의 무한을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양분법의 단순함 이상으로 대화를 끌어올려야 한다. 양분법은 잘못된 우상이다  -  워쇼스키 감독


김홍미리는 “우리는 대체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을까? 차별해도 된다는 세계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일은 매우 이상적인가? 질문하지 않는 세계, 사유할 시간이 없는 세계, 묻지 않아도 답할 수 있는 세계, 이런 세계에서 뭐가 문제인지 알 수는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일상생활 안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접하지만 그 안에 있는 젠더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말한다.
이어 현재 젠더와 된 세계와 마주하는 여러 방식들을 1. 모르거나(인식되지 않음), 2. 알아도 심각하게 느끼지 않거나(사소화, “하차할 큰 실수하기 전에”), 3. 제3자의 위치에서 평가, 비판, 비난하거나 (메갈충, 페미년, 파쇼페미) 하는 방식으로 분류하면서 각자 어디에 포함되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광고, 노래가사, 신문기사, 입간판에 쓰여 있는 글, TV프로그램, 예술작품, SNS에 올라오는 각종 글들을 대해 ‘그 문제’가 어떤 문제가 되어가는 지 모니터링하면서, 여성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젠더적 성격들을 찾아내어 질문하고 내 사유에 대한 근거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을 통해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홍미리는 페미니즘을 “주류 페미니즘이 문제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는 서구 중심적이다”,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 “마초적 여성운동이 문제다”, “메갈리안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진단’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페미니즘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좋은, 진짜, 옳은 페미니즘 과 나쁜, 가짜, 틀린 페미니즘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논쟁 없는 곳에, 질문 없는 곳에 페미니즘이 살아있기가 가능한가?


김홍미리는 페미니스트에게 무기는 책이며, 페미니스트는 공부를 통해서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내가 기댄 사유의 근거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 잘못 찾은 분노의 방향은 함께 공부하기를 멈췄을 때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홍미리 강사는 “페미니즘 삶의 방식에서 ‘페미니스트 킥’이라는 빈틈이 있으면 좋겠다. 여백 없이 타인을 삶에 초대할 수 없고, 어울림이나 갈등, 다툼, 논쟁을 생략하고 ‘변화’를 고대할 수 없기 때문에 삶에 빈틈은 있어야한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강의가 있었던 날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여성혐오냐! 아니냐! 라는 논쟁이 붙었다.
여전히 확고하게 여성과 남성을 나누어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메갈리아를 포함해서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혐오대상이 여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계속된 공격과 질문 속에서 끊임없이 답하고 설득하고 논쟁하는 과정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 자신도, 사회도 변화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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