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마음속에 맺혀있는 아빠 이야기
봄의 햇살과 여름초입의 빗물을 머금은 나무들이 초록잎들을 막 피워낼 때
아빠의 기제사가 다가왔음을 가늠한다.
저녁 7시, 평소 같으면 한 두 켤레만 놓여있을 태백 고향집 신발장에는 신발들이 적당히 늘어서있다.
그 간 못 찾아뵌 게 죄송할 정도로 나이가 드신 게 눈에 새겨지는 큰 아빠,
인자한 미소와 투박한 친절함이 그대로인 큰 엄마,
항상 우리가 부족해도 먼저 발걸음 해주시는 작은 아빠네.
그리고 엄마, 언니, 나
미리 준비해 둔 음식은 마루에 정갈하게 놓여있고
우리는 서로 보지 못했던 틈새의 소소한 일상을 늘어놓으며 제사 전 시간들을 메운다.
큰 아빠의 주도아래 차근차근 제사상이 다 놓이면
언니와 나는 아빠에게 8번의 절을 올린다.
1년에 한 번 아빠에게 올리는 인사지만 8번의 절을 하며 마음속에 되뇌는 말은 비슷하다.
'아빠 많이 드시고 가세요, 행복하게 지내고 계세요, 난 여기서 열심히 살고 있을게, 아빠 덕분에 나 정말 모자라지 않게 잘 살고 있어.'
내가 너무 아빠를 그리워하면 아빠가 그곳에서 마음 편히 행복하지 못하실까 봐
마음 뒷 편의 숨겨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제사가 끝나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다.
이런저런 우스운 소리들이 오가고 가볍게 웃고, 큰 아빠와 음복주도 나눠마시며 무거웠던 분위기가 말캉해지는 순간 즈음, 아빠 얘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큰 아빠는 아빠와 자주 두시던 바둑이야기를 하며 아빠의 귀여운 잔재주를,
언니는 대학교 다닐 때 언니 학교 주변에 오셔서 같이 점심을 먹다가 소주를 물처럼 2병이나 아무렇지 않게 드셔서 놀랐던 이야기를,
큰 엄마는 아빠가 술을 참 좋아하셨는데 간경화 이 후로 드시지 않다가 가끔 몰래 술을 따라달라고 하시던 이야기를,
아빠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은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모두가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아련하고 콧등이 시큰한 이야기들을.
아빠가 아프기 시작하고 암인 걸 알고 나서도 계속 마무리지을 일이 있다고,
우리는 무슨 아픈데 일을 하냐, 지금 그게 우선이냐라고 말했을 때도 완강히 퇴원하시고 일을 하셨던 이유가 남겨진 가족들에게 조금의 빚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걸 큰 엄마가 얘기하시는 순간,
꾹꾹 눌러 담아 더 이상 차오를 곳이 없던 마음이 터져버렸다.
아빠의 빈자리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도 크다는 걸 아빠는 알고 계실까?
아빠의 제사가 끝나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간 자정이 되어서야 언니와 누웠을 때 물었다.
"언니는 동생인 내가 먼저 죽어서 제사를 지내면 어떤 마음일 것 같아?"
“아무리 내가 행복한 처지이더라도 하나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아빠가 그리운 5월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