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가다.

이곳은 마치 신의 영역

by 신작가

농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몇 개월간 마음 놓고 여행을 가지 못했다.

여행도 하고 일도 하려고 왔는데 여행은 못하고 워킹만 엄청나게 해왔던 날들이 계속되었다.

몸과 마음이 조금씩 지쳐가고 있을 때 다행히 빅토리아주도 조금씩 규제를 풀기 시작해서 여행이 가능해지자 나는 미뤄왔던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빅토리아 여왕의 생일이라 월요일 휴무를 껴서 4일 동안의 휴일이 내게 주어졌다.

같이 살던 룸메이트 동생은 다음 주면 시드니로 떠난다고 하니, 가기 전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 정도는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둘이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가기로 했다.

자동차로 대략 3시간 30분 거리였지만,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지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IMG_0200.heic 쭉 달려가면 하늘에 닿을 것 같은 고속도로

3시간 30분 정도 달리고 났을 때 해안도로를 지나고 있는데 차가 굉장히 많이 모여있는 곳이 보였다.

우리는 즉시 그 장소에 차를 세웠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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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들어놓은 예술작품은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웅장하다"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그동안의 호주에 와서 고생했던 모든 시간들이 완전히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계단을 따라 해변에 닿으니 강렬한 파도 소리와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바위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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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마치 신의 영역에 허락받지 않고 들어온 불청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낮게 깔린 구름은 점프만 해도 곧 머리에 닿을 듯했다.


걸음을 옮겨 12 사도 전망대에 도착했으나 아쉽게도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으로 인해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애초에 일몰을 볼 작정으로 왔던 여정이었는데, 도착 시간은 4시 30분. 일몰까지 대략 40분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용기를 내서 안내원에게 멀리서 왔는데 문을 닫아서 너무 아쉽다고 말하니 안내원들이 속닥거리는 목소리로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아주 아름다운 곳이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5분 정도 달렸을 때 작은 주차장이 나왔다. 여긴가? 하고 조심스럽게 차를 대고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고 있었다. 어린애처럼 마냥 좋아 뛰어다녔다. 설렘이라는 단어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기대감이었다.


IMG_0258.heic 사이좋게 서있는 두 바위


형제 같이 생긴 두 바위를 지나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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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가 며칠간 바다에서 표류하다 겨우 도달했던 무인도 같이 생긴 작은 공간이 보였다.

오늘 명상할 곳은 저기다.

내가 여행을 와서까지 명상을 생각하게 줄은 몰랐으나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조용히 외치는 듯했다.

미친 사람처럼 들리지 모르겠지만, 그레이트 오션 로드 사진을 보면서 여기라면 내가 신과 대화할 수도 있겠다는 직감이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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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작은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에 깊이 빠져들었다.

무엇이 너를 여기로 이끌었느냐

내 안의 다른 내가 지껄이는 소리인지, 아니면 내 상상력이 이런 음성을 만들어낸 건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분명히 이 질문이 나를 계속해서 때리고 있었다. 나는 질문에 대답했다.

잘 모르겠지만, 당신과 대화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알지 못할 내 안의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저 바위의 세월이 보이는가. 이 땅의 세월에 비해 너의 삶은 얼마나 짧고 보잘것이 없는가.

내 가슴에 계속해서 울리는 이 두 가지의 질문이 내 가슴을 계속해서 때리고 있었다.

알지 못할 가슴속에 울림이 엄청나게 커졌고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집중력이 생겨났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 나는 내가 뭐라도 굉장히 대단한 인생을 사는 듯한 착각에 빠져있었다.

자연의 세월에 비해 내 삶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사무치는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래 괜찮구나. 더 이상 살아온 과거에 대해서 분노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구나.


자연에 비해 이토록 보잘것없는 나의 과거를 떠올려봤자,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나는 현재를 사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나는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실제로 살고 있는 존재가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냥 하나의 영혼일 수도 있다. 내 몸은 느껴지고 소유되는 옷일 뿐이고, 내 안의 영혼만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추리라. 하늘이 선사해주신 이 엄청난 그림을 마음껏 만끽하며 파도소리와 자연의 소리에 원 없이 춤추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이것이 내게 깨달음으로 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관념을 받아들여 깨달은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과거에 비해 나의 삶은 온전한 행복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내 안에 자리 잡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IMG_0274.heic 이 땅의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고대에도 동일하게 존재했던 땅, 그 땅의 단면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