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인 듯 내 집 아닌 내 집 같은 친구 집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 밤은 친구 M의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이 네덜란드의 북서쪽에 있다면 M의 집은 남쪽에 있었다. 우리는 긴 시간 버스를 타고 M의 동네인 에인트호번의 한 정류장에 내렸다. 밤이라 주변은 어둑하고 지나다니는 승용차도 없었다. 동네는 고만고만한 집들이 칸에 맞춰 일렬로 이어져 있어 차분했다.
반듯한 네모 모양의 정원을 지나 현관문을 열자 M의 어머니가 우리를 반겨주셨다. 그때, 총, 총, 바닥을 딛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M의 동생이 등장했다. 티미(웰시코기)였다. ‘생각보다 몸통이 큰데?’ 나는 개에 물린 기억 때문에 겁이 나서 티미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M의 어머니가 직접 구운 팬케이크와 쨈이 놓여 있었다. 지쳐있던 우리는 신나게 팬케이크를 입에 넣고 식후 차까지 마시고 2층에 있는 M의 방을 구경했다. M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어색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타인의 집을 구경하는 게 오랜만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집에 잘 가지 않는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 시달린 날이면 씻지도 않고 바닥과 한 몸이 됐고, 음악을 들으며 마음껏 오글대는 감성을 펼쳐도 아무도 모르는 공간. 내게 가장 안전하면서 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이 집이니까. 집을 보여준다는 건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거라 어색했고, 누군가의 집을 보고 나면 타인이 확 친근하게 느껴져서 문제였다. 쓸데없이 정이 많은 내 마음이 아무에게나 열리면 안 되니까.
M은 방에서 키우는 거북이와 방 안에 있는 물건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고 우리를 3층으로 안내했다. 가족들이 쓰지 않는 공간이라 큰 침대만 놓여있었다. 시간이 늦어 J가 먼저 씻으러 들어갔고 나는 괜히 바닥에 있는 캐리어를 열고 짐을 정리하는 척했다. 펜팔 친구 S의 친구였기에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옆에 앉은 M이 먼저 말을 꺼냈고 나는 그녀의 말에 동질감을 느꼈다. 어떤 이야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행을 시작한 약 이틀을 통틀어 가장 편안했다. 소음 없는 동네, M의 방과 물건, 좁은 3층의 안락함이 부린 마법에 나는 그녀에게 친밀감이 샘솟고 있음을 느꼈다. 여행 첫날 숙소에서도 같이 있었는데 공간이 집이라는 차이 하나로 내 마음은 완전히 열렸다.
기분 좋게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을 때, 나와 J는 로망을 품고 있었다. 운동복 차림으로 여유롭게 아침 산책하기. 로망을 실현해줄 상쾌한 공기와 넓은 땅과 귀여운 강아지 티미까지 준비됐는데 제일 중요한 체력이 없었다. 어제 너무 오래 걸어서 허리가 나갈 것 같은 상태로 눈을 뜬 우리는 산책을 포기하고 티미와 거실에서 놀았다.
겁을 내는 나와 달리 J는 강아지와 노는 법을 알았고 나는 어설프게 J를 따라 하다 내 쪽으로 온 티미의 몸통을 살살 쓸었다. 사람의 머리카락보다는 거친 털의 감촉과 따끈한 온기가 손바닥에 스몄다. 귀는 뾰족하고 몸통은 통통한데 다리는 짧아서 아기들 마냥 귀여웠다.
활기찬 아침을 보내고 짐을 챙겼다. 혹시 배고플까 봐 샌드위치를 여러 개 싸서 은박지에 꼼꼼히 접어 넣기까지 한 M네 어머니의 정성이 감사했다. 한국과 10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서 잠깐 동안 집에 온 것 같아서 긴장이 풀렸다. 한국에서 준비한 선물을 어머니에게 드리고 집을 나섰다. 암스테르담과의 안녕이 아쉬웠다.
독일로 넘어가는 기차 안, 나는 네덜란드가 아주 그리워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문득 생각난다. 암스테르담에서 재회한 S, 밤거리를 걸으며 끝없는 이야기를 나눴던 B, 귀여운 티미와 우리와 함께 해준 M. 많은 걸 보진 못했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을 들었던 3박 4일이라 이렇게 그리운가 보다.