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다섯 번째 상해 방문이다. 처음 이 도시를 방문했던 20년 전과 비교하면, 상해는 상전벽해란 말도 모자랄 만큼 화려하게 변해 있었다. 그때는 외탄과 동방명주 주변만이 번쩍거렸고, 동방명주 타워가 그들만의 자부심이었다. 동그랗게 연결된 구체들이 하늘로 솟아오른 모습이 조금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웅장하지만 세련미가 떨어져 큰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당시 상해의 화려함은 시골 아낙이 특별히 바른 진한 빨간 립스틱과 파란 아이섀도 같은 느낌이었다.
도시의 번화가를 벗어나 한 블록만 들어가도 비좁고 지저분한 골목이 늘어서 있었고, 밖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황사로 공기는 흐릿했고, 거리 곳곳에 웃통을 올려 배를 내놓고 다니는 일명 '차이나 비키니' 차림의 남성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았고, 실내든 길거리든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문화적으로 우리나라가 훨씬 앞서 있다는 우월감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때 우리는 중국을 추월한 첫 세대이자 마지막 세대가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그런 우월감이 사라졌다. 15년 전 그들이 내놓은 상해 도시계획이 완전히 성공을 거둬, 이제 상해는 그들만의 웅장한 도시로 거듭나 있었다. 당시 동방명주와 몇몇 건물만 우뚝 솟았던 푸동은 이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만큼 화려한 마천루로 가득했다. 그저 그런 번화가였던 남경로는 이제 화려함의 극치다. 푸서 지역은 푸동과는 또 다른 분위기이다. 넓은 녹지와 깨끗한 거리, 세련된 현대 건축물들이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있었다. 도시 곳곳의 골목들조차 깔끔하고 도심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었다.
환경정책 역시 상해의 발전을 돋보이게 했다. 새 차량 번호판을 얻으려면 경매를 통해 획득해야 할 정도로 차량 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차는 예외라 운행이 자유롭고, 덕분에 공기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맑아졌다. 정부의 위생 캠페인으로 사람들도 머리를 감는 습관이 자리 잡았고, 거리의 모습이 한결 깔끔해 보였다. 특히 중요한 요직에 여성들이 활약하고 있어, 상해의 '여성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
푸동에서 바라본 상해의 스카이라인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이제 동방명주는 그저 옛 추억의 상징일 뿐, 더 이상 상해의 자부심이 아니다. 지금의 상해는 632미터 높이 128층의 상해타워를 중심으로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상해타워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건물로, 그 존재감만으로도 내가 알던 상해의 모습은 뒤집혀 있었다.
하지만 도시의 외양만이 발전한 것일까? 여전히 상해 사람들은 정부의 통제와 감시 속에서 살고 있었다. CCTV가 거리와 실내 곳곳에 설치되어 개인의 사생활은 이미 노출된 지 오래다. 기술과 경제의 눈부신 발전 속에서도 상해는 과연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드웨어는 완벽할지 몰라도, 각 개인의 창의성과 다양성, 그리고 내면의 성장은 여전히 먼 미래처럼 느껴졌다.
밤하늘에 비친 푸동의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해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이 도시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상해 사람들도 이러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울민국'이 있다면, 중국이라는 큰 나라 안에는 상해라는 독립적인 국가가 있는 셈이다. 화려하고 엄청난 규모로 나를 압도한 상해의 밤거리를 걸으며, 상해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