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섭이 삼촌
호주 시간으로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한다.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켜고 보니 고모한테서 문자가 와있었다.
"종섭이 병원에서 포기했다더라. 코로나 때문에 병문안도 할 수가 없대."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죽음을 맞이하시는 한 할머니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영상통화로 하고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고, 한바탕 울었던 기억이 있었다.
나의 일은 아닐 줄 알았는데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니, 생각보다 덤덤했다.
아무도 병문안을 갈 수가 없어서 영상통화로도 삼촌의 임종을 지켜볼 수도 없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작년 8월쯤에 한국에 잠깐 갔을 때 삼촌이 필요하다고 하셨던 오메가 3을 하나 사갔었다.
조금 비싸서 한통만 사드리고 나중에 택배로 보내드려야겠다 생각하고 한통만 사드렸는데,
연락이 올 때마다 오메가를 먹고 나아지고 있다고 해서 기분이 너무 뿌듯했다.
왜 그때 내가 한통만 사다 드렸을까.. 몇 통 더 사서 충분히 드시게 했으면 나아지셨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오면서 미안한 마음이 계속 들었다.
"삼촌, 내가 호주 가서 돈 많이 벌어서 한국 돌아오면 삼촌한테 진짜 맛있는 거 쏠게!"
이렇게 호언장담하고 호주에 왔는데, 아무것도 사드리지 못하고 그냥 보내드렸다.
문득 삼촌의 죽음이 너무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안 되는 상황이라 겨우 병원 측을 설득해서 아들만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했다.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고모가 삼촌의 마지막 돌아가시기 전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셨다.
나는 그분이 삼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라있는 걸 보고 무지 고통스러우셨겠구나 생각했다.
죽음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가치 있는 것이다.라고 누가 그랬던가.
하지만 죽음은 삶이 가치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극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도 결국 저렇게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나의 죽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그래, 나는 적어도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그래! 또 다른 여행을 하는구나." 나의 또 다른 여행을 응원해주는 주위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종도 못 보고 장례식도 참석을 못하니,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아 죄책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