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신문기사를 보다 우연히 완주군 상관 편백나무 숲이 겨울철 비대면 안심관광지로 선정됐다는 기사를 봤다. 주말에 어디를 걸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됐다 싶어 이곳으로 결정했다.
아이가 4~5세 때쯤 동네 주민들과 함께 상관 편백나무 숲을 찾았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숲에는 습기가 많았고,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져 걷는 내내 긴장되고 무서웠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래서 15년 넘게 이곳을 찾지 않았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함께 걷자는 선배언니에게 상관 편백나무숲을 권했다.
그냥 궁금했던 것 같다. 이젠 좀 변했을까? 변했겠지! 세월이 얼마고 관광지로 유명해진지가 얼마인데 예전보다는 걷기에 좋아졌을 거란 기대와 아중리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했다는 것이 선택의 포인트였던 것 같다.
우린 편백나무 숲 입구에 위치한 주차장에서 만났다. 입구에는 편백나무 숲 둘레길 안내 지도가 있었다. 우리가 오늘 걸을 코스는 편백숲 오솔길-통문-모정(산책로반환점)-주차장이다. 너무도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약간 들뜬 마음에 과거의 추억들을 얘기하느라 오솔길 입구까지 금방 도착했다.
입구에 있는 “편백숲 오솔길 3km” 안내표에 따라 데크길로 올라갔다. 오솔길 맞아? 잘못 들어온 건가? 이건 오솔길이 아니라 등산로잖아! 언제까지 오르막길인데~ 라며 선배언니가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길은 가팔랐고, 숲 속으로 들어갈수록 길안내 표시는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거기에다 숲길 초입에 만들어놓은 평상은 너무도 오래되어 부서지고 덜컹거려 사람들이 앉아 쉴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오솔길 중간중간에 놓인 나무다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거리며 위험해 보였다.
아마도 나는 그동안 둘레길이나 관광지에서 봐왔던 다리나 평상, 안내표지판 등을 기대했던 것 같다. 자연 그대로의 숲이 좋다며 걷기를 시작했는데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을 찾으며 툴툴대고 비난했다. 숲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숲이 훼손되고 파괴되는 것은 다 인간 중심으로 사고하고 설치하고 유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편백나무 숲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울창하고 거대했다. 크고 오래된 나무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그들의 잎과 씨앗을 땅으로 보낸다. 그들의 잎은 나무들이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도록 보온과 영양을 주고, 씨앗은 주변에서 작은 아이들 마냥 성장하고 있었다. 머리 들어 편백나무를 올려다보니 그 세월이 느껴진다.
구불구불 편백나무 사이로 나있는 오솔길은 한 사람이 걸을 정도의 길이었다. 따로 같이 걸으며 숲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사람보다 숲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걷는 내내 바람에 실려 오는 편백나무의 향이 좋다.
1976년부터 마을사람들이 직접 심어 현재 10만여 그루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는 상관 편백나무 숲은 더 이상 과거의 그때처럼 어둡거나 스산한 숲이 아니었다. 사람과 자연이 만든 치유의 숲이었다.
숲을 걷다 보면 당시 마음과 상황에 따라 숲에서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
그때 느꼈던 어둡고 스산했던 숲은 당시의 내 마음이지 않았을까? 남편 때문에 힘들어했던 나는 내 힘듦만 보느라 숲에 집중하지 못했고, 아이 신경 쓰느라 그곳이 안전한 지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또한 나무와 자연을 지금처럼 좋아하지 않았다. 먹고사는 것에 걱정이 한 짐이었던 시절이라 속 편하게 나무가 어떻고 소리가 어떻고 자연이 어떻고 생각할 겨를 없이 빡빡하게 살았다.
요즘 자주 걷다 보니 흙길을 선호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빙빙 돌아가는 흙길보다는 빠르고 덜 힘들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시멘길이나 넓은 찻길을 선호했었는데 지금은 나뭇잎으로 푹신푹신해진 숲길이나 흙길이 더 좋아졌다. 특히 숲길은 걷는 재미가 있다. 저 너머 무엇이 나올지, 길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보며 걷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통문에 다다르니 모정까지 이어지는 찻길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멀지 않으니 금방 가겠지 싶었는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마도 날카로운 돌들이 섞인 찻길이어서 그랬나 보다. 목적지를 향해 소리도 없이, 공감도 없이 그냥 빠르게 걷는 모습이 요즘의 내 모습 같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시멘길이나 딱딱한 찻길이 나오면 무릎이나 발목에 신경이 쓰인다. 오래 걷다 보면 아프게 되고 불편감이 오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랬다. 숲길까지는 좋았는데...
모정은 그다지 볼만한 것도 없었고, 왜 반환점으로 해놓았는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말 그대로 모정 하나만 있을 뿐. 다만 모정까지 올라오는 길이 높다 보니 높은 곳에서 숲을 바라볼 수 있게 배려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정에 앉은 우린 다음에는 봄이 좋겠다며 올 때 꼭 도시락을 준비해오자고 약속했다. 또한 내려올 때 통문에서 다시 숲길을 택해 내려오자고 했다. 주차장까지 쭉 뻗어 내려오는 길은 역시나 별로였다.
바삐 걷고 빨리를 외치며 거북목으로 아래만 쳐다보며 살고 있는 내가 숲에서는 느리게 걷고 나무를 보기 위해 위를 본다. 또한 그곳을 담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서 사진을 찍는다. 무감각했던 일상과 달리 숲 속에서는 모든 감각들이 살아나 듣고, 보고, 느껴진다. 그렇게 걷다 보면 마음에는 여유가 생기고 잡념과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무언가를 비우고, 어떤 거는 채우고 오는 그러한 과정들이 나에게는 숲 속 걷기다.
나쁜 기억은 좋은 경험을 통해 다시 좋은 기억으로 생성된다고 믿는다.
오늘 하루가 그러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