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고등학교 종업식에 참석했다. 퇴임하시는 강병수 교장선생님께 명예장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강당으로 걸어가며 교장선생님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며 말을 건네셨다.
"핸드폰만 보고 있냐?" "오늘 날씨가 춥지? 따뜻하게 입었어?"
37년간 학생들을 향해 해오신 따뜻한 말씀 그대로였다. 식이 진행되고, 교장선생님의 퇴임 인사가 시작되었다. 오래전, 학창 시절 들었던 교장선생님들의 훈화는 길고 지루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날 퇴임 인사는 달랐다. PPT로 정리된 짧고 간결한 내용 속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과 본인의 소회가 담겨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학교 담벼락에 핀 털머위꽃 두 포기의 사진을 2년 동안 찍어 PPT에 담았다. 한 포기가 먼저 꽃을 피웠고, 다른 한 포기는 피지 않았다. 먼저 핀 꽃이 승자인 듯 보였다. 그런데 환경 관리 직원이 잡초라며 제초제를 뿌렸다. 교장선생님은 물을 듬뿍 부어 제초제가 씻겨 내려가도록 했다. 이미 무성하게 자랐던 첫 번째 털머위꽃은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초라해 보였던 두 번째 는 제초제를 견뎌내고 마침내 노란 꽃을 활짝 피워냈다.
"언제 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꿈을 가지고 뿌리를 내리고 이파리를 키우는 기본기가 중요합니다. 결국, 그것이 승자가 되는 길입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다. 이은 슬라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 종업식에서 종업(從業)원인 저는 교육의 에너지를 다 썼기에 종업(終業)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음 장에는 한 문장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저도 나름 꽃을 피웠기 때문입니다."
20대에 입직하여 37년을 학생들과 함께하며 목표를 세우고 꿈을 이루고, 한 해 한 해 세월을 쌓아온 공직의 삶. 그것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되어 감동을 주었다. 그동안의 소회를 담아 500권의 책을 출간하여 지인들과 나누기도 했다
'나는 무슨 꽃을 피웠을까? 나는 꽃을 피울 꿈이 있었을까?' 질문은 바로 나에게 향했다.
어쩌면 나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두 번째 털머위꽃일지도 모른다. 숱한 바람을 맞아왔고, 폭우를 견뎌왔으며, 제초제 같은 시련을 겪어왔다. 하지만 꽃을 피우지 못했다고 해서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키우고, 잎을 넓히며 조용히 기반을 다져왔다. 이제, 나도 꽃을 피울 차례다. 인생은 끝나지 않았고,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나와 사무실로 향하는 길, 부산에 첫눈이 내렸다. 겨울마다 눈 한번 보기 힘든 부산에 재난 문자까지 울릴 정도로 많은 눈이 쏟아졌다. 온몸에 달라붙는 차가운 눈을 맞으며, 이 눈을 뚫고 새롭게 피어날 꽃을 기다려 본다.
종업(從業)원 내가 종업(終業)하는 날. "저도 나름 꽃을 피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