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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놀이터 Jun 24. 2016

변기전쟁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다 - 첫번째

중학교 2학년 아들은 집안 화장실에서 아빠처럼 서서 오줌을 눈다.

그래서 늘 그 주변이 노란 얼룩으로 범벅이 되어 있고, 냄새 또한 장난이 아니다.

“조준 좀 잘해봐!”

“오줌 흘렸지! 이런 냄새가 장난이 아니구먼!

“아니라고! 안 흘렸다고!”

“뭐가 아니야, 이 누런 것은 내 거냐?”

“아니라니까!”

올려져 있는 변기 뚜껑을 내 손으로 잡고 내린 후에, 화장지로 변기 뚜껑을 닦고 사용하는 것도 싫은데 화장실 청소를 이렇게 자주 해야 하다니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앉아서 소변보기"를 권해보리라 작정했다.

갑작스럽게 생활 습관을 당장 바꾸라고 하면 반감이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관련 동영상을 찾아 보여줬다. 그리고 얘기를 꺼냈다.

상원아! 이제 소변을 앉아서 보면 어떨까?”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싫어!”

“왜?”

“귀찮아!"

“그럼 나는 너 때문에 화장실 청소하는 것은 안 귀찮고?”

“왜 갑자기 이상한 것을 시키는 건데?”

“그게 왜 이상한 건데?”

“그럼, 네가 싸고 네가 화장실 청소해!”

“싫어, 그걸 왜 내가 해?”

“그럼 내가 해? 왜 네가 싸서 흘리고 냄새나는 것을 내가 치워야 하는데?”

변기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귀찮다며, 생각해보겠다는 것도, 한번 시도해보고 얘기해보자는 것도 아닌 그 이상한 것이 무조건 싫단다.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하해 졌다.

내가 아들을 그렇게 키웠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우울하기까지 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불편할까 봐, 이런 사소함으로 감정이 상할까 봐, 관계가 나빠질까 봐 내가 말하지 못했다. 단지 내가 불편하고 서운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빠와 똑같은 아들이 되어 있었다.

여성주의를 공부했고, 세상에 평등을 외쳤던 난데, 결국 난 머리로 운동을 했지 행동으로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였던 것이다.

사랑을 이유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가끔 쓰레기 버려주는 아들이 자랑스럽고, 가끔 청소해주고 생색내는 아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래서 그것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아닌, 해주는 것이 되어버리도록 키웠던 것이다.

나름 아이와 친구처럼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보기 좋은 겉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해왔던 행동들이 눈앞에 스쳐갔다.

할 말이 없었다.

“왜 그러는 건데?”

맞는 말이다. 이제 와서 왜?

난 이제 와서 용기를 낸 것이고, 내 아이가 다른 이와 함께 살아갈 때 해야 하는 그 불편한 것들이 불편함이 아닌 서로에 대한 배려임을 알도록 가르쳐야 했다.

이틀 동안 우린 한 공간에서 말없이 서로를 유령처럼 스쳐 지나갔다.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본 친구는 아들에게 소변을 보고 난 후에 샤워기로 주변을 한번 씻고 나오게 하라며 절충안을 얘기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른이고, 내 아이는 이제 중학교 2학년이다.

아들 말대로 나는 갱년기고, 내 아이는 사춘기다. 우리는 서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와있다.

이런 식의 소통방식과 해결 방식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른인 내가, 그동안 그렇게 가르쳤던 내가 얘기를 시작해야만 했다.

마음을 다잡고 집도 들리지 않고 도서관으로 가겠다는 아이를 곧바로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식탁.

아이는 경직된 채 피곤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고, 나 또한 이틀 동안의 감정과 노동을 하느라 힘이 들었다.

“너는 뭐가 서운해서 그러고 있는 거야? 얘기를 해야 알지?”

“…….”

“내가 당장 앉아서 소변을 보라는 것도 아니고, 너의 편함이 나의 불편함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서운하고 화가 나는 부분이야?”

“엄마가 말 안 하고 있으니까 저도 말을 안 했을 뿐이에요”

그랬다. 아이는 아이였던 것이다. 아차, 싶었다. 아이를 어른 대하듯 했구나 싶어 미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말을 시작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잔소리였고, 내 입장에서는 소통이었다.

아이가 좀 더 자라 어느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살 때, 엄마가 없는 그곳에서 함께 사는 법을 알려줘야 했다고, 그것 중의 하나가 앉아서 소변보기였다고 말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 엄마지만 동거인이기도 하며, 결국 우린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도 들어 설명했다. 함께 살고픈 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 친구와 살 때 일방적으로 네가 희생하면서 살게 되면 너의 그 마음은 상처를 받게 된다고, 그러니 너 또한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얘기하고 때론 싸우기도 하면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불편해도 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장이 아니어도 좋으니 무조건 “싫다”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해보겠다고, 시간을 달라고, 그리고 얘기하자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이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맘이 좀 풀린 눈빛을 하며 그렇지만 여전이 조금은 어색한 이틀이 남아있는 눈을 하며 배고프다고 했다.

아이는 아이다. 국수를 먹고 싶다고 하기에 둘은 나갔다.

국수를 기다리며 EBS 지식채널 “변기 전쟁”을 보여줬다. 아이가 말했다.

“저번에 그래서 싸우면서 남자가 어쩌고 저쩌고 했던 거야? 난 무슨 말인가 했네!

아이는 아직 본인이 왜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이 이상한 것인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운동을 갔다 와서 저녁 10시쯤.

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웃으며 말한다.

“엄마, 앉아볼까”

“부끄러우면 문 닫고 싸” 참고로 아인 아직도 문을 열고 소변을 본다.

“뭐가 부끄러워”

생각보다 할만했나 보다. 아무 말이 없다.

당연하다. 앉아서 싸는 것이 뭐 할 말이 있겠는가!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렇게 우린 화해를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변기 뚜껑은 여전히 올라와 있다.

조심스럽게 한 달을 지켜보기로 했다. 습관을 고치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한바탕 변기 전쟁을 마친 나는 조심스럽게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피 흘리지 않고 두뇌로 할 수 있는 고도의 손자병법에나 나올만한 그런 전략을 가지고 아이에게 접근하려고 한다.

“내가 먹은 것은 내가 치운다!”

아주 쉬운 것이지만 함께 사는 남자 어른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어려운 것을 쉬운 것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사는 법 두 번째를 계획해본다.


남성이 앉아서 소변을 봐야하는 이유

[컬투 베란다쇼 자료]
남성의 하루 평균 소변이 2,300방울이 튀고 일주일이면 16,100방울이 튄다고 한다.
칫솔, 수건할 것 없이 주변 사방팔방으로 다 튄다. 바닥 직경 40cm, 높이 30cm까지 튄다고 한다.

[비타민 자료]
비뇨기과 전문의의 말을 빌리자면
남성의 경우 자다가 일어나면 괄약근 이완이 잘 안되는데
편하게 앉아서 소변을 눌 경우 괄약근 이완이 수월해진다고 한다.

[생방송 월화수목 자료]
또한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경우에 방광을 완전히 비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한다.
소변이 방광에 남게 되면 남은 소변이 방광에서 염증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으니 남성이 앉아서 소변을 누는 습관은 방광염, 전립선염 예방에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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