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사람의 비애
내가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중학교 때였던 거 같다.
중학교 1학년 때 원래 살던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는데, 정말 친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정말 그냥
완전히 낯선 동네였다. 좁고 바퀴벌레 나오는 집에 살다가 휘황찬란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니 더없이
행복했으면서도 정든 친구들과 떨어져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오니 여러모로 힘든 구석이 많았다.
다행히 좀 친해진 친구들과 같이 농구를 하러 농구장에 가고 있었는데,
농구공이 굴러가는 바람에 어떤 한 여학생과 부딪히는 일이 발생했다.
나는 빠르게 사과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엄마 없는 새끼 주제에!"라는 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당시 왜 내가 그 말을 들었던 건지..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그리고 걔는 내가 엄마가 없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어이가 없었다.
또 한 번은 군대에서 있었던 일인데, 이 녀석은 정말 이상한 후임이었다.
군대 가서 포병으로 가고 싶지는 않고, 수색대가 하고 싶은데 색약이 있으면 그것도 녹록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조교로 지원을 하고 조교가 되었다.
체격이 작고 목소리는 높은 나는 조교로써 어울리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선임들이 나를 엄청 괴롭혔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지만 누구든 군대에서
괴롭힘 당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 후임이 그걸 봐왔던 건지 아니면 내 성격이 워낙 후임들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그걸 알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TV를 시청하고 있을 때였다. 아마 상병 때였던 거 같은데..
갑자기 이 녀석이 TV에 나오는 사람을 보면서 "저 새끼 저거 엄마 없는 새끼네" 처음에는 듣고 잘못 들었나
싶다가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나는 똑똑히 5번 들었던 거 같다..
같은 말을 5번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정말 너무 화가 나서 "그래! 나 엄마 없다 이 새끼야!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엄마 없는 게 뭐 어때서?!"
그러고 나서 그 친구가 미안하다며 화장실에 숨어서 울기도 하고 관물대에 머리를 처박고 잠을 안 잔다거나
그런 퍼포먼스를 했는데.. 정말.. 나를 더 화가 나게 했던 거 같다.
중요한 건.. 그 친구가 내가 엄마가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았고, 일단 다 떠나서 난 그 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다.
그 친구가 지금 본인 어머니한테 잘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말을 다들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호주에 와서도 한국인 20살 됐다는 애들이 본인들끼리 욕을 주고받을 때 어미 없는 새끼 이런 식으로
욕을 주고받는데.. 하나하나 붙잡고 바로잡다 보니 슬슬 지쳐가며 받아들이게 되어가고 있었다..
듣기로는 게임하는 사람들끼리 게임을 못하거나 상대방을 도발할 때 부모님 안부를 자주 묻는다던데
아마 그런 여파가 있었지 않나 싶었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 엄마 없는 새끼가 뭐 어때서?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없다.. 물어보면 대답을 하지 못한다.
본인들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니까 말이다.
노잼 설명충 이딴 단어 이제 듣고 싶지가 않다.
이딴 거지 같은 욕을 듣고 웃고 넘길 수 있다면 그게 재밌는 사람인 것인가?
그들은 엄마 없는 사람이 겪은 그 상실감을 단 1%만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가 없는 건 참을 수 없이 외롭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인간의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이다. 마음의 집이다.
아버지도 가능하지만 어머니보다는 아니다. 그거는 확실하다.
아직도 큰 상실감을 겪거나 인생의 큰 변화가 있거나 큰 성공이 있을 때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가곤 한다.
생전에 해드리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일까..
지금 와서 가장 후회되는 건 병상에 누워계실 때 게임에 빠져서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게임을 할 때마다 그때 당시에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내 마음을
무겁게 누르곤 한다.
나는 주로 월스트리트 저널을 구독해서 보고는 하는데, 이 기사를 보고 정말 미친 듯이 울었다.
미국의 한 지역에 한 할머니가 있다. 여러 명의 자녀가 있다. 할머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고, 그로 인해 자식들은 화상채팅으로 그 할머니에게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 어렵게 허가를 받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길을 멀고도 험난했다.
균을 보호하는 슈트와 여러 겹의 장갑 등 너무나 철저한 위생 보안을 거쳐 들어가야 했다.
그들은 이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 말이 자식들이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작별의 말이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 쉽게 내뱉는 말이지만.. 지금 어머니와 함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정말 있을 때 잘하라. 이별은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