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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Sep 07. 2022

중학교 감상 시간에 만난 클래식

이게 백조라구요? 늙은 황소가 아니구요?

  피아노 레슨비의 상승폭을 이기지 못하고 바이엘에서 배움이 끝난 나는, 피아노에 늘 아쉬움이 있다. 자연스레 "피아노 배워볼래? 엄청 재미있을걸?"이라며 아쉬움을 우리 집 아이들에게서 채워보고자 했다. 아이들마다 반응은 달랐다. 부지런한 연습보다는 자신의 해석을 담은 연주를 선보이는 큰 아이는 체르니 30번을 치다 피아노를 그만두었고, 반대로 정확한 표현과 기술을 보여주는 둘째도 비슷한 시기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셋째는 배우고 싶지 않다 했고, 의외로 기대하지 않았던 막내는 습관처럼 오래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아이들은 내 아쉬움과 관계없이 딱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만큼 피아노를 배우고 음악을 즐겼다. 지금도 여전하다. 마음이 동하면 갑자기 전자 피아노 뚜껑의 먼지를 후 불고 연주를 시작한다. 또 갑자기 우르르 몰려나와 거실 텔레비전에 유튜브를 연결하고 뮤지컬 경연 프로그램을 보며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나 또한 아이들을 통해 내 아쉬움을 채우는 것을 애저녁에 포기하고 다시 내가 배워볼까 생각한 지 오래다.


  그런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다 보면 체르니 40이나 더 높은 단계까지 배우지 않았음에도 다양한 음악 장르들을 잘 알고 있어서 놀라곤 한다. 음악 특히 클래식은 초입부만 아는 곡도 손에 꼽을 정도인 나로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솔직히 부럽다. 어쩌면 유튜브의 힘인 듯도 하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1980년 중반에는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다였으니 집안에 특별히 클래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지 않고서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중학교 1학년, 음악시간에 '감상'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났다. 선생님은 테이프를 틀어주시며 다음 주에 감상 시험을 칠 테니 잘 들어두라고 강조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감상 시험이란 얼마나 신기한 단어인가 싶지만 그때 나는 정말 심각했다. 태어나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플루트 등등등의 악기라고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텔레비전에서도 조용필, 전영록 오빠의 노래는 들어봤지만 클래식이라고 하는 장르의 음악은 들은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한 곡씩 순서대로 제목과 작곡가를 칠판에 써주시고는 테이프를 틀어주셨다. 열심히 공책에 필기하면서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라며 크게 쓰시고는 우리에게 어떤 동물을 표현한 것인지 맞춰 보라시는 게 아닌가. 음, 난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내가 아는 모든 동물을 소환했다. '뭘까? 굉장히 느린 동물인 듯한데, 나른하니 졸린가?' 퀴즈탐험 동물의 세계에서 보았던 초원의 장면과 시골에서 보았던 가축들까지, 그 짧은 시간 내 머릿속에는 오십여 가지가 넘는 동물들이 한 줄로 서서 장난감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듯 착착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답을 공책에 썼다. '늙은 황소'. 선생님은 내 발표를 듣고 한참을 웃으셨고, 애들도 덩달아 즐거워했다. "조금 더 우아한 동물인데, 뭘까? 유럽에서는 쉽게 볼 수 있대." 선생님의 힌트에도 불구하고 우아함에 관한 개념조차 없었던 14살의 우리, 63명의 여학생 중 '백조'를 맞춘 아이는 없었다. '이게 백조라구요? 늙은 황소가 아니구요?' 나는 생상에게 화가 났다. 쉬는 시간 내내 백조가 그렇게 느리게 날면 떨어지지 않겠냐고 친구들과 툴툴거렸다.

   일주일 뒤 시험이 다가왔고 선생님이 틀어주셨던 테이프에서 들었던 기억을 더듬어 칸을 채워갔다. 요한 슈트라우스 -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 베토벤 - 월광 소나타, 바흐 - G 선상의 아리아...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을 써 내려가다 드디어, '다다다 다다다 다~ 다다다'. 첫 음을 듣자마자 얼마나 반갑던지. 자신 있게 '생상 -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라고 썼다. 갑자기 생상이 용서가 되고 좋아졌다.


   지금도 나의 클래식 목록은 중학교 1학년 감상 시험 목록에 머물러 있다. 생각해 보면 참 아름다운 음악들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음악에 빠져들길 원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제목을 알려주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상상해 보길 바라시고 악기도 물어보고 하셨으니까. 교과서 그림으로만 접한 악기들이라 내 멋대로 소리와 연주 모습을 상상하며 감상했지만, 곡들이 모두 참 아름다웠었다. 그리고 사춘기에 막 접어든 팍팍했던 열넷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복잡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가보지도 않은 유럽의 강가를 거닐고 달밤의 흥취에 젖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난 어디서 클래식을 배웠을까. 클래식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혼자 흥얼거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불러주었던 동요들과 가곡들도 모두 그 옛날 국민학교,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노래들이다. 구절만 안다고 음악을 어찌 안다고 말할 있겠나. 하지만, 사교육에서 멀찍이 떨어져 살아온 나에게 클래식이란 세계도 있음을 알려준 그 시절 음악 시간 덕분에 내 세계는 좀 더 확장될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공교육이 참 고맙다.

   감상을 어떻게 점수로 환산할 수 있는지 묻자면 이야깃거리가 끝도 없을 테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공교육이 아니면 기회를 갖지 못하는 아이들이 여전히 있다. 경제적인 문제든 정서적인 문제든 말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설거지를 하거나 할 때 나의 클래식 목록을 크게 틀어두고 들으면서 '어떻게 들어도 백조잖아. 어쩜 늙은 황소가 뭐니?' 하고 혼잣말을 한다.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평생을 갈 유쾌하고 행복한 기억들이 학교에서 풍성하게 만들어지고 아이들의 마음에 남았으면 좋겠다.


저작물명PPT서식_2016_137저작(권)자누리미디어 (저작물 1000 건)출처누리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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