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의미 붙이기 나름이라고, 서른 기념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다. 빵 만드는 걸 배워볼까, 한 번도 쓰지 않은 장르의 글을 써볼까, 이직하는 게 나으려나. 뭐가 되었든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과 배워서 써먹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을 안은 채 나는 제 풀에 지칠 때까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답은 나오지 않고, 머리만 지끈거려서 e북 리더기 구매목록을 뒤적거렸다. 머리 아플 땐 책으로 도피하는 게 제일 낫다. 책 꽤 많이 샀네 따위의 의미없는 속말을 중얼거리다 「될 일은 된다」는 책 제목에 힘을 얻어 가고 싶은 곳을 네이버에 검색했다. 그리하여 보고야 만 것이다. 추가모집이라는 반듯한 네 글자를.
네 글자가 불러온 파장은 생각보다 컸고, 이번 주 금요일. 면접 보러 간다. 어디로 가냐면, 대학교 다닐 때 죄지은 사람들이 간다는 대학원에 간다. 돈 없어서 못 가고, 집에 생활비 대느라 못가고, 마지막엔 용기가 없어서 못 가던 그곳에 지원서를 넣었다.
칼바람을 맞으며 우체국에 가서 빠른 등기로 입학 제출서류를 붙이고, 언 손을 주머니에 넣고 종종거리며 회사로 돌아와 콧노래를 불렀다. 지금 제대로 김칫국 마시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차게 얼어있던 손가락을 꾸역꾸역 움직여 친한 친구에게 지원 소식을 알렸다. 야, 나 간다. 간다고. 어디를? 대학원에. 진짜 마음먹은 거야? 갈 거야?
붙으면 간다! 내가 최근에 한 생각이 있는데, 싫어하는 일 하고 최저시급 받는 지금이나 하고 싶은 일 하고 최저시급 받는 나중이나 어차피 박봉이면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맞는 거 아냐? 게다가 내 일을 하면 수입은 사장님 주머니 대신 내 주머니로 오는 거니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얼마나 올바른 결정이냔 말이야. 라고 했지만 며칠은 또 끙끙거리며 고민했더랬다.
이미지 출처 - 언스플래쉬(unsplash)
몇 년 전. 어떻게 이렇게까지 가난해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살게 하냐고 울분이 차서 전공 서적을 갖다 버렸던 적이 있다. 죽을 때까지 심리학은 쳐다도 안 볼 거라며 버렸던 책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두껍고 비싼 책들은 알고 있었을까. 인생은 길다는 사실과 사라진 돈은 다시 모으면 또 모이게 되고, 위기를 겪다보면 벗어날 구멍이 생긴다는 걸. 그래서 버린 주인이 이제 와서 후회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끝내 버리지 못하고 책꽂이에 꽂아 둔 개론서적과 인지치료 책을 보며 이래서사람은 함부로 ‘죽어도’, ‘절대로’를 입 밖에 내면 안 된다는 걸 배운다.
아무튼 면접 보러 간다. 이번 주 금요일에. ‘면접’이라는 세상 불편하고 심장만 고생시키는 그 짓을 안 한지 3년이 넘었지만 하러 가야한다. 그래야 외칠 수 있다. 나, 대학원 간다! 하고. 공부도 하고, 회사도 다니는 기쁨을 누릴 타이밍이 지금이었으면 좋겠다. 학교 갈 시간 협의해줄 직장 찾기는 꽤 어려우니까.
서른과 일 학기. 입에도 착착 잘 붙는다. 나도 논문, 과제, 실습 이런 단어랑 다시 친해지고 싶다. 될 일은 된다던데 이게 될 일이어라~하고 바란다. 이럴 시간에 면접 연습이나 열심히 하면 좋을 텐데. 들뜬 마음 감출 수 없어 연습 대신 글을 쓰는 나도 참, 이 마음 언제 차분해 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