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정 Nov 09. 2024

사소한데 목숨 걸다 똥 밟은 날

 

오늘은 중요한 야외 행사 날. 무려 새벽 6시까지 출근해서 지문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침대와 한바탕 씨름하다 겨우 5시 10분쯤 일어나 씻고, 대충 시간 계산을 해보니 5시 30분에 출발하면 무난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큰일이다. 새벽엔 지하철 배차가 느리다는 걸 깜빡했다. 5시 44분, 드디어 지하철이 도착했고, 속으로 시간을 계산해 봤다. '좋아, 15분 걸리니까 5시 59분에 내리면 100미터 달리기 하듯 뛰면 되겠지!' 머릿속 시뮬레이션은 완벽했다

'학교 다닐 때 100미터 달리기 하던 속도로 뛰어가면 정각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이 문으로 나가면 돼. 할 수 있어!' 마음속으로 ‘6시까지 반드시 지문기 앞에 도착하리라!’를 수차례 외치며 스스로를 세뇌했다.


드디어 5시 59분,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올림픽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튀어 나갔다. 계단을 총알처럼 올라가 삑! 지하철 카드를 찍고 외부로 나가는 계단을 2,3개씩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잘하고 있어. 할 수 있다!’ 마음을 다잡았지만 점점 숨이 차올랐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심장은 이미 폭주기관차.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회사 건물 출입구 계단을 오르며, 심장이 요동치며 '이러다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는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아,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되는데!' 온갖 아쉬움과 함께, 진짜 심장마비가 오는 듯했다. 심장마비를 당한다고 해도 6시 안에 지문을 찍고 싶었다. 자빠져서 나뒹굴었다는 창피함도 없이 나는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지문기 앞에 도착했다. ‘삑’. 시계는... 6시 1분을 가리켰다. '아! 1분이 지나버렸네.'


하... 지문기 앞에서 헐떡이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그게 뭐라고 이렇게 목숨 걸고 뛰어왔는지. 지각이면 그냥 사유서 쓰면 될 일을...


내가 미쳤지. 10 대적 100미터 달리기 속도를 생각하다니. 지하철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서 5분은 넘게 걸리는데 50대가 1분 만에 300미터를 뛰어가겠다는 발상이 말이 되나? 심장이 폭발하고 다리 부러질 뻔한 것도 모자라, 길바닥에 나뒹구는 창피까지 당하다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거기다 넘어져 옷까지 다 버리고. 종일 '미쳤네. 죽을뻔했네' 자책하는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점심 무렵 한 직원이 나를 부르더니, "팀장님... 신발에...". 내려다보니, 어휴... 행사장에서 개똥까지 밟았다. 행사장이 공원이다 보니 유난히 개가 많았다. 아침 일을 자책하다 정신이 팔려 개똥을 밟은 것이다. 오늘, 정말 끝장나는 날이다. '똥 밟은 날'이네, 제대로.


신발에 묻은 걸 물티슈로 닦으며 문득 깨달았다. 오늘 하루, 나 정말 뭐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사느라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니 나는 참 사소한 일에 목숨을 많이 걸며 살아왔다.  카카오 게임 레벨 올린다고 밤을 꼴딱 새운 적도 있고, 고로쇠물 마시기 대회에서 1등 하겠다고 배 터져 죽을 뻔한 적도 있다. 1등 상으로 받은 고로쇠물 5리터는 대회 중 너무 많이 마셔 냄새만 맡아도 질색이라 다 버렸다. 회사 점심시간에 배드민턴 치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슬라이딩까지 해서 비싼 정장 바지가 찢어진 일까지...


이제는 느긋하게 살아야 할 때다.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되게 하려 애쓰지 말고, 사소한 일엔 목숨 걸지 말자. 오늘의 ‘죽을 뻔한 아침’을 계기로, 한 가지 결심이 생겼다.


이제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자! 인생, 좀 여유 있게 살자!

매거진의 이전글 태풍과의 사투, 상하이 공항 탈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