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인종차별
호주에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특히 농장에 있을 때는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호주, 독일, 일본, 대만, 중국 등 정말 다양한 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각 나라 사람의 성향이나,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지, 다양한 사고방식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딱히 인종차별에 대한 경험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한 번은 대만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한국인은 다 눈이 찢어지고 눈이 작더라."라는 말을 듣고 같은 동양인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깐 흥분해서 너는 한국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렇게 생겼다고 말할 수 있냐.
같은 동양인끼리 외모 가지고 그런 식으로 평가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혼을 내기는 했다.
이 상황에 이렇게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말할 수 있다는 게 나 스스로에게 참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농장에 있을 때는 일본인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말을 하고, 김치가 일본 음식이라고 유럽 애들에게 김치가 일본 전통음식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일본 김치를 먹여주는데, 유럽 친구들도 다 알면서 웃으면서 그래~ 그랬구나~ 하면서 지나갔다. 보통 일본 친구들 중에 이런 생각을 가진 친구가 없었는데, 이 친구의 일본에 대한 애국심은 좀 지나친 듯했다.
생각보다 서양 친구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은 별로 없었다. 서양애들은 앞에서는 인종차별을 잘 못하고 보통 호주애들이 차안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뭐라고 소리치고 지나가는데 나는 항상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보통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서 나를 쳐다보는걸 보면 아 뭐라고 하는구나. 하고 그냥 지나치곤 했다.
그런데, 이번 공장에서 정말 제대로 인종차별을 겪었다. 나는 공장에 들어와서 플루보이 라는 일을 하고 있는데,
슬라이서들이 뼈에 있는 고기들을 발라내고 나면 쓸데없는 고기들은 바닥에 버리는데 그 버려진 고기들을 주워서 펫 사료로 쓰는 통에 옮겨 담아야 한다.
공장 구조가 이상하게 되어있어서, 오팔룸이라고 하는 작은 룸에 들어가서 작은 통로에 몸을 구겨 넣고 고기를 큰 통에 버려야 되는데 그러다 보니 오팔룸 멤버들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중 딜먼이라는 애가 있는데, 그 친구가 내가 계속 그 통로를 오갈 때마다 귀찮게 구는 거였다.
처음에는 뱀 흉내를 자꾸 내면서 따라 해 보라 하길래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데, 끝도 없이 그러는 까닭에 한번 해줬더니 계속해서 해보라고 하는 거였다. 그래서 그냥 바빠 죽겠는데 귀찮게 굴길래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더니 이번에는 신체적으로 나를 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음날이 되더니 내 헬멧을 엄청 세게 손으로 치더니, 화를 내니까 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거였다.
그래서 그날도 다음에는 안 그러겠지 했는데, 이번에는 고기 담는 큰 트레이를 내 쪽으로 엄청 세게 미는 거였다. 그 방향에 없어서 다행이지 만약 그 트레이를 맞았다면 내 다리는 이미 불구가 됐을 거였다.
그 순간 잠시 참았다가, 바로 슈퍼바이저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순간 레벨업도 하고 싶은데 괜히 껄끄러운 상황을 만들면 레벨업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고, 이런 걸 스스로도 해결 못하고 슈퍼바이저에게 말하는 게 좀 창피하기도 해서 고민하며 내 고민을 토니라는 친구에게 얘기했다.
토니라는 친구는 공장에서 일한 지만 20년이 넘었고, 39살인데 크리스라는 부인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엄청 장난꾸러기에 아침에 출근하면 귀찮게 굴지만, 선은 넘지 않아서 서로 장난도 치면서 재밌게 잘 지내는 친구였는데 내 고민을 말하니 순간 자기가 더 화를 내면서 자기 부인에게 가서 얘기하더니 부인이 슈퍼바이저에게 전달을 해줬고, 슈퍼바이저가 따로 나를 불러서 면담을 하게 되었다.
순간 시간을 기록해놓는 게 참 중요하다 싶었다. 시간을 묻는데, 순간 시간을 기록해두지 않았기에 정확한 시간을 모르겠다고 했지만 대략 어느 정도 시점인지는 말을 할 수가 있었다.
어이가 없었던건.. bully라고 표현을 했는데, 나는 그게 "(약자를)괴롭히다"고 표현이 되어있는데..
나는 약자가 아닌데, bully 라고 표현하는 게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친구는 자기가 호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양인을 괴롭히는 그런 친구였다.
주위에 물어보니 전에도 히스토리가 있었고, 나 말고도 동양인 친구들과 여럿 다툼이 있었던 듯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게 황당했지만 침착하게 정황을 설명했다.
모든 얘기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순간 참았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 내가 동양인이었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동양인이라는 게 확 와닿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아 서양인으로 태어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면서.. 나도 모르는 한탄 섞인 소리를 하게 되었다.
토니에게 너무 고맙고, 적극적으로 조치를 해주려는 슈퍼바이저에게 고맙기도 했다.
이제서야 내가 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