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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Dec 19. 2024

엄마의 밍크코트 나의 보물

저녁 식사를 마치면 남편과 나는 집 근처 온천천을 산책한다. 요즘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가지고 있던 밍크코트를 꺼냈다. 발목까지 오는 밍크코트는 바람을 단단히 막아줘서 안에 얇은 옷만 입어도 하나도 춥지 않다. 이 코트는 엄마가 주신 보물이다. 부산은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드물어 밍크코트를 입을 일이라곤 거의 없지만, 온천천 밤 산책할 때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짧은 잠바에 몸을 움츠리고 걷는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나는 하나도 안 춥다. 당신은 밍크코트 주는 엄마 없지?”

남편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 나는 제대로 된 새 옷을 사 입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어디선가 얻어온 옷을 입으며 자랐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엄마가 주신 옷이니 당연히 입는 거라 생각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교복 자율화가 되어, 교복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 차라리 교복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자유롭게 옷을 입으라니 그게 더 난감했다. 엄마가 어디선가 얻어온 옷을 입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엄마, 새 옷 좀 사주세요."라는 말을 한 번도 꺼내지 못했다. 패션에 대한 개념이 없기도 했지만 우리 집 형편에 그 말이 얼마나 부담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되자, 엄마는 몸이 부쩍 자란 내게 맞는 옷을 또 주변에서 얻어왔다. 이번엔 젊은 아줌마들에게 얻은 옷이었다. “아이고, 딱 맞네! 이거 니 옷이다!” 엄마는 늘 같은 말을 하며 옷을 건네주셨다. 그날도 엄마가 얻어온 양장점 출신 플레어스커트와 짧은 재킷, 촌스러운 한벌을 입고 학교로 가던 중이었다. 허나, 문제는 그 스커트였다. 하필 펄럭이는 스커트를 입고 집 앞의 악명 높은 온천천을 지나야 했다.


그 시절 온천천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곳이었다. 청둥오리나 황새가 사는 맑은 물은커녕, 생활오수와 쓰레기로 가득했다. 물빛은 탁했고 하수구 냄새가 진동했다. 운동하거나 산책하는 사람은 아예 없던 곳이었다. 학교로 가려면 온천천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다. 제대로 된 다리로 가려면 멀리 돌아가야 했다. 늘 늦잠을 자던 나는 항상 지름길인 징검다리를 택했다.


그날도 급한 숨을 들이쉬며 징검다리를 한 발 한 발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커트가 길고 펄럭이는 바람에 발 밑 돌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감으로 다음 돌을 딛다가 결국 “아앗!” 하는 비명과 함께 냄새나는 물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무거운 모직 양장을 입고 시궁창물에 빠진 내 모습은 참 처량했다. 젖은 옷은 무겁고, 냄새는 고약했다. 그대로 학교에 갈 수도 없었다. 울먹이며 집으로 돌아간 나는 엄마를 향해 한바탕 소리를 질렀다.
“왜 이런 옷을 입혀서 시궁창에 빠지게 만들었어?”   

엄마는  “으이그, 조심 좀 하지.” 라며 별것 아닌 듯 웃었다.
나는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학교에 갔고 한참 지각을 했다. 그 플레어스커트는 다시는 입지 않았다. 그 뒤에도 나는 여전히 징검다리를 건너 학교를 다녔고, 늘 늦잠을 자던 탓에 실용적인 추리닝 바지가 나만의 교복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 취업을 하고 나니, 드디어 내 손으로 옷을 사 입을 수 있었다. 어릴 적 새 옷을 못 입었던 한이 맺혀 매 시즌 옷을 척척 사들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멋쟁이가 되진 못했다. 옷 입는 센스도 유전일까? 화려한 옷을 입어도 어울리지 않았다. 보수적인 직장도 옷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결국 무채색 바지 정장과 어두운 원피스 같은 기본템만 남았다. 가끔 빨간 원피스나 하늘색 정장을 시도해 봤지만, 몇 번 못 입고 옷장 구석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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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솜씨가 좋은 엄마는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김치나 음식을 해서 나누어 준다. 음식을 얻어먹은 사람들은 안 입는 옷을 주기도 한다. 요즘은 낡은 옷을 주는 사람은 없다. 새 옷이거나 몇 번 안 입은 고급 옷이 대부분이다. 얼마 전 엄마 집에 갔더니, 밍크코트, 오리털 패딩, 여우털 잠바까지 꺼내놓으셨다.
“이거 입어봐라. 아는 동생이 살이 쪄서 못 입는다고 주고 갔다.”
입어보니 핏이 좋았다. “아이고, 딱 맞네! 딱 니 옷이다.”
엄마의 익숙한 멘트를 듣고는 웃으며 겨울옷 세 벌을 얻어왔다. 이제 이번 겨울엔 아우터 걱정이 없다.

깨끗하게 정비된 온천천은 35년 전과는 달리 반듯한 돌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엄마가 주신 밍크코트를 입고 징검다리를 건너며 시궁창에 빠졌던 날을 떠올리며 한참을 웃었다. 지금도 엄마가 얻어주신 옷을 입고 온천천을 걷고 있다.
    

엄마가 얻어주신 옷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시간의 흔적이자,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었다. 어린 시절엔 부끄럽게만 느껴졌던 얻어 입은 옷들이 이제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밍크코트를 입고 걷는 온천천은 더 이상 과거의 하천이 아니다. 깨끗한 물길처럼 내 삶도 엄마의 사랑으로 정비되고 단단해졌다. 지금도 나는 그 사랑을 입고 걷는다. 과거의 징검다리가 흔들렸듯, 인생도 흔들릴 때가 있지만 엄마가 준 사랑은 언제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는 밍크코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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