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동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 티켓팅과 수하물도 순조롭게 마쳤다. 이민국도 무사히 통과해 비행기 출발만 기다리는 순간, 나는 그때까지 상하이가 우리를 이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비행기 출발 예정 시간은 오후 1시 55분. 그러나 그 시각 태풍 콩레이가 상하이를 강타하고 있었다. 오후 2시가 지나도 "대기해 달라"는 방송만 반복됐다. 4시가 넘어가자 항공편이 하나둘씩 결항되더니, 결국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우리 비행기도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아, 나는 주변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겨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70대 어르신들과 함께하고 있어 건강이 걱정되었다. 우선 공항 내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를 사 드리며 “곧 해결될 겁니다” 하고 위로해드렸다. 그러던 중, 부산을 외치는 어떤 중국직원을 따라 승객들이 우르르 출국장을 빠져나갔다. 나도 어르신들과 함께 다시 수하물을 찾고, 항공권을 다시 예약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항공사 측에서는 "천재지변"을 이유로 호텔이나 식사는 제공할 수 없다고 한다. 좌절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줄을 서 있던 200명가량의 승객들 앞에는 단 3개의 티켓 데스크가 있었고, 업무 속도는 너무 느렸다. 몇몇 외국인 승객들이 참다못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러시아인은 “우리는 4시간째 서서 기다리고 있다! 호텔과 식사를 내놔라!” 하고 소리쳤고, 중동 출신 승객은 “부산행 임시편을 마련하라!”며 탁자를 내리쳤다. 고성이 오가며 난동까지 벌어지니,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업무가 마비되어 티켓팅이 전면 중단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천재지변이니 어쩔 수 없다며 차분히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한국 여행사에 미리 연락하여 발빠르게 다음날 부산행 항공권을 예약해 놓았다. 부산행 티켓을 구하지 못한 승객들은 인천이나 대구로 가야했다. 항공사 직원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잘했다고 확정해주었다.
이제는 숙소를 구할 차례. 결항된 승객들로 인해 공항 인근 호텔은 모두 만실이었다. 숙소를 구하지 못한 승객들은 공항바닥에 자리를 깔기 시작했다. 70대 어르신들과 노숙은 언감생신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나는 상하이 현지 직원에게 위챗으로 긴급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직원이 20군데 넘게 전화를 돌려 간신히 방을 구해주었다.
30분정도 기다려 셔틀버스를 탔다. 미니버스에는 우리 일행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사 눈빛이 이상했다. 음흉한 눈빛으로 실실 웃으며 차안에서 계속 담배를 피워댔다. 차창밖 주변은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중국말로 뭐라 말을 거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들도 "우리 제대로 가는 것 맞나. 와이리 컴컴한 데로 가나" 한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30분정도 가니 호텔하나가 우뚝 서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오전 10시 30분부터 장장 13반시간 만에 발을 뻗을 수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모두 배고픔에 지쳐 있었다. 할머니 일행들과 방에 모여 자축 연을 열기로 했다. 한 분은 손자 주려고 산 과자를 꺼내고, 다른 분은 초콜릿을 내놓으셨다. 나는 비장의 무기, 아껴둔 컵라면 3개를 꺼내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밤 12시에 컵라면을 호호 불며 먹는데, 이보다 진수성찬이 없었다. 하루의 고된 피로가 얼큰한 신라면 국물 한 모금에 사라지는 듯했다. “내일은 무사히 상하이를 탈출할 수 있기를!” 우리는 컵라면 국물로 건배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푸동공항에 도착하니 전날 출발하지 못한 승객들까지 공항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중국 항공사의 늑장 대응으로 티켓팅에만 3시간이 걸렸다. 결국 어르신들께서도 “아이고, 다리야” 하며 연신 다리 아프다고 하셨다. 어렵사리 보딩 패스를 받아 입국장을 통과했을 때는 이미 보딩 시간이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마지막 승객으로 겨우 탑승하며 마침내 상하이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전날부터 이어진 장장 30시간에 걸친 상하이 탈출기였다.
푸동의 야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상하이 산해진미가 아무리 나를 유혹해도 당분간 상하이는 쳐다도 보지 않을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